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통찰력-실행력 가졌던 지도자, '시대의 한계'와 충돌! 온몸을 바치다!
  • 오늘 친한 후배와 대판 싸웠다.

    이 후배는 이른바 '우파'이다. 이 후배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다.

    "종친초(종북-친북-촛불떼거리) '가짜진보'의 시체장사는 전태일부터 시작했지요. 전태일은 1954년 생이죠. 대충 80년대 초쯤 죽었잖아요? 집에서 나갈 때만해도 죽을 맘이 없었다던데요? 시체장사 하려는 넘들이 전태일을 죽이고 장사판을 벌인 것이죠."

    죄다 엉터리 정보로 이루어진 '의견'이었다. 내가 그 오류를 아무리 지적해도 후배는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완고했다.

    "시체장사의 원조는 전태일 그 XX새끼부터 시작됐다니깐요!"

    듣다 못 해 큰 소리 한마디를 이렇게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당신은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40년전에 죽은 사람, 그야말로 '단순한 요구'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는 소리를 외치면서 스스로 불에 타서 죽은, 못 배우고 가난했던 청년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참된 이념의 뿌리는 인간이고 진실이야. 인간과 진실을 외면하면 아무 참된 사상도, 이념도 성립하지 않아."

    아무리 '가짜진보'의 시체장사에 데었다고 해도 전태일에 대한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

    1. 전태일은 1954년 생이 아니라 1948년 생이다.

    2. 전태일은 1980년대에 죽은 게 아니라, 유신 전인 1970년에 죽었다.

    3. 전태일 분신은, 당시 청계피복 마추코바/상가에서 노동운동에 관여한 서울법대 출신 운동권 트리오 조영래 장기표 이신범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

    4.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는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요구를 하며 분신했다.

    5. 무슨 거창한 '시체장사'가 아니라, 서울대 법대 상대 학생 중심으로 데모/농성이 있었다.

    6.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은, 인명진이 주도한 <도시산업선교회>가 활성화되었다.

    7. 전태일 죽음을 둘러싼 모든 인사들 (일찍 숨진 조영래 제외하고) --이신범, 장기표, 인명진--은 대표적인 반종북, 반수령전체주의 인사들이다.

    8. 따라서 나중에 전태일을 이용, 주사파(NL) 노동운동판에서 그를 아이콘으로 쓰는 것은, 사실은 전태일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이다.

    9. 또한 나중에 전태일을 이용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혹은 인민민주주의, 혹은 트로츠키주의) 노동운동의 아이콘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전태일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이다.
    '시대착오적 급진 좌파가 전태일을 이용해 먹은' 대표적인 사례가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이다. (이 '대학'의 총장이었던 사람이 지금 경기도 교육감을 하는 김상곤이다)

    10. 전태일의 힘은 그의 현실성, 소박성, 단순성에 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요구했을 뿐 '김일성식 민족해방'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마르크스-레닌-스탈린-트로츠키 식 노동해방'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망자를 이용하고, 망자를 모욕하는 썩은 정치브로커, 정치투기꾼들이다.

    11. 이런 정치브로커. 정치투기꾼들에 환멸한 나머지 전태일에 관한 fact를 무시하고 "그 씨발새끼가 시체장사의 원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전태일은 1970년에 죽었고,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그 이후의 사람들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박정희가 떠올랐다.

  • 박정희의 수출 산업화 정책은, 바로 평화시장 마추코바에서 이루어진  봉제, 가발, 눈썹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3미터 남짓한 높이를 합판으로 둘로 나누고 그 '2층'에 다닥다닥 붙어앉아서 먼지와 실밥을 마시며 미싱을 돌리던 나어린 청춘들이 '수출 전사'였다. 전태일은 바로 박정희 수출공업화 정책이 만들어낸 이 '저임금-단순 고강도 노동'의 개선을 원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과오로 지적되는 대표적인 두 가지는 다음이다.

    1) 1969년 삼선개헌에 의한 헌정 농락

    2) 1972년 유신 이후의 폭압적 권위주의(=독재)

    그런데 이 두 가지에는 매우 심각한 배경이 깔려있다.

    1) 김일성체제는 1956년 대숙청 이후 약 10년에 걸쳐 중-소 양진영에서 가장 '주체적으로 화끈하게 삥을 뜯는' 체제의 특성을 나날이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소련은, 망하는 해인 1991년까지 북한에 삥을 뜯겼고, 중국은 지금도 삥을 뜯기고 있다.)

