• '親日인명사전'은 되고
    '從北백과사전'은 안 된다? 

      
    親日은 '과거완료형' 문제이고 從北은 '현재진행형' 문제다. 어느 쪽이 더 나쁜가!

    金泌材    
      


  • 從北진영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최근 <조갑제닷컴>이 발간한 《從北백과사전》을 인용, 국회 從北化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자 ‘사이코패스’ 운운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늘 그렇듯이 저들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기준으로 세상만사를 마구 재단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親日문제다.

    韓日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목 하에 1991년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2008년 4월29일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하며 편파성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일례로 사전은 일제 말 징병을 권유하는 글까지 썼던 여운형(1886~1946)을 親日인사 명단에서 빼고,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1864~1921)은 1916년 일본 총독의 부임을 환영하는 고작 넉 줄짜리 한시(漢詩)를 썼다는 이유로 그를 親日인사에 포함시켰다.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여운형은 ‘左翼계열’, 장지연은 ‘民族계열’이라는 점이었다. 雪上加霜으로 사전은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 前 대통령을 만주 육군훈련학교를 나와 만주군 보병중위로 복무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親日인사에 포함시켰다. 반면 일본 고위 장교 출신인 고종(1852~1919)의 손자 이우(李鍝)는 親日인사에서 배제시켰다. 그는 일본 陸士를 나와 육군 중좌(중령)까지 지냈던 인물로 33세 때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사망했다.

  • 참고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한 임헌영 소장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에 발생한 최대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연루자다. 남민전 사건은 1960년대 인혁당(인민혁명당), 통혁당(통일혁명당, 한명숙 前 민통당 대표 연루)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된 지하공산혁명조직이었다.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등이 월북(越北),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의 통제를 받았으며, 남한 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제작했었다. 당시 3차에 걸친 경찰발표에 의하면 남민전은 남한 내 불순세력을 규합, 지하조직을 완성하고 도시게릴라 방식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해 민중봉기와 국가반란을 유도, 베트남 방식의 적화(赤化)를 획책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판결과 사건의 총(總)관련자 가운데 1심과 2심에서 39명이 석방됐으며, 임헌영 소장을 포함한 남민전 연루자들은 1989년 모두 만기-특사로 출옥했다.

    左翼사상범에서 전향한 소설가 김정익 씨는 교도소 내 남민전 연루자들과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1989년 《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이 책에서 金씨는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 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며 남민전이 교도소 내에서 조직을 강화시켜 80년대 국내 左翼세력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남민전 잔당들은 80년대 들어 주사파를 비롯한 從北세력 형성의 산파역할을 했다는 것이 당시 운동권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는 ‘反美’라는 반제국주의투쟁이 중요하다는 남민전의 투쟁노선 역시 80년대 從北세력에 그대로 수용됐다. 당시 운동권에게 남민전 공소장은 인기 있는 교재였고, 검찰에서 만든 남민전 공소장의 핵심적 내용은 추려져 대학가서점에서 판매됐다.(2005년 9월3일자 인터넷 <미래한국>보도 인용)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은 2004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층의 밥그릇 챙기기에 만신창이로 뜯겨나가고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역사의 혼을 불어넣겠다”면서 “역사 앞에서 진정 산 자와 죽은 자가 누구인지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드러낼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편찬자들이 친일파 범주를 규정하기 위해 참고한 문헌의 일부는 1940년대 左翼계열 주도로 발간된 자료들로서 그 이념성에 있어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문건들이었다.

    일례로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국민공청회 기조발제문’을 통해 ▲<조선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소집요강>(1946)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친일파 규정>(1946)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지방선거 행동강령 중 친일파 규정>(1947) ▲<민주주의민족전선의 미소공위 공동결의 6호 답신안>(1947) ▲<북조선노동당의 미소공위 공동결의6호 답신안>(1947) 등을 별첨자료로 제시하기도 했었다.

    결국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은 ‘역사바로세우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대로 과거를 마구 재단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아울러 親日문제는 ‘과거완료형’의 문제이지만 從北문제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다. 21세기 大明天地에 3대 세습 기아(饑餓)왕국이 웬 말이고, 정치범 수용소가 웬 말인가? 이런 김정은의 북한을 추종하는 從北세력은 한반도 내의 反인도, 反인륜, 反인권, 反민주, 反민족적 존재인 것이다. 김정은과 함께 從北세력을 대한민국 법에 따라 법정에 세워야 한다. 참고로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2005년 ‘왜 親北派가 親日派보다 더 나쁜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親北派(親김일성-김정일파)는 대한민국 체제의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국가반역을 선택한 이들이다. 親北을 하지 않는다고, 즉 반역을 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낼 세력은 없다. 親北派가 되는 것은 헌법과 국가에 대한 반역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 조국이 있음에도 자발적인 반역을 선택한 것이다. 親北派는, 사사건건 조국을 만든 사람들을 물어뜯고 북한정권을 비호하면서도 단 한 사람 북한에 가서 살겠다는 이가 없다...(중략) 역사는 친북파에 가혹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그들이 남긴 거짓말, 폭언들이 너무나 많다. 代代로 웃음꺼리가 되고, 子孫들까지 그들을 외면할 것이다. 오늘의 法網을 피한다고 해도 후손들에 의하여 斷罪될 것이다. 불쌍한 영혼들이다.》

    ‘사이코패스’는 누구인가? 60년이 훌쩍 넘은 親日잔재 운운하는 세력인가? 아니면《종북백과사전》펴낸 <조갑제닷컴>인가? <조갑제닷컴>은 대한민국 憲法을 수호하는 護憲세력 편이다. 대한민국 國體를 지키기 위해 나온 책이 바로《종북백과사전》이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관련칼럼] 왜 親北派가 親日派보다 더 나쁜가?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45127&C_CC=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