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민감해야 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관심도 없어"
  • 병실에 들어서자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제발 탈북자들을 도와주세요.”

    그녀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휴대폰을 꼭 쥐고는 이곳 저곳에 ‘탈북자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지난 2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하던 중 실신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여전히 그녀의 눈빛은 강한 의지로 가득 차있는 듯했다. ‘이제 좀 쉬고 계시겠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받으며 꼼꼼히 일정을 체크했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모습이다. 아직까지는 ‘죽’ 밖에 먹지 못하지만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은 성공적이었다. ‘조용한 외교’를 추구하던 우리 정부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릴레이 형식’으로 단식 투쟁에 동참했다. 그녀의 뜻을 이은 ‘2기 단식팀’도 결성됐다. 하루 2번씩 열리는 ‘중국의 강제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문화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도 집회가 열리고 있다. 탈북자 북송을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 사이트에는 100여개 나라에서 17만명이 참가했고, 중국·미국·영국·독일·일본·콩고 등 10여개국 출신 외국인과 교포들도 중국 대사관 앞을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오는 10일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를 외치러 간다.

    7일 <뉴데일리> 인보길 대표가 병실에 입원 중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을 찾아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벌이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이하 <인>) 아주 큰일을 하셨어요. 국민들 마음이 똘똘 뭉쳤고 전 세계 사람들까지 모두 감동했습니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문제이고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일인데 의원님이 나라의 중심을 바로잡는 일을 하셨습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이하 <박>) 너무 과찬이세요. 그렇게까진 아닙니다.

    <인> 집권 여당 민심이 떠난 이유는 이런 리더쉽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박의원께서 이렇게 국제사회에 당당한 지도자 모습을 보이니까 국민들은 누구보다도 박선영 의원을 지도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날 겁니다.

    <박> 감사합니다. 국민들의 호응이나 관심은 높아졌는데 결실이 이뤄져야 하는데...

    <인> 일각에서는 한중(韓中) 관계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박> 국제협약을 잘 지켜달라고 하는게 왜 문제인가요. 북한 주민들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우리 국민도 못지킨다면, 한중관계가 무슨 소용있습니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우리가 노력한다면 중국이 이번에는 뭔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인> 우리나라 종교계도 탈북자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할텐데요.

    <박> 개신교에서는 계속 오시고 계세요, 불교 단체들, 천주교 단체들도 문화제에 참석합니다. 제가 실신한 날 천주교 신부님 한 분이 오시기도 했어요. 정진석 추기경님도 한 말씀 하셔야하는데...

  • <인> 탈북자 문제는 결국 이념 문제입니다. 북한이 잘못된 이념을 가져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탈북자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북송하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북한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이념 문제가 그 원인입니다.

    <박> 이념 문제로까지 확장시킬 여력이 아직 없어요.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 그리고 인권 이전에 생명권으로 바라봐야 해요.

    인간은 죽으면 사체가 됩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에요. 생명을 말살해버리는 북한으로 사람들을 돌려보낼 순 없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지고 숨을 받아 태어난 인간의 목숨이 개 돼지만도 못하게 다뤄지는 이 현실을 용납할 수 없어요.

    <인> 중국의 강제북송 중지는 보통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것도 동독을 탈출한 주민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다 받아들였기 때문이지요.

    <박> 독일은 통일 전에 동독 사람들 100만명을 받고 교육도 제대로 시키는 등 복지 혜택을 잘 해줬어요.

    <인> 예. 89년 전부터 동독인들은 서독으로 가지 못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서독의 헬무트 콜 수상이 헝가리하고 교섭해서 탈출하는 동독사람들을 받아주라고 했어요. 헝가리와 동독사이에는 탈출자들을 안 받아주는 협정이 있었는데 헝가리가 그것을 깨버린 것이죠.

    이후 동독인들은 물밀듯이 헝가리로 갔고 동독에서는 여행을 자유화해달라고까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를 달래기 위해 동독 공산당은 여행자유화 법안을 만들었는데 담당 공보관이 조금 실수해 “지금 이시간부터 한다”고 한 말이 뉴스에 나가버렸는데 그 순간 장벽으로 동독인들이 다 몰려들었어요. 그 연쇄파동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죠.

