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엔 “필요하면 부르겠다”···오늘은 “애국가 제창을 존중한다”
  • 열심히 감추려 애써보지만 감출 수가 없다.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발언 파문이 확산되자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측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선긋기에 나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너무 서둘러 방안을 마련했는지 자신들의 성향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심상정 전 공동대표는 17일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석기 의원은) 딴 세상에 사는 사는 것 같다.”

    “헌법을 뒷받침하는 국회의원이 국가를 부정하면 공인 자격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이석기 의원이 속해 있는 구당권파 측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한 그였다.

  • ▲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장인 박원석 의원이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로나기 특위의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장인 박원석 의원이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로나기 특위의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박원석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박원석, 지난달 24일에는 “애국가는 의례에 불과, 필요하다면 부를 수 있다”

    한달이 채 안돼 말 바꾸기 “애국가 발언은 이석기 개인 생각, 애국가는 국가(國歌)”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는 이날 북한인권과 핵 개발, 3대 세습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 담긴 혁신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허울은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표면적 출구 전략을 선택, 종북 논란을 최대한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 3대 세습은 일반적 민주주의 원칙에서 당연히 비판되어야 한다.”

    하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 북한정권을 상대로 대화해야 할 정부와 정당이 이를 공격적으로 비판하는데 앞장서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반핵과 탈핵의 노선을 분명하게 견지하며 북핵에 분명히 반대한다.”

    “핵개발이 북미 갈등의 산물이기에 북미 관계개선을 위한 중재가 우선이지만 남한에도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비핵화가 달성된 뒤에 종속적 한미동맹체제의 해체와 미군철수를 실행한다는 우리 당의 강령이 안보의 관점을 결여한 것이 아니나 이것이 당장의 미군철수와 한미동맹의 해체로 오해받고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게 그들이 내놓은 혁신이다.

    내용자체가 두루뭉술하다. ‘하지만’, ‘우선이지만’, ‘아니나’ 각 대목마다 전제와 단서가 동원됐다.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부정’ 발언 논란에 대해서는 “이석기 의원 개인의 생각이고 당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애국가는 국가(國歌)”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애국가 제창에 대해 “헌법에 따라 활동하는 정당으로서 애국가 제창 등 국민의례를 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당내모임의 성격에 따라 이를 유연히 적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박원석 위원장은 처음부터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인정했을까?

  • ▲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측 박원석 의원(좌)과 구당권파 실세인 이석기 의원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측 박원석 의원(좌)과 구당권파 실세인 이석기 의원 ⓒ연합뉴스

    #1. 애국가 부르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박원석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당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 등에 군국주의 잔재 성격이 있다.”

    “이걸 하지 않는다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의심을 받고 이질적 모습으로 비친다면 부를 수 있다. 그렇게 한다고 진보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도 아니다.”

    위 내용이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2. “애국가? 필요하다면, 일종의 관행”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원석 위원장은 ‘애국가 제창 문제를 국민 눈높이 차원에서 의논해 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더욱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필요하다면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은 그게 일종의 하나의 문화로 관행으로 정착돼 왔던 문제인데 실은 국민들이 거기에 대해서 불편해하고 또 그로 인해서 통합진보당의 국가관 같은 것이 집단적으로 의심을 받는 상황이라면 그 문제를 바꾸는 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논쟁”

    박원석 위원장은 25일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했다.

    그는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애국가를 부르느냐, 부르지 않느냐는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고 그런 맥락에서 애국가는 의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애국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어제 말씀드린 취지는 국민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을 불편해 한다면 행사의 성격상 필요하다면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말씀드린 것이다.”

    #4. “현충원 참배 권유는 부당한 강요”

    사회자가 다시 물었다.

    “통합진보당 당직자와 국회의원들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박 위원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통합진보당은 그동안 4.19 묘지를 참배했다. 통합진보당은 종북이다 혹은 주사파다라는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이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하지 않아왔던 의식을 일부러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는 통합진보당이 종북정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희가 주사파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통합진보당은 다양한 이념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은 현충원 참배식의 권유는 부당한 강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통진당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파악된다.

    "애국가는 필요하다면 부르는 의례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현충원 참배는 하지 않고 4.19 묘지만 가겠다."

    새로난다고 했지만 통합진보당은 통합진보당이었다. 그게 그거고, 신파나 구파나 결국은 한 통속.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고약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진보로 위장해 대한민국 정체성을 무시하는 일을 계속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