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기무사-검경 '대북 정보망' 쑥밭 만든게 누군데...이제와서 간첩 타령?
  • 간첩을 상대로 사기 치면 어떨까? 공작금을 한 1억 받아서 친구들 데리고 강남 룸살롱에 가서 한 달 동안 간이 빠개지도록 술을 푸면 어떨까? 최고급 밴드의 섹스폰 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면서 돈을 뿌리면 어떨까? 이 철딱서니 없는 짓을 하면서 이렇게 큰 소리 치면 어떨까? 

    ”야! 이 술 값 어디서 난 지 알아? 얼빵한 간첩이 줬어. 간첩한테 슈킹한 돈이야!”
     

  •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천만에. 지금도 아련히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대한민국에 침투했던 간첩 중에 제일 급수가 높았던 간첩은 황태성이다. 경북 상주 출신 지식인으로서 월북해서 무역부 장관까지 한 인물이다. 박정희는 청소년 시절부터 황태성을 멘토로 따랐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 보증한 사람도 황태성이었다. 5.16 직후인 1961년 8월에 황태성은 박정희를 포섭하겠다고 내려왔다가 그 해 12월에 체포되어 1963년 12월에 처형되었다.

     황태성이 체포되기 전에 만난 인물 중에는 시인 김지하가 있다. 황태성이 김지하에게 당시 화폐로 5백 만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대책 없는 자유주의 술꾼이었던 김지하는 이 돈을 가지고 서울대 문리대 후배들과 밤낮없이 술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김지하는 “간첩한테 슈킹한 돈이야. 마음 놓고 먹어!”라고 큰소리 쳤다고 한다. 천하의 술꾼이며 천재 문인이었던 김지하에게 간첩은 봉이었고 동네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다. 김지하의 발바닥도 못 따라갈 범생들이 김지하 흉내를 내서 간첩을 동네북 취급한다. 국회의원들이 바로 이 흉내쟁이들이다. 이들은 요즘 앞을 다투어 ‘간첩’을 입에 올린다. 아, 물론, 고상한 국회의원들이 ‘간첩’이라는 저급한 단어를 사용할 리 없다. 이들은 대신 ‘대북 정보력’ 혹은 ‘휴민트’란 용어를 쓴다. 나는 고상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말 대신에 ‘간첩’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까짓, 북한을 상대로 간첩질 좀 하면 안 되나?

     

  • 우리 정보기관이 김정일의 죽음을 미리 알지 못 했던 것을 두고, 국회의원들은 연일 대북정보력이 없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심지어 한 때 MB 정부의 실세였던 정두언은 이렇게 말한다.

     

    “MB 정부 초기에 국정원의 대북 책임자를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사임시켰기 때문에 휴민트가 취약해졌다”

     


  • 한겨레 같은 신문은 “얼씨구나 좋구나”라고 노래를 부르며 이 같은 휴민트 타령—간첩 타령을 부풀려 게재한다. 정말 한심하고 무식한 작태이다. 간첩이 동네북인가? 간첩질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인간들이 간첩 타령을 하고 있는 게다. 간첩의 ABC에 대해 이야기해 줄 테니 귀를 후벼파고 잘 듣고 명심하도록!

     정두언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북한 실세 장성택과 밤새 술 먹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국정원 간부 서모가 있었다. MB 정부 초기에 서모를 사임시켰다. 서모가 지난 정부의 사람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정원의 휴민트가 붕괴 혹은 약화되었다.”

     정말 자던 개가 벌떡 일어나 웃을 소리이다. 휴민트는 ‘간첩 조직의 개발 및 운영’을 뜻한다. 간첩이 장성택과 만나서 밤새 술 먹나? 천만에! ‘간첩 조직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은 그렇게 풍류 넘치는 일이 아니다. 휴민트는, 북한 안에 스파이(spy)를 만들고, 황장엽 같은 고위인사를 유혹하여 탈북시키는 작업이다. 간첩질이 바로 휴민트이다. 목숨을 내 놓고 진행하는 지하 공작이다.

     

  • 정두언 같은 국회의원들은 간첩질이 무엇인지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게다. 나는 좀 안다. 왜? 노무현 정부 초기에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故 서동만 선배(2009년 폐암으로 사망)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둘도 없이 친했던 선배다. 서늘한 눈매, 날카로운 콧대, 냉소적이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던 미소…. 그는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고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도 않았던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국정원 기조실장이 된 후에 가끔 최고급 일식집에서 5 만원짜리 점심을 사면서 이런 저런 일에 대해 내게 의견을 묻곤 했다. 요즘 같이 뻔뻔하다면 그의 판공비를 왕창 뜯어냈을 텐데….

     

    간첩 조직을 육성하고 운영하는 일은, 장성택이랑 술 처먹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고상한 말로 간첩질은 ‘휴민트’라 부르고 장성택이랑 술 처먹는 일은 ‘대북접촉’이라 부른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업무다. 간첩질은 생명을 건 대담함, 10년 치 달력을 암기할 수 있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반면에 장성택이랑 술 처먹고 놀려면 간도 쓸개도 없는 ‘주(酒) 상무’ 근성이 필요하다. 휴민트와 대북접촉은, 그 담당자의 성격과 업무가 전혀 다른 게다.

     원래 국정원은 대북접촉 창구를 운영할 뿐 아니라, 스파이 조직을 육성하고 운영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파이 조직이 모두 없어졌다. 장성택이랑 술 처먹던 대북접촉 창구 서모씨를 날렸기 때문에 스파이 조직이 없어졌다고? 웃기는 이야기이다.

     

  • 간첩 조직이 붕괴한 것은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DJ 정부 초기인 1998년에 대공 전문가 4천명을 일시에 옷을 벗긴 일이 있었다. 국정원에서 약 6 백명, 기무사에서  9 백명, 경찰에서 2천 5백명, 검찰에서 40 명…. 이때 대공 조직의 일부인 ‘간첩 운영 조직’(휴민트 조직)도 거의 모두 옷을 벗겼다. 국정원의 경우, 이 황당한 ‘숙청’ 작업을 총지휘했던 인물이 이종찬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 간첩 운영 조직은 복원된 바 없다. 지금 정부에 관해서는 알지 못 한다. 단지 지금의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간첩 운영 조직이 극도로 위축되었기 때문에, 지금 정부 4년 사이에 복원되기는 어려웠을 게다. 간첩, 특히 고급 간첩은 쉽게,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 뉴욕타임즈는 국정원을 '간첩 운영 조직'(spy agency)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표현을 보다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간첩은 무슨 간첩? 10년동안 폐업했던 간첩 조직이 그리 쉽게 살아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우리 국정원이 제발, 제대로 된 '간첩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그러나 정두언 같은 국회의원들이 간첩 조직(휴민트)과, 접대 조직(대북접촉 창구)의 차이점 조차 구별하지 못 하고 엉터리 소리를 해대면 국정원이 ‘간첩 운영 조직’으로 거듭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의원이 훼방하는 데 무슨 수로? 아, 왕무식한 국회의원님들이시여! 두뇌 용량이 부족하시면 제발 입 좀 다물고 사시길!

     

  •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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