    2) 이러한 주체적 삥뜯기에 의해 북한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동아시아의 체코'라 불릴만큼 공업화 진전과 생활수준 상승을 맛보았다.

    3) 이같은 '삥뜯기에 기반한 성취'에 바탕하여 드디어 1965년 '김일성 체제이론'(=주체사상) 이 완성되었다.

    4) 북한 수령전체주의 체제의 정점은 1965년에서 1985년까지 약 20년 동안이었다.

    5) 특히 1968년에는, 한국의 월남전 참전을 '응징-견제한다' 는 명분 아래 매우 공격적인 무장공비 침투를 벌였다.

    6) 이는 1969년의 3선개헌을 촉발했다. 박정희 및 집권세력은 '권력의 위기' 뿐 아니라 '체제의 위기'를 느꼈던 것이다.

    7) 유신 역시, 단순히 '권력욕'에서 나온 일이 아니라  이같은 '체제 위기의식'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1972년은, 미국이 월남전에서 휴전협상을 서두르기 시작하고, 강력한 참전국이었던 태국과 뉴질랜드가 월남에서 발을 뺐던 해이다. 미국의 사실상의 패퇴가 감지되기 시작한 해였고, 인도차이나 3국의 적화가 확실시되기 시작한 해였다. 유신은 이같은 국제정세 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8) 1980년대 초까지 북한의 생활수준 및 공업화 수준은 우리보다 높았다. (한국현대경제사학자들은 1979년까지라고 한다.)

    박정희를 볼 때에는 그 비극성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엄청난 통찰력과 실행력을 가진 지도자'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도 안되는 폭압적-가부장적 권위주의 지도자'였다.

    3선개헌 및 유신은, 한편으로는 북한 및 동아시아에서의 사회주의권의 힘이 우리를 압도해오던 시대 속에 취할 법한 '선택'이었다고 보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도 안되는 폭압적 헌정질서 농락 및 독재'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 모두 맞는 말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비극은, 각각 타당성이 있는 두 개의 근거, 논리, 힘이 정면 충돌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안티고네를 보자. 생부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이자 오빠이고 생모 조카스타는 어머니이자 할머니이다. 왕가의 명예는 똥이 되었고 왕족은 짐승이 되었다.

    왕이 된 크레온은 이 개판을 수습하려고 애썼지만 오이디푸스의 아들 폴리네이서스는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다. 크레온은 율법에 따라 폴리네이서스의 시체를 들판에 버려 짐승 먹이가 되도록 명령한다.

    폴리네이서스의 누이 안티고네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왕국의 율법에 따라 폴리네이서스의 시체를 내버려두어야 하나? 아니면, "나는 짐승이 아니야! 사람이야! 도리를 알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왕국의 율법을 어기고(=죽음을 자초하고) 폴리네이서스의 시체를 수습해야 하나?

    '왕가 안에서 벌어진 '지어미 X할' 행태 때문에 뿌리째  흔들린 기강과 율법을 바로 잡아야 한다' 는 요구도 맞고, '짐승이 되어버린 운명을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폴리네이서스의 시체를 묻어주야 한다'는 인간도리에 관한 요구도 맞다. 그래서 비극이다….

    새누리 혹은 박근혜 진영은 이런 박정희의 비극성을 깊게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통찰력과 실행력을 가졌던 지도자가 '시대의 한계'와 충돌하며 빚어냈던 비극성이었다.

    박정희의 위대함은 이 비극성을 온몸을 바쳐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한 몸의 영광과 권력욕만 쫓은 인간이었다면 이런 종류의 비극성이 나올 수 없다.

    박정희에게는 '권력의 논리를 넘어서는, 통찰과 실행'이라는 지도자 최상의 덕목(virtue)이 존재했다. 이 덕목이 바로 박정희의 비극성을 만들었다.

    박정희의 비극성을 이해할 때만,  박정희의 그림자/이미지에 의존한 '부자 몸조심 권력 게임'을 넘어설 수 있다. 그때 새누리는 비로소  이승만과 박정희의 맥을 잇는 '당당한 주류 제도권 정당' 으로 태어난다.

    그런 정당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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