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닌 탈북민 자리"..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천안함 추도식 불참이유 듣고 놀랐다!
  • ▲ 탈북자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 그는
    ▲ 탈북자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 그는 "종북세력으로부터 빼앗긴 시민들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9년 평양출생, 전 통일연구원장). ⓒ 뉴데일리

    '64년'간의 기다림이었다.

    "북한 동포는 우리와 같이 유엔 결의에 의하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속히 총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진정한 민중대표를 선출하여 국회에 보내기를 바란다."

    1948년 6월 11일 한국 헌정사상(憲政史上) 최초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채택한 결의문의 요지다. 미국과 러시아의 신탁통치로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도 북한 동포와 함께 국회를 구성하겠다는 당시 초대국회의장이던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대한민국 집권층의 의지이자 국민여망의 천명인 셈이다.

    대한민국은 그해 5월 10일 실시한 총선거에서 남한 대표만 선출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북한 대표의 몫인 '100석'을 남겨뒀다. 소련과 북한정권이 유엔의 자유총선거 결의안을 거부함로써 '분단'의 벽에 막혀 결국 남한만의 선거로 끝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64년이 흘렀다. 2012년 4월11일. 당시 제헌국회가 남겨놓은 100석의 북한 몫에 비로소 '한 자리'가 채워졌다.

    조명철 당선자.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을 받아 19대 국회의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탈북자 출신으로 통일교육원 원장을 지내며 통일 문제에 앞장서 왔던 인물이다.

    인터뷰 시작부터 "기쁜 마음보다는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축하합니다"는 인사말에 손사래를 치며 "입술이 이렇게 부르텄습니다"고 얼굴을 쓸었다. 하지만 "단단이 각오하고 있다"며 곧바로 입을 뗀 그의 눈에서 다른 당선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결연한 '의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북한 김정일 사망 이후로 김정은 체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만큼 불안정하다. 조 당선자를 만나기 불과 3시간 전,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는 보도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각됐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제대로 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북한인권법이 19대 국회에서 통과될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수령독재 전체주의에 반대해 북한을 넘어온 그는 그런 체제 비판에 굳게 입닫고 있는 '종북 정치인들'과 싸워야 한다.

    그는 "종북세력에게 빼앗긴 국민들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를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 ▲ 뉴데일리 인보길 대표(왼쪽)와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오른쪽) ⓒ 뉴데일리
    ▲ 뉴데일리 인보길 대표(왼쪽)와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오른쪽) ⓒ 뉴데일리

    ◆ "국회의원, 저한테 준 자리가 아니라 탈북민한테 준 자리"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이하 <인>) 어떻게 비례대표에 들어가게 됐나요. 박근혜 위원장을 잘 아십니까?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이하 <조>) 제가 학연·지연이 아무 것도 없잖아요. 아마 이번 당의 방침이 ‘우리나라의 가장 소외된 계층, 취약계층과 함께 가자’고 내부에서 그렇게 방침이 정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인> 단순히 그렇게해서 된 겁니까? 새누리당의 당 방침 이외의 다른 사연은?

    <조> 박근혜 위원장의 결의나 당의 슬로건을 보면 '1 대 99'가 아니라 ‘1+99=100’입니다. 그러니까 “대립을 끝장내자. 이념을 끝내자. 그리고 다 같이 가자. 그래서 100%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의미입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죠. 그렇게 하기 위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대표할 사람을 배치해야한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합니다.

    탈북민도 당당히 이 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북한도 알아야 하고 통일도 준비해야하죠. 이 같은 다양한 명분과 과제가 있기에 탈북민을 위한 한 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 계층이 많아 대변할 사람도 많이 필요한데 2만4천명 밖에 안 되는 탈북민에 자리를 하나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인> 왜 ‘조명철’이었을까요?

    <조> ‘우리나라가 그래도 가치를 지키고 버티는 것은 인사시스템이 이렇게 잘 작동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샅샅이 뒤짐을 당했습니다.

    그냥 다 토해내야 합니다. 별걸 다 뒤지고 다 묻고 그래서 가족이 있고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을지도 생각했습니다. 저보다 능력이 있고 재능이 많은 사람들도 작은 실수로 자리를 못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준 자리가 아니라 탈북민한테 준 자리라고만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지금 기쁜 마음보다는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잠도 잘 오지 않아요.

