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反FTA 거리 시위,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성찰할 수 있을까?

    이 유미 (bait 발행인) http://www.i-bait.com

  • 조선말기 개화사상가 유길준(兪吉濬•1856~1914)은 1881년 조선 사신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신문학을 익히기 위한 유학의목적이었다.
    그는 일본 개화사상가 후쿠자와(福澤諭吉•1835~1901)를 스승으로 삼아 일본어를 배웠다. 유길준은 2년 후 다시 조선 사절의 수행원으로 미국을 방문했으며,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가 다시 조선을 찾은 것은 1884년 자신의 친구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그는 1885년 대서양을 건너 영국, 포르투갈 등 유럽 여러 나라를 시찰하고 인도양을 건너 싱가포르, 홍콩, 일본을 통해 귀국했다.

    그러나 일본에 잠시 머물며 김옥균을 만났다는 이유로 귀국 직후 구금됐다.
    그는 이 기간에 『서유견문西遊見聞』 집필을 시작해 1889년 탈고했다. 그러나 이 책은 1000부를 찍는 데 그쳤다. 『서양사정西洋事情』, 『문명론의 개략槪略』 등 후쿠자와의 책들이 일본에서 수백만 부가 팔린 것과 대조적이다.

    11월 22일 여당 날치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통과됐다. 이날 국회에서는 최루탄까지 동원됐다. 통과 직후, 한미 FTA 비준철폐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11월 30일 ‘나는 꼼수다’는 여의도공원에서 한미 FTA 반대 특별공연을 가졌다.

    콘서트에는 5만명(주최측 추산)이 운집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여의도 공원으로 들어선 시민들은 마치 ‘레드카펫’처럼 깔려있는 한미 FTA 찬성국회의원 151명 사진과 이름을 밟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이 쓴 책『달려라 정봉주』를 ‘21세기 성경’이라 홍보하며 끊임없이 깔때기를 들이댔고 김용민 평론가는 조현오 경찰청장 성대모사와 패러디를 감쪽같이 해내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고 한다.

    무대에 오른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있는 에콰도르는 전 국민이 똘똘 뭉쳐서 대통령을 쫓아내고 FTA를 폐기했다. 에콰도르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게는 천 명, 많게는 만 명 단위로 사람이 모이는 한미 FTA 반대 집회 열기에 비해 관련 도서 읽기는 저조하다. 11월 교보문고 판매 200위 안에 ‘자유무역’ ‘세계화’ ‘FTA’ 를 키워드로 한 책은 3권뿐이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를 구할 것인가』(스티브 포브스, 2011) 98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2010) 100위,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2007) 154위. 11월 서울지역 주요사립대 4곳의 대출순위(20위까지)를 알아본 결과 수업교재로 쓰인 두 권의 책(『국제금융론』 『맨큐의 경제학』)만이 유일한 경제학 도서였다. 거리의 뜨거운 열기와 대조적이다.

    ‘고매하신 의원님들.
    강력한 외부 경쟁자 태양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낮에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는 법이 필요합니다.
    양초산업이 번창하면 재료인 유지방을 생산하는 낙농업은 물론 국민경제까지 살릴수 있습니다.
    부디 햇볕을 차단해주소서. 양초업자 일동.’

    이 글은 1844년에 쓰였다.
    의회가 보후무역을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자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Frederic Bastiat)가 이를 비꼬기 위해 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1844년! 우리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세계화와 개방, 그로 인해 더 치열해진 경쟁,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논란은 지금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또 무수히 많은 책들이 그런 논쟁을 정리하고 시사점을 주고 있다.
    『세계는 평평하다』(토마스 프리드먼, 2004)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조지프 E. 스티글리츠, 2007) 등 입장이 어떻든 우리의 현실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출판돼 있다.
    그러나 거리 시위는 뜨거워도 책을 통한 성찰은 찾아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책 없이, 거리의 시위만으로 제대로 된답을 찾을 수 있을까.
    소설가 복거일씨는 말한다. “책 없이 삶을 성찰하기는 어렵다.선현들이나 전문가들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책의 도움 없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성찰을 지속적으로 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성찰의 폭과 깊이에 엄격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구한말 조선과 2011년 한국은 참 비슷하다.
    여전히 ‘개방’이 뜨거운 주제라는 것과관련 책은 읽히지 않는 다는 것이 그렇다.
    이유미 발행인(worldeyu@naver.com)
    미래지성을 위한 시사 교양지 [bait] http://www.i-bai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