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딸' 도와달라니까 "미친년" 외치더니.."위대한 수령님 부자에 큰절"?
  • 통영 출신의 종북(從北) 음악가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84)와 딸 윤정(61)이 사망한 김정일을 조문하기 위해 방북한 사실이 27일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6일 '김정일 동지의 령전에 재중항일 혁명투사, 재중항일혁명투쟁 연고자, 중국항일 혁명투쟁 연고자 가족 일행들과 해외동포들 조의 표시'라는 제목으로 조문과 관련된 사진 수십 장을 내보냈다.

    이 사진들에는 이수자가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딸과,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세 명의 남성과 함께 조의를 표하는 장면도 담겨 있었다.

  • ▲ <조선중앙방송>은 해외교포의 조문이 이어졌다는 보도를 통해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와 그의 딸로 추정되는 인사들이 조문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 <조선중앙방송>은 해외교포의 조문이 이어졌다는 보도를 통해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와 그의 딸로 추정되는 인사들이 조문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윤이상은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알려진 얼굴’ 외에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을 서약한 종북(從北) 인사다. 

    1992년 안기부는 ‘오길남 간첩사건’의 전말을 발표했다. 오 박사는 독일유학 중 윤이상의 권유로 1985년 아내 신숙자 씨와 두 딸을 데리고 입북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했다.

    오 박사는 1986년 11월 ‘재독유학생을 포섭해 데리고 입북하라’는 ‘지령’을 받고 덴마크로 침투하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몰래 탈출했다. 

    오 박사는 윤이상이 북한과 연계해 入北(입북)을 적극 권유 및 주선했고, 오 박사가 탈출 후 독일에 체류할 때도 갖은 협박을 하며 재입북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윤이상이 독일에 설립한 한국학술연구원(KOFO) 또한 북한 대남공작기구의 자금을 받아 설립, 운영된 조직이라는 사실도 알렸다. 

  • ▲ 극과 극이다. 이수자의 자서전‘나의 독백’에 실린 그의 평양 교외 주택(왼쪽). 사진 속의 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이수자. 김일성이 윤이상 부부에게 내준 이 집은 평양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있으며, 잔디가 깔린 넓은 뜰에 온갖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오른쪽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신숙자씨와 오혜원-규원 모녀. 1991년 윤이상은 오길남씨에게 북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며 가족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와 이 사진을 건넸다.
    ▲ 극과 극이다. 이수자의 자서전‘나의 독백’에 실린 그의 평양 교외 주택(왼쪽). 사진 속의 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이수자. 김일성이 윤이상 부부에게 내준 이 집은 평양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있으며, 잔디가 깔린 넓은 뜰에 온갖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오른쪽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신숙자씨와 오혜원-규원 모녀. 1991년 윤이상은 오길남씨에게 북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며 가족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와 이 사진을 건넸다.

    안기부는 1992년 ‘입북 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결과 발표에서 17차례에 걸쳐 입북해 김일성을 만나고, 김일성 생일선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했던 사실 등을 들어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북한도 윤이상을 ‘애국자’라고 칭송하며 20여 년 전부터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평양에서는 매년 ‘윤이상 음악당’에서 ‘윤이상 음악회’가 열린다. 

    김정일은 1992년 윤이상을 모델로 한 ‘민족과 운명’이라는 체제 선전 영화를 직접 제작지도하기도 했다. 1999년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윤이상에 대해 “남조선 사회를 등지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의로운 음악창작활동으로 조국통일 위업에 적극 이바지한 재능 있는 음악가”로 묘사했다. 

  • ▲ 사진 맨 위.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가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 적은 글. '위대하신 수령님 영생불멸(永生不滅)하십시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아래는 이 사진이 실린 북한의 책. 그 아래는 김일성 교시집. 맨 아래는 윤이상을 북한의 애국자로 칭송하는 북한서적들.ⓒ ⓒ
    ▲ 사진 맨 위.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가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 적은 글. '위대하신 수령님 영생불멸(永生不滅)하십시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아래는 이 사진이 실린 북한의 책. 그 아래는 김일성 교시집. 맨 아래는 윤이상을 북한의 애국자로 칭송하는 북한서적들.ⓒ ⓒ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가 2003년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김일성 사망 1주년 당시 윤이상의 편지도 수록돼 있다. 

    윤이상은 이 편지에서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을 찬양하고 있다. 

    '영원한 추억'에는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의 글도 사진으로 수록돼 있다.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에 적혔다는 이 글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 등의 내용이 보인다. 