  • ▲ 뉴데일리 인보길 대표(왼쪽)와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오른쪽) ⓒ 뉴데일리

    ◆ 친북세력이 많은 국회.. "단단히 각오하고 있다."

    <인> 이승만 박사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해 제헌국회를 열었을 때. 북한에서 선출되어야할 국회의원들을 위해 인구수에 비례하여 100석을 공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빠른 시기에 북한도 유엔 감시하의 총선을 거쳐 통일 국회를 이뤄야한다는 염원과 함께,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전체'라는 통일 의지를 전세계에 천명한 상징적인 100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4년이 지난 2012년, 비로소 북한 주민 대표라 할 수 있는 조명철 당선자가 국회의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개인의 영광을 넘어서 대한민국 국회가 남북통합 국회로 첫 출발한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때의 오래된 꿈이 이제 실현되기 시작한다고 봐야 할까요.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의 결단과 비전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또한 지금 상황은 제헌국회 때와 많이 비슷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제헌국회 때 위장한 남로당원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소위 합법적 불법투쟁을 벌였던 '국회 프락치사건'을 아시겠지요.

    1949년 3월. 공산당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김약수 등 13명이 북한의 박헌영과 서로 밀통하는 '보고서'가 발각됐습니다. 그들을 검거해 1심 재판을 하고 2심 재판을 기다리는 중에 6.25남침이 터졌습니다. 당시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그들은 탈출해 북으로 도망갔습니다. 김약수는 북한 가서 인민회의 대표(국회의원)가 되었죠.

    근데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옛날처럼 위장할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름만 다를뿐 공산당이 사실상 합법화된 듯한 나라입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좌익성향 정치인들이 당선됐습니다. 오늘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지하당에 몸담았던 사람등 여러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국회에서 북한 공산체제를 반대해 넘어오신 분이 국회의원이 됐으니 친북세력과 맞상대로 국회활동을 하셔야 합니다. 홍관희 박사도 “직접 국회 들어가서 좌익들과 싸워야겠다”며 자유선진당으로 출마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낙선했습니다. 이런 상황 분석과 인식을 충분히 하셨을터이니 각오와 대책을 듣고 싶습니다.

    <조>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참 걱정이 많습니다.
    통일은 미래에 꼭 찾아올텐데 그 미래를 담당해야 할 청년들이 북한을 너무 모릅니다. 알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차단됐기 때문입니다. 역사ㆍ안보ㆍ통일 교육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교육도 선택과목이고 통일 강의도 계속 줄어들고 책에도 북한이나 통일 관련된 문장들이 다 줄어들어 조금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러면 사회적인 교육이라도 해야하는데 정치인들은 계속 싸우기만 합니다.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북한 경제가 너무 열악하다보니까 통일을 이야기하면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경쟁, 경쟁’만을 이야기하다보니까, 다들 안보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한국사회에 틈이 많이 생기자 이를 활용한 일부세력들이 주민들이나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가치를 심어주지 않고 혼돈된 가치관을 계속 주입하고 있습니다.

    통일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문제가 더 커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통일 세대의 의식과 의지가 과거 세대에 비해 점점 더 나약해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교육해 잘못된 외풍. 잘못된 정보. 잘못된 논리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합니다. 자연방임상태로 놔둬서는 안 됩니다.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관리하는 활동을 국회에서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과정은 분명 의회에서 투쟁을 통해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일부세력들이 또 얼마나 반대하겠습니까. 왠만한 의지를 갖지 안고,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법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단단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 ▲ 뉴데일리 인보길 대표(왼쪽)와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오른쪽) ⓒ 뉴데일리

    ◆ 통합진보당, 북한 지령대로 움직인다? "한발 더 나간 느낌이다."

    <조> 제일 마음 아팠던 것은 얼마 전에 ‘천안함 2주기 추도식’에 갔을 때입니다. 국립 대전현충원에 온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은 정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는 모두 불참했습니다. “북한 입장을 생각해서 안왔다”는 것입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고 놀랐습니다. 북한에 희생된 장병들이 있는데 가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참배하러 안왔다니, 이게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인> 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북한과 공존하고 나아가 연방제로 가자는...

    <조> 그들이 북한을 몰라서 그렇게 주장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당의 이념이나 목표가 북한과 일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상합니다. 그들의 정강ㆍ정책을 보면 우리 헌법과도 어긋납니다.

    <인> 북한 지령대로 움직인다는 주장들도 있습니다.

