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선물>

    정초에 골프장에서 아주 뜻밖의 사람에게서 참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골프장이 10불 정도로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곳에서부터 비싸게는 500불이 넘는 곳도 있을 정도로 아주 다양합니다. 그래서 골프가 중산층 이상만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기만 하면 의사든 교사든, 전기공이든, 세탁소를 하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남가주 작은 마을에 있는 골프장은 노인들에게 특별히 할인까지 해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어 은퇴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한데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백인들과 동양인들이고, 잔디 관리 등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히스패닉들입니다. 
    그들은 일을 하다가 손님이 공을 치면 잠시 기계를 꺼놓고 기다려주기도 하고, 물을 뿜어대는 호스를 잠그기도 하며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 그것이 골프장의 규칙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그런 배려가 고마워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댕큐”라 하고, 멀리 있으면 가볍게 목 인사를 하거나 손을 한 번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한데 많은 사람들이, 특히 동양 사람들은 그들 곁을 지나가면서도 본 척도 하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도 전혀 보이지 조차 않는 것처럼 지나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동양 사람들이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은 그들을 무시해서라기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합니다. 
    동네에서 산책을 하다가 사람과 마주치면 모르는 체 하지 않고 서로 '굿모닝' 또는 '하이' 같은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게 일반적인 미국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골프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섯 번째 홀에서 여섯 번째 홀로 가는 길목, 나무 그늘아래 멕시코 할아버지가 일손을 멈추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가 나를 보는 순간 급히 카트를 몰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굿 모닝”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더니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핑크색 골프공.
    그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공을 가리키고 그리고 나를 가리켰습니다.
    이 공을 너에게 주고 싶다는 무언의 손짓.
    아마도 잡초를 깎다가 주은 공을 나에게 주고 싶어 그는 열심히 여자 골퍼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인사를 해도 언제나 무표정이던 깡마른 할아버지.
    꾀죄죄한 작업복에 햇볕에 그을린 거무티티한 얼굴.
    그가 왜 나에게 이토록 예쁜 핑크색 공을 주는 것일까?
    말 한마디 없이 (골프장에서 일하는 관리인들 대부분이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합니다.) 내게 공을 내밀며 한 손가락으로 공을 가리키고 나를 가리킨 그 모습이 내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 할아버지에게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시원한 음료수 한 병 그에게 건네 본 적 없습니다. 단지 내가 한 것은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않고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이런 아주 지극히 간단한 인사를 했던 것뿐입니다.

    얼마나 정성 들여 깨끗하게 닦았으면 골프공이 마치 크리스탈처럼 반짝일까.
    정초에 받은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김유미 재미작가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