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토론 이상규, 왜 ‘종북이냐’ 질문에 답변 못했나 했더니···
  • ‘구당권파-신당권파’ 통합진보당 내 NL(주사파)계와 PD(평등파)계 모두가 종북(從北) 성향을 띄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1996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종철(40·사진)씨는 22~23일 이틀간 서울 마포구 한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1992년 대학 입학 뒤 NL(민족해방) 계열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김일성 주체사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학내 NL계열의 전폭적인 지지로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총학생회장에 선출됐고, 이적단체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중앙위원을 지냈다.

    그해 여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출소 이후 그는 전향했고 현재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87학번인 이정희 전 대표와 99학번인 김재연 당선자의 중간 세대다.

    ― 주사파의 국회진출은 위험한가?

    “국회의원이 되면 일단 신분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최고 보안사항을 열어볼 수 있다. 통진당 핵심당원들은 주위에서 보는 눈이 있는데도 경찰차를 부수고 경찰을 때리고 압수수색을 대놓고 막지 않느냐.”

    “이런 사람들 10명 정도가 국회에 들어가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된다. 당권파도 문제지만, 비당권파도 의심해볼 문제다. 과연 이 사람이 종북세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 지금은 권력투쟁 중이라 잠시 가려져 있을 뿐이다.”

    “이석기 이런 사람들만 종북인 것처럼 봐서는 안 된다. 범NL이 곧 종북이다. 검증을 해봐야 한다. 극단적인 표현이겠지만 통진당이 섞인 야권연대가 선거를 이긴다고 생각해봐라. 그러면 북한 김정은 왕조와 공동정부가 수립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1990년대 중반이면 북한에 대홍수가 나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등 북한 경제난이 드러났던 시점이다. 그 시기에 왜 주체사상에 빠져들게 됐나.

    “1992년 입학하자마자 주사파 계열 선배들과 어울렸다. 결정적인 계기는 '겨울합숙'이었다. 선배·동기들 30~40명과 계룡산 자락에서 매일 15시간씩, 일주일 내내 주체사상 등을 공부했다. 북한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됐다. 그렇게 공부하고 돌아오니 북한 문건이나 원전을 찾아 읽을 정도가 됐다. 김일성 명의로 나오는 논문, 북한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수백권을 찾아봤다. 이쯤 되면 주체사상의 비논리성 따위는 인식을 못하게 된다. 북한의 경제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권탄압, 탈북문제는 절대 믿지 않았다. 당시 선배·동기들은 탈북자의 수기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라고 했다.”

    “종북이라는 말이 오히려 약하다. 이들은 수령론·후계자론·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대한민국을 북한처럼 만들자는 사람들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실제로 김일성을 세계 최고의 지도자라고 여긴다. 학생운동 당시 주사파라는 말도 안 썼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다. 북한이 무너지기 전까지 절대 종북세력은 바뀌지 않는다.”

    ― 남파 간첩 김동식씨는 “종북주의자는 북한에 대해 지도자, 세습, 북한체제(사회주의), 주체사상, 인권탄압 등 다섯 가지는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사파는 절대로 그 부분을 비판할 수가 없다. 북한 지도부와 체제, 사상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신념(주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는 100분 토론에 출연한 구당권파 소속 이상규 당선자가 “종북이냐”는 질문에 끝내 답변을 못하고 말을 이리저리 돌린 것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 전향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1998년 출소할 당시 대단히 환영받았던 기억이 난다. 통합진보당 당선자인 김재연씨의 남편 최호현 같은 후배들이 운동권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내가 주체사상을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철서신' 김영환씨가 '수령론은 거대한 사기극'이라며 전향을 했고, 파문이 일었다. 이후부터 고뇌의 시기였다. 운동을 할 때는 정부의 조작이라면서 믿지 않았던, 탈북자의 증언도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