    <조> 지령보다 한발 더 나간 느낌입니다. 제가 열심히 싸울 것입니다.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종합해보면 정말 이건 아닙니다.

    <인>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만 일부 조항을 개정해서 확실하게 반란을 목표로 하지 않은 행위는 처벌할 수 없게 만들어 놨습니다. 기소해서 재판을 받아도 범인이 부정하면 응분의 처벌을 못하게 해 놓은겁니다.

    과거 서독은 아데나워 정부가 ‘헌법수호청’이란 것을 만들었어요. 전후 나치나 소련에 동조하는 세력의 득세를사전에 원천봉쇄해 버렸습니다. 그러한 정당이나 조직은 해산시켜버렸죠. 그런데 한국은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확정 판결해도 해산은 커녕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텐데요.

    <조> 저는 말보다 현장경험을 통해 대한민국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이 제도를 지켜야한다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이 제도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법치사회의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 마지막 보루가 ‘국가보안법’입니다. 사문화 된 법은 있으면 안 됩니다.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인지 깊이 점검할 것입니다. 많은 애국자들과 소통해서 정말 잘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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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인권법, 꼭 통과시킬 것이다."

    <인> 미국과 일본등 외국에서 마련하는 북한인권법도 우린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조> 제가 꼭 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인> 당론이 중요한데...새누리당조차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지 않을까요?

    <조> 다 설득할 겁니다. 제가 얘기하면 다 이해할 겁니다. 왜냐하면 전 최고의 경험자 아닙니까(웃음). 북한을 경험하고 국제사회를 경험하고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들이 대부분 많은 사람들에 공감을 얻은 과정이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새누리당은 이제 내부에서부터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박근혜 위원장은 설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에 사회의 가장 취약한 소외된 계층을 안고 가겠다는 마음을 확실히 표현했습니다. 선거유세 때도 만났고 전화통화도 했고 그 분 말씀하시는게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서도 확실히 대처하고 인권문제도 충분히 돌보면서 미래지향적으로 가야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이 말을 대부분 절제하며 하시는 분이신데 그 절제된 바탕에는 정말 굳은 의지들이 다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누리당을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시작하려면 서로 믿어야 합니다.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 중심에 박근혜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일단 시작할 땐 성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없는게 저에게 '비례대표 4번’을 주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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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체제 유지될 것.. MB정부, 북한 제대로 다뤘다."

    <인> 김정은 3대세습 체제의 앞날은 어떻게 보십니까?

    <조> 잘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내부의 대체세력이 잘 보이지 않아요. 반정부세력이라든가 시민세력이라든가.

    <인> 지하조직은?

    <조> 보이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가 너무 양분돼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중국입니다. 우리는 중국이 어떻게하면 바뀔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북한도 오래 못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중국의 정치제도를 민주화시켜야합니다. 정치자유도를 높여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확립되면 될 수록. 그 체제의 대외정책은 국제사회 보편적 가치에 접근해갈 수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와 중국이 경제ㆍ문화 교류를 넘어 정치적으로도 협력해야 합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계속 이끌고 가야합니다.

    <인>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경험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 어떤 정책도 공과는 다 있습니다. 과만 있는 정책은 있을 수가 없죠.
    제일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는 다른 정부에 비해 북한을 제대로 다루려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북한을 달래기 위한 수단만을 썼다면, 지금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하는 수단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사람들에게 홍보가 안되서 그렇지 정말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재만 했다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대화와 지원에 대해서도 제의했습니다. 다 북한이 거절하고 땡깡놓고 그래서 성사되지 못한 것이죠.

    북한 당국이 아닌 북한 주민인 취약계층, 소외계층이 굶어죽고 있는데 모니터링을 철저히하면서 지원해줄 수 있는 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인>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정책은 당사자로서 할말이 많겠는데요.

    <조> 제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어느 대통령보다 탈북자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가 1급 공무원이 된 것도 이명박 정부가 최초입니다. 상징성이 있는 것이죠.

    또 탈북자들을 제일 많이 만난 것도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청와대수석들도 탈북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외교안보수석도 수시로 탈북자들을 만나 귀기울이고 외교부장관도, 통일부장관 등도 전부 탈북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느 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한 배려를 이렇게 해줬습니까. 예산도 10배 이상 늘었습니다. 통일교육위원도 7명에서 37명인가로 늘렸습니다. 통일부 정책장이 한 명이었던 것을 두 명으로 늘리기도 했죠.

