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백화점 “민노당 때부터 목적 달성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다”
  • 통합진보당의 조직적인 불법선거!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이 지난 3일 공개한 비례대표 후보 부정선거 사례는 한 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원내 제3당을 차지한 공당(公黨)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3일 진상조사위원회가 당 홈페이지에 공개한 보고서에는 온라인 투표와 현장 투표를 막론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례가 부지기수다. 당원들마저 분노할 정도로 납득하기 힘든 내용이 가득하다.

    보고서가 공개되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진보당 당권파의 특성은 북한 정권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 지지율이 떨어지건 말건 그래서 당내 국회의원 수가 줄어들건 말건 오로지 자기 세력의 확장만을 꾀한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지만 결국 헤게모니 쟁탈전에 몰입한다”는 비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상 초유의 ‘부정-불법’ 사태로 자신들의 주요 가치로 들먹여온 이른바 도덕성에 먹칠을 한 통합진보당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이제 검찰이 정밀 수사를 통해 ‘누가’, ‘왜’, ‘어떻게’ 이런 만행을 저질렀는지 밝히는 일만 남았다.

  • ▲ 교도통신이 지난 해 10월 보도한 김정일과 김정은의 대규모 열병식 관람 모습. ⓒ연합뉴스
    ▲ 교도통신이 지난 해 10월 보도한 김정일과 김정은의 대규모 열병식 관람 모습. ⓒ연합뉴스

    ■ 만천하에 드러난 ‘부정-불법’ 백태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투표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됐던 동일 IP(인터넷 주소) 중복 투표의 경우, 한 IP를 통해 투표한 이들의 거주 지역이 모두 달랐다. 39명의 투표가 이뤄진 특정 IP에선 서울, 인천, 대구, 경기, 전북 등 투표자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누군가 당원들을 대신해 대리투표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상조사위가 특정 IP에서 온라인 투표를 한 당원 90명을 직접 조사한 결과 응답한 65명 중 12명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7명은 당원도 아니었다.

    당내에선 현장 노동자 당원이 많아 동일한 IP에서의 투표를 부정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한 IP의 경우 21명의 여성 투표자 중 정년퇴직 이상 나이인 70대 고령자가 10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상조사위는 “대리투표가 이뤄진 명백한 정황이 상당하고 동일 (IP에서의 투표수)이 개별 IP 투표를 압도할 정도로 많다”고 지적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온라인의 ‘투표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스코드’가 네 차례에 걸쳐 수정된 것이다. 암호화된 데이터에 접근한 흔적도 발견됐다. 

    최초 부정선거를 폭로한 이청호 부산 금정위원장은 “내 정보에 의하면 이번 투표의 전산관리를 한 업체가 민주노동당 시절에서 부터 계속 전산관리를 해 온 업체다. 10년 넘게 민주노동당 덕에 밥 벌어 먹고 살고 왔던 업체에게 이런 걸 맡길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도 최근 대표단 비공개 간담회에서 “후보자별로 시간대별 득표현황이 있는데 다른 후보는 일정한 규칙성이 있지만 특정 후보는 소스코드를 연 것과 득표율이 급상승하는 게 일치되는 특이현상이 나타난다. 이것만으로도 의혹은 충분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투표 역시 ‘부정선거 백화점’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불법-탈법이 자행됐다. 투표용지가 낱장으로 분리되지 않고 6장이 한꺼번에 붙어 있는 투표용지가 발견됐는가 하면, 선거인 명부의 확인 서명란에는 필체 위조로 보이는 사례도 다수였다.

    서명 위에 다른 필기구를 사용해 서명을 수정하거나 필체가 현격하게 차이나는 대리 서명이 발견된 투표소도 61곳에 달했다. 아울러 당규에 따라 무효로 처리해야 할 표를 유효로 처리하고 개표 작업을 단 한 사람이 도맡아 한 투표소도 8곳이나 됐다. 심지어 2개의 투표소를 한 사람이 동시에 관리한 사례도 나왔다.

    선거 마감일인 3월18일에는 현장 투표자 수가 4,853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최종 결과 발표일인 3월21일에는 5,455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 ▲ 통합진보당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과거 민노당 때도 투표소부터 접수했다”

    지난 2005년 무렵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전신인 민노당 NL(주사파)계 당원이 지역별 투표소를 조직적으로 ‘접수’하는 방식으로 당직선거 조작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번 경선도 당권파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당시 지구당에서 핵심 당직을 맡았던 A씨는 “민노총과 민노당,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일관된 정파적 흐름이 있는데 이중 누가 현장투표소를 설치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정파가 참관인을 하기도 하지만 24시간 붙어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리투표 한다는 마음만 먹으면 투표용지를 100장 정도 가져와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번호만 딱딱 찍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당권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면서까지 당권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A씨는 “일반적으로 정당이 권력을 잃으면 다음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당권파들에겐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조직적인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절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관행이 민노당 시절부터 근 10년 동안 이어져왔다는 지적이다.

    비주류들은 “당권파의 선거 부정은 뿌리 깊은 족보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2001년 당시 민노당 주류였던 PD(민중민주)계열이 장악하고 있던 용산지구당을 지금의 당권파가 대규모 위장 전입 등의 방법을 통해 ‘접수’한 ‘용산사태’ 이후 당내 선거마다 각종 부정·불법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다.

    당권파는 용산사태 이후 인천·광주·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위장 전입, 당비 대납, 유령 당원 등의 선거 부정을 일삼았고 마침내 2006년 1월 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했다.

    당권파는 이른바 ‘범(凡)경기동부연합’으로 불린다. 당내 지분 55%를 점하고 있다는 게 당내 평가다. 이들의 모태는 1991년 NL계열 운동권 단체가 총집합해 만든 ‘전국연합’이다.

    이들은 당시 충북 괴산 군자산에 모여 ‘3년 내 민족민주정당 건설’, ‘10년 내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