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강용석을 고소-고발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 강용석에 대해 “루저”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그래서 한마디.

    1979년 여름. 짜증나도록 더웠다. 나는 열혈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신봉자였다.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만든 다음에 평양까지 치고 올라가 ‘가짜 사회주의자 김일성’을 처단하겠다고 생각하는, 열에 들뜬 스무살 청년이었다.

        남민전은 운동권 족보를 털어먹었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인혁당으로 사형당한 사람들 수의를 빼내어 염색한 후 짜집기해서 대형 북한 인공기를 만들어 벽에 걸고 충성 맹세를 한 다음에 평양하고 연락을 취한 조직이 발각됐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든 무기징역을 살든 나랑은 관계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해괴한 인종들이 대한민국의 운동권 (당시 괜찮은 운동권 인사는 전국을 통틀어서 천명도 안 됐다)을 모두 인터뷰 해서 다음과 같은 ‘성향 분석서’를 쓴 것이다.

        이 인간은 김일성 주석을 존경하는가?

        이 인간은 평양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가?

        이 인간은 주체사상을 지상 명제로 받드는가?

        이 인간은 혹시라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혹은 모택동 주의, 혹은 종파사상(1956년부터 숙청된 남노당계 인텔리 사상)을 흠모하는, ‘비틀린 사상을 가진 종자’가 아닌가?

    이 정신병자들은 1979년 당시 조금이라도 운동권 물을 먹은 사람 하나 하나를 인터뷰해서 이 ‘성향 분석서’를 수 천장 작성했다. 나? 아마도 작성됐을 게다. 갓 스물 파릇파릇 청년이었지만.

    사람들은 1979년이 어떤 세월이었는지 잘 실감하지 못 한다. 우리와 북한의 생활수준이 엇비슷했다. 70년대 초반만 해도, 서남해안의 어촌 주민 중에는 배 몰고 평양에 가서 이빨에 크라운 치료하고 의기양양하게 귀향한 사람의 소문이 돌곤 했다. 당시 한 학년 약 50만명 이상의 고3 졸업생 해당 학령층 중에는 대학생이 불과 10만명 (대학진학률 20%) 밖에 안 나왔다. 대학생은 ‘지성인’이라 불렸다. 막걸리 먹다가 싸움이 나서 파출소에 끌려가면, 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거, 지성인들께서 이러시면 안 되지요.”

    아, 끗발 좋았을 때다. 술 먹다가 인사불성이 되어 경찰 쥐어 패서 코뼈가 내려앉아 검사 앞에까지 끌려갔는데 대학 배지 보여주니까 풀어주었던 시절이다. 학생운동권? 그런 것은 없었다. 전체 학생운동 역량의 99%가 서울대였다. 이대? 겉멋 들린 아가씨들. 연대? ‘인간걱정회’라는 이상야릇한 서클. 고대? 막걸리 신트림 해대는 철없는 젊은이들. 안 믿어 진다고?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의 간부들이 어느 대학 나왔는지 보면 안다. 99% 서울대다.

    자, 이런 시절에 수 천 명의 ‘사상 성향을 분석한 서류’를 만든 정신병자들이 남민전이었다. 사형당한 보스(boss) 이재문은, 체포 당했을 때, 서류를 불태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내 서류! 아, 이 서류! 아, 이거 털리면 작살나는데!” 이렇게 발 동동 구르면서, 친척 여자 (이재문은 동성동본의 친척 여자를 내연의 처로 데리고 살았다. 사상이 화끈하면 근친상간이 문제될 게 없다)를 보호하는 대신에 서류를 태우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했다.

    이 정신병자들이 잡혀가자, 세상이 숨을 죽였다. “에고고고 내 이름도 올라 있다는데?” ..이런 이야기가 사방에서 수근수근.

    남민전을 누가 잡았나? 일개 총경이 잡았다. 박처원. 대공분실. 원래 경찰 대공라인은 좀 무식했다. 깊은 정보가 없었다. 오리지날 정보는 당시엔 죄다 안기부(지금 국정원)에 있었다. 그런데,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았다. 경찰 대공분실이 대박을 친 게다. 그래서 1979년에서 1987년까지 무려 8년 동안, 굵직굵직한 공안 사건은 모두 대공분실이 잡아들였다. 기적이었다. 그래서 경찰 역사가 다시 쓰였다.

    첫째, 경찰 역사에서 총경에서 치안정감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승진한 게 박처원이다.

    둘째, 대공분실 (일개 경찰서급 조직)에서 대공수사단(광역 지방청급 조직)으로 가장 빠른 시간에 조직 팽창한 게 경찰 대공 라인이었다.

    셋째, 전두환이 소집한 공안 회의에서 가장 상석에 앉은 인물이 경찰 대공라인 책임자 박처원이었다.

        야, 이 말종아! 총경이 같은 총경이냐?

    대공라인의 비애는 돈이다. 세상에, 빨갱이로 잡혀 온 사람이 뇌물 바치는 법은 없다. 그래서 경찰 대공라인은 항상 배가 고팠다. 말하자면 집안 내력이든 (박처원은 아마 평안도 출신으로 월남한 사람일 게다) 뭐든, 눈이 뒤집힌 사람이 아니면 대공업무를 맡으면 안 된다.