    더군다나 기업들이 하도 탈북자들을 받지 않아 대통령께서 탈북자들을 위한 전용 공단을 만들어서 탈북자만 받자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죠. 그래서 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대통령보다 많이 배려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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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동안 김일성대학 교수직.. "학생들에 강의하기 부끄러웠다."

    <인> 평양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교수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조> 87년 10월에 임명돼 94년 7월까지 7년 동안 교수직에 있었습니다. 주체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줄여서 주체경제학을 가르쳤습니다.

    <인> 북한 경제 상황이나 정책등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었나요?

    <조> 비판은 절대 못하죠. 그게 정말 억장이 무너집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산업 현장을 보면 정말 창피합니다 정말. 학생들에게 강의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전부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의해야하는데...

    <인>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가지 장단점을 알려주고 모순을 비판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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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간단히만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만약 100개의 강의를 하면 100개의 페이퍼(강의안)가 있어야합니다. 그 페이퍼는 보통 6개월 전에 만들어 강좌장(학과장)·부학부장·학부장·사회과학부장·사회과학부총장·제1부총장·총장 등 7명의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내 페이퍼를 쓰면 여기에 강의 제목을 쓰고. 그 강의할 때 타이틀을 쓰고 그 이름을 밑에 쓰고 여기 위에 칸이 7개나 있는데. 강좌장 사인을 받고 차례차례 심사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사인 다 받지 않고 가지고 들어간 강의는 범죄입니다. 강의에서 페이퍼에 없는 말을 하면 그것도 중대한 범죄입니다.

    페이퍼 첫장은 ‘김일성 교시’를 써 넣어야 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해요. 제일 힘든게 이겁니다. 출처를 딱 쓰고 주제에 맞는 김일성 교시를 찾아 적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 교시를 실천하는 강의내용을
    만들어 결재받는 것이죠.

    <인> 그럼 주체경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 제시, 또는 아이디어  등은 말할수 있을까요?

    <조> 그게 안됩니다. 김일성이 이야기 한 교시에 근거해 김일성 경제정책을 학생들에 가르치는 것이죠.
    아이디어라뇨, 다만 김일성 교시 실천을 위한 아이디어는 허용되지요.

    <인> 경제학이 아니라 김일성 이념 세뇌교육이군요. 반발하는 학생은 없나요?

    <조> 감히 반발하는 학생은 없습니다. 반발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그동안 말 잘못해서 잡혀간 교수와  학생들이 많으니까요.

    <인> 젊은이들이라 그래도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 있을텐데...

    <조> 선진화된 경영기법, 경제기법들을 비교하며 얘기할 수 있는 근거를 학생들이 갖고 있지 못하니 호기심이 생길 수가 없지요. 북한은 인터넷도 못하고 정보가 일체 차단된 폐쇄사회라 진화된 경영기법 경제기법들을 비교하며 얘기할 수 있는 근거를 일단 학생들이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로 김일성의 교시를 근거로 어떻게 더 잘할까하는 논의만 합니다.

  • ▲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는 직접 종이에 '페이퍼(강의안)'의 표지를 메모하며 김일성 대학 교수 시절을 설명했다. ⓒ 뉴데일리
    ▲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는 직접 종이에 '페이퍼(강의안)'의 표지를 메모하며 김일성 대학 교수 시절을 설명했다. ⓒ 뉴데일리

    <인> 학교 강의에 불만이 생겨 북한을 나온 것인가요?

    <조> 어릴 때부터 축척된 폭탄이 터진겁니다. 학교 강의만 불만이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충격이 너무너무 컸습니다. 중국 천진에 있는 남계대학에 2년 동안 교환프로그램으로 가 있었습니다.

    교수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을 비판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중국이 우리보다 정말 못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머리를 망치로 쾅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인> 중국에서 많은 걸 배우셨나봅니다.

    <조> 그 때 개혁-개방이 사회를 이렇게 역동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어떤 사람도 개혁-개방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사석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 잡혀갔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설날을 맞이했는데 정말 기쁜 날 아닙니까.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한잔하고 축복하고 여행도 가고 그래야하는데 ‘김일성 교시 10년사 시험을 치겠다’는 겁니다. 막 가슴이 끓죠. ‘이게 뭐냐. 돈주고 해외에서 공부시키면서. 이 나라 꼴이 뭐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설날엔 교수들을 중국 학교 운동장에 줄 세워놓고 ‘김일성 만세’를 부르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창피한 정도가 아니라 치욕을 느꼈고, 그때 대한민국 학생들과 교수들을 보면서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전공에 몰두하고 공부만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엄청 부러웠죠. 정말 체제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이윤걸 소장이 조명철 당선자가 '박사'라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 '학력논란'에 대해 간단히 설명 좀 부탁합니다.