  • ▲ 경남 통영에 있는 종북음악가 윤이상 가족들의 주택
    ▲ 경남 통영에 있는 종북음악가 윤이상 가족들의 주택

    사진으로도 촬영돼 있는 부인 이수자氏의 글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에 적은 것이다. 이 글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영원한 추억」에 수록된 윤이상 부부의 편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아- 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떠나신지 벌써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를 이으신 장군님께서 한 치의 빈틈없이 나라 다스리심을 수령님께서 보고 계실 것입니다. 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 우리의 강토를 지켜주시고 민족의 념원인 통일됨을 열어주십시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 (주체88년 7월 8일 리수자)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과 이 몸이 산산이 쪼각나는 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위대하신 수령님의 서거의 통지를 접하고 허탈상태에 있는 이 몸이 병중에 있으므로 달려가 뵈옵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을 표현하며 전 민족이 한결같이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 (1994.7.9 빠리에서. 치료 중에 있는 윤이상 부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서거 1돐을 맞이하여 그 영령 앞에 심심한 애도와 흠모를 절감하오며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도이췰란드 베를린의 병원에서 윤이상 삼가 올립니다. (1995년 7월 8일)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부르시던 저의 남편 윤이상은 오늘 병원 병석에 누워있어 저와 같이 수령님 령전에 가서 수령님을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주만사의 원리라고는 하지마는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항상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에 계심을 느끼며 수령님을 추모할 때마다 그 인자하시고 인정 많으시고 눈물 많으신 우주와 같이 넓으신 덕성과 도량, 세상의 최고의 찬사를 올려도 모자라는 수령님, 살아계셨어도 그러하였고 돌아가신 뒤도 부디부디 불우한 저의 민족의 운명을 굽어 살펴주소서. 수령님 령전에 무한한 평화와 명복을 빕니다. (1995년 7월 8일. 리수자)

    김일성에게 이렇게 충성하던 윤이상 가족들은 이후로도 독일과 한국, 북한을 오가며 자유롭게 생활 중이라고 한다. 반대로 오 박사가 탈출한 뒤 북한에 남겨진 신숙자 씨와 두 딸은 이후 요덕수용소에 수감 중이다.

    1991년 요덕수용소에 수감됐었다는 K씨, 1992년 수감됐다는 또 다른 K씨 등은 신숙자 씨와 두 딸들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들에 따르면 신숙자 씨와 딸 혜원·규원은 절대 하늘을 올려보지 않고 땅만 바라보고 다녔다고 한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독일집’으로 불리던 신 씨 모녀가 2003년 9월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특히 신 씨의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던 것으로 기억했다.

  • ▲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과 규원. 오길남 박사가 북한을 탈출한 뒤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를 만나 가족을 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윤이상은 북에서 건네준 이 문제의 사진을 건네주며 빨리 북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은 죽을 것이란 이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의 촬영 장소는 요덕수용소에서 이들을 봤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어 요덕수용소 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과 규원. 오길남 박사가 북한을 탈출한 뒤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를 만나 가족을 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윤이상은 북에서 건네준 이 문제의 사진을 건네주며 빨리 북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은 죽을 것이란 이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의 촬영 장소는 요덕수용소에서 이들을 봤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어 요덕수용소 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윤이상의 부인과 딸 등은 강제 수용소에 갇힌 '통영의 딸'을 구출하는 데 힘써달라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했다.

  • ▲ 윤이상의 딸 윤정.
    ▲ 윤이상의 딸 윤정.

    지난 10월 29일 <조선일보> 10면 기사를 보면 “'통영의 딸(오길남 씨 부인 신숙자 씨 모녀)'을 돌아오게 힘써줄 수 있나”고 기자가 묻자 윤이상의 딸은 “이 여자 미쳤구먼”이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당시 윤이상의 아내 이수자와 딸 윤 정은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 참석하러 경남 통영에 와 있었다. 이들을 만난 기자가 “요즘 ‘통영의 딸’을 구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신숙자 씨 모녀가 돌아 올 수 있도록 북한당국에 힘을 써 주실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이 여자 미쳤구먼, 미친 여자, 미쳤어”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 ▲ 북한 책자에 실린 윤이상과 그 가족들의 모습. 윤이상 가족들은 평양에도 집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 책자에 실린 윤이상과 그 가족들의 모습. 윤이상 가족들은 평양에도 집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통영의 딸' 문제가 커지고, 오길남 박사의 '폭로'가 계속되면서 이목을 끌자 윤이상의 딸이 오 박사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 검찰의 수사가 현재 진행중이다.

    한편 정부가 민간조문을 불허했지만 이수자와 그 가족들은 현재 독일 국적을 갖고 있어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