    그래서 당시 대공분실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그 땐 테니스코트에 소금을 뿌리고 돌로 된 롤러를 굴리던 시절이다. 대공라인은 치안 본부에 소금을 타러 다녔다. 치안본부 인사과장에게 극진히 인사하고 소금을 너댓 가마 얻어 뿌리는 것—이것이 이 거지 신세 대공라인의 낙이었다.

    그런데 치안본부 인사과장이 사고를 쳤다. “어? 당신들은 소금만 먹고 사나?”

    이 말은 전해 들은 박처원이 격분했다. 치본 인사과장(총경)을 수갑 채워 끌어 온 다음에 ‘빨간방’ (이게 김지하가 말하는 ‘하얀방’이다. 고문실이다 서너달씩 재우면서 ‘만져주는’ 방이다)에 꿇어 앉혀 놓고 쥐어 패면서 이렇게 말했다.

    “야 , 이 말종아! 총경이 같은 총경이냐? 그래, 우리는 빨갱이 잡느라고 거지 같이 살아서 소금만 먹는다. 너는 뇌물 받아서 배가 부르냐? 내가 요즘 정말 부끄러운 게 뭔지 알아? 세상이 이상해져서 새파란 어린애들이 자생적 공산당이 되어가는 게야. 너 같이 썩은 말종들이 바로 이 자생적 공산주의자를 만들어! 그거, 알아? 이 말종아!”

    이렇게 독이 오른 사람이었기에 드디어 사고가 터졌던 게다. 1987년 박종철의 죽음. 그때 책임자가 박처원, 그 밑의 J 그리고 Y 이다.

        나는 그때 볼멘 소리를 했다

    위에서 묘사한 그런 시절. 남민전이 정신병자 짓을 해서 운동권 족보가 다 털렸다. 사방에서 남민전을 비난하는 소리가 쏟아졌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비난했다.

    “머, 저런 정신병자들이 있어? 운동권 사람 하나하나, 수천 명의 족보를 만드는 미친 사람들!”

    남민전은 인혁당을 이은 조직이고, 인혁당은 통혁당을 이은 조직이다. 통혁당은 마조키스트 평양 직속의 지하조직이다.

    왠 마조? 섹스에서도 분명히 마조였을 게다. 평양으로 건너간 자기 선배들이 1956년 가을부터 7~8년에 걸쳐 비참하게 숙청당했는 데에도 (이 사건을 김일성 일족은 자랑스럽게 ‘8월 종파사건’이라 부른다)..여전히 김일성에 충성을 맹세한 최초의 남한 지하당이었다. 이것은 이념적 마조키즘이다. 나랑 만났으면 섹스와 육체에 대해서도 확실한 마조키스트로 만들어 드릴 수 있었는데…

    이런 흉측한 생각을 하는 스무살 청년이었던 내게 …종파주의자였던 (즉, 평양을 극도로 혐오했던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였던) 선배가 진득하게 말했다.

    “야,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마. 남민전은 정신병자들이지.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야. 피가 들고 멍이 들면서, 실패와 바보짓을 거치면서 구불구불 가는 거야.”

    와우. 그 순간 그 선배가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그 덕에 나는 그로부터 꼬박 10년 동안 더 지하 급진운동을 계속했다.

        당신들이 보수야?

    자, 좌파 급진도 이렇듯 세상이 우회한다는 것, 어리석은 일과 바보 같은 실패를 통해서 꾸역꾸역 흘러간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지금 강용석 털어내기에 열중하는 당신들은? 자칭 보수라며? 자칭 제도권이라며? 자칭 지식인이라며? 그런데 싸움은 단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가장 기초적인 진실도 몰라? 그냥 지금 이 순간 부담스럽다고 털어내고 마니?

    그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아내, 남편, 애인, 자식을 유지하고 살아? 그런 썩은 영혼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 그래. 당신들이 살고 있는 것은 인생이 아니야. 개, 돼지의 삶도 아니지. 그냥 썩은 박테리아 같은 존재일 뿐이야.

        한 가지 비밀을 말해 줄까?

    강용석이 어떻게 그 자료를 구했을까? 거기에 비밀이 있어. 그걸 파 봐. 당신들 머리 한 구석엔, “거, 정보기관이 제공한 걸 거야. 그러니 그걸 파면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해” …뭐, 이런 썩은 계산이 돌아가고 있겠지?

    에고. 우리나라 군, 경찰, 정보기관의 문제가 뭔지 알아? 공안/치안/안보이기 이전에 공무원이야. 사회 통합과 안보와 질서 이전에 밥줄이야. 그렇게 된 지 10년도 넘어. 공무원들이, 자기 목 걸고, 공작해서 병원에서 데이터 빼내? 에고….우리나라 군, 경찰, 정보기관이 그런 배짱이 있다면, 나는 내일부터 ‘볼룸댄스 학원’ 다닐 거야. 세상 일을 걱정할 게 없지. 나 같은 개털이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대해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잖아?

    잘 생각해 보시도록…이 답을 풀면, 그 때 비로소 ‘사회에 대한 책임을 상상할 수 있는 제도권’에 입문하게 된다구!  

    필자는 이 비밀을 알고 있고, 조만간 공개할 생각을 갖고 있다.


  •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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