    <조> 그 사람이 왜 그런지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유로운 세상이니까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이 이력을 속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력에 대한 것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기관에서 평가하는 것이죠. 국정원이 통일부에 신원확인을 한 것을 넘기고 통일부장관이 학력증명을 해줍니다. 저는 거기에 근거해 활동합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이윤걸 소장은 제가 박사라고 거짓말했다고 하는데 제가 박사라고 해달라고 부탁한다고 국가 기관에서 그렇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 ▲ 새누리당 조명철 당선자는 직접 종이에 '페이퍼(강의안)'의 표지를 메모하며 김일성 대학 교수 시절을 설명했다. ⓒ 뉴데일리

    ◆ "종북세력으로부터 빼앗긴 국민들을 되찾아야 한다."

    <인>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구나' 이런 체감은 언제쯤? “잘 왔다. 살만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조> 물론입니다. 자유, 자유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초기에는 반지하에서 살았는데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고, 어디를 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따뜻합니다.

    <인> 따뜻하게 도와준 사람이 많았었나요?

    <조> 인간 삶이라는게 생명있다고 삶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의 연계관계가 형성될 때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혈연, 학연, 지연 등이 전 없었으니까 외로웠습니다. 그동안 같이 일한 많은 동료들이 저를 어떻게든 보호해주고 감싸주려고 했습니다. 특히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함께 했던 유장희 교수님은 친아버지처럼 저를 대해주셨습니다.

    또 교회 분들이 따뜻합니다. 다만 저는 교회에서 하는 설교는 싫어합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건 북한 김일성 교시와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북자들 중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입니다.

    <인> 어떤 내용이 그렇습니까?

    김일성 대신 하느님을 넣으면 내용이 거의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거부감이 들었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따뜻해서 보고싶어 갔습니다. 아무도 난 없는데 친척도 없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정말 따뜻하고 형제같고 사랑으로 뭉쳐있고 그래서 갔습니다.

    <인> 탈북자 여러분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조> 우리 국민들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탈북자들은 통일맞이를 위해 먼저 온 선각자들입니다. 북에 있는 것을 다 버리고 아픔을 참고 왔는데 얼마나 큰 생각을 하고 왔겠습니까. 대한민국이 희망이고 진정한 조국이라고 생각해서 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족하더라도 모자라더라도 좀 다르더라도 이 사람들을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24,000명밖에 안 됩니다. 기업이 길을 열어주고 국민들은 따듯한 지원의 손길을 내민다면, 탈북자들은 나중에 통일이 됐을 때 북한으로 가서 그동안 받은 사랑을 모두 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맨 바닥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유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자유를 찾아왔으니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 황장엽 선생이 돌아가신 뒤로는 그야말로 부동의 대표시잖아요.

    <조>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 알려진 것이죠.

    <인> 탈북자들의 중심이 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조> 탈북자들은 자유를 찾아왔습니다, 김씨일가가 중심인 사회에서 왔습니다. 이제 각자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발적인 단합은 장려하지만 인위적으로 중심을 만드는 것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인> 마지막으로 꼭 하고픈 말이 있다면?

    <조> 종북세력에게 빼앗긴 시민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종북세력들은 정말 깨끗하고 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잘못된 환상을 심어줍니다. 양극화 된 우리 사회의 틈새를 이용해 잘못된 현상과 잘못된 미래에 대한 그림을 자꾸 그려줍니다. 거기에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이 많아 가슴이 아픕니다. 이들을 되찾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인> 그러기 위해서 이제 강연만이 아니라 글도 쓰고 책도 쓰시기 바랍니다. 한국 오셔서 18년이나 혼자 사셨는데 이제 배우자도 맞으셔야지요.

    <조> 네...지금 사귀려 하는 중입니다.
    <인> 아이구, 결혼하시는군요. 경사가 겹쳤네요. 정말 축하합니다.

    인터뷰어 = 인보길 본사 대표
    글        = 김태민 정치 2팀 기자 
    사진      = 양호상 엔터데인먼트팀 기자 
    정리/수정= 안종현 정치 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