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공산당이 권력교체기를 앞두고 터진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실각 파문과 관련해 지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대의 선전전에 나서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국 관영매체 편집인과 임원들은 당이 보시라이의 숙청을 발표한 뒤 선전기구를 총동원해 보시라이 축출 결정을 지지할 것을 촉구하며 지난 수십년 사이에는 보지 못했던 광범위하고 정교한 선전전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06년과 1995년에 대규모 숙청이 있었을 때도 당 지도자들은 언론매체에 이번처럼 많은 선전 메시지를 싣지 않았다. 또 톈안먼 사태 이후 당 간부와 관리들에게 당에 대한 충성서약 재확인을 촉구하는 사설이 지금과 같은 빈도와 강도로 실린 적도 없다고 한다.

    홍콩대학 중국미디어프로젝트의 편집인 데이비드 반두르스키는 "언론매체에 대해 현재와 같이 개입한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면서 "그들은 통일과 단결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정말로 불안감과 우려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영 신화통신이 보시라이의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직 정직을 보도한 10일부터 시작된 당의 선전전은 특히 첫 주에는 보시라이 열성 지지세력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학도 출신인 보시라이는 언론매체를 능숙하게 이용해 열성적인 지지자를 확보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강경한 사회주의자이거나 군의 고위 장성이어서 선전전을 통해 이들을 보시라이와 떼어놓아야 했다.

    관영매체의 한 고위 임원은 "그들은 사회 내에 다른 시각이나 해석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인민들의 사고를 단일화하는 선전물과 기사를 많이 싣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11일부터 인민해방군 기관지인 해방군보(解放軍報)에서 젊은이들이 뉴스를 얻는 포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매체에 보시라이와 관련된 사설이 실리기 시작했으며 이 사설들은 대부분 당의 공식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원전' 역할을 했다. 인민일보는 그날 이후 매일 보시라이와 관련된 사설을 싣다 20일에야 처음으로 관련 사설을 싣지 않았다.

    관영매체의 한 편집인은 보시라이가 숙청되면서 주요 매체 편집인들은 인민일보가 당의 숙청 결정에 관한 사설을 3일 연속 쓸 계획이며, 주요 신문은 이를 싣고, TV뉴스는 이를 요약해 방송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나중에 갑자기 다른 매체들도 사설을 싣도록 방침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 편집인은 "이는 아직 많은 사람이 보시라이 편을 들고있어 선전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였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