  • <인> 북한도 중국이 송환 않겠다고 하면 아주 위험하고 국경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난민 문제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북한에서 자스민 혁명 비슷한 사태가 날까봐 걱정하는 거에요. 아주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를 잡았습니다. 통일의 빌미가 될 열쇠를 잡으셨다고 봐도 좋아요. 북한과 중국은 지금 아주 민감할 것입니다.

    <박> 거의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고 있죠.

    <인> 제네바엔 언제가시죠?

    <박> 김형오 전 국회의장, 안형환 의원과 함께 10일 출발해서 16일에 돌아옵니다. 7~8명 정도 가시면 좋을텐데 예산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제네바는 호텔값도, 비행기값도 비싸 개인이 할 엄두를 못냅니다.

    <인> 야당 의원들은 없나요?

    <박> 없습니다. 인권에 민감해야 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인데...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도 아직도 동참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권 주자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과 조국·진중권 교수 등 대표적인 진보 논객들이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 다행입니다.

    <인> 딸이 제네바에 있습니다. 유엔고등판무관실에 근무하고 있는데, 제 딸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김정일리아 영화도 틀고 탈북자를 위한 통영의 딸 귀환 운동도 했습니다. 심부름 시킬 일 있으면 시키세요.

  • <박> 감사합니다. 지금 저희가 유엔난민고등판무관 면담을 신청해놨어요. 지금 거기에 탈북자 억류된 48명 가운데 어른들만 있는게 아니라 14개월하고 1개월 된 아기도 있어요. 잡힐 때 20일, 13개월된 거죠. 또 16살, 17살, 19살 미성년자들도 있어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한 서울 시민이 중국에 억류돼 있는 탈북 아기들에게 전해달라고 모자를 떠 왔어요. 우린 전해줄 방법이 없으니까 제네바에 가서 각국 대표단에 전해달라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인> 북한과 중국 대표들도 만나나요?

    <박> 북한 대표도 오고 중국 대표도 오긴 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비자도 안내주는데 안 만나주겠죠. 북한은 말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기자들 뻗치기(중요한 취재원을 만나기위해 무작정 집 앞에서 밤새는 것)하듯 입구에 서서 대표단들이 왔다갔다 할 때 이야기 할 생각입니다. 표찰을 보면 누군지 아니까요.

    <인> 중국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하나요?

    <박> 중국은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기만을 바라겠죠.

    <인> 이승만 박사가 1933년 국제연맹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갔습니다. 그는 한국임시정부대표로 연설하려고 준비도 다하고 갔었는데 거기에서 문을 안 열어줬어요. 그래서 이승만이 문 앞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박 의원이 가셔서 농성해야 하는 것도 이와 같아요.

    이승만은 본회의장에는 들여보내주지 않으니 스위스 신문 뿐 아니라 각국 언론들 상대로 전부 자료 만들어가서 연설문 등을 다 돌렸습니다. 그러니까 큰 신문사들이 이승만을 인터뷰해 대서특필했어요. 국제회의장 들어간 것보다 더 큰 효과였습니다.

    <박> 저도 들어가도 회의장 못 앉고. 옵저버 자격으로 밖에 못 앉습니다. 각국의 대표들만 밑에 앉고 발언권도 그 사람들 밖에 없기 때문에 입구에서 자료를 나눠주고 호소를 할 생각입니다.

    <인> 탈북자 문제는 언제까지 다룰 것인가요?

    <박> 전 국회의원 되서 한게 아니라. 10년도 더 됐지요. 교수 시절부터 했습니다. 국제세미나 열면서 북한인권법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어요. 해결될 때까지 해야죠.

    <인> 기대효과에 못 미쳐도 이 문제를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계속 국제무대에 가서. 우리의 뜻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딴 세력들은 걱정일 것입니다. 동독꼴이 날까봐서. 아마 북에서도 지시가 계속 내려올 것입니다. 조심해야 해요. 신변이 위험한 상황이 생길수도 있어요.  

    성모 마리아 같아요. 제네바에서 뉴스거리를 꼭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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