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항공자위대 츠이기(築城)기지 방문기

일본 항공자위대의 에어쇼 ①

일본 역사 태동지 규슈에 있는 일본 공군기지를 가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공부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일본 규슈지역과의 연결성에 눈뜨게 된다. 그래서 규슈지역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 항공자위대 츠이키(築城)기지에서 열리는 에어쇼 항공제 참관을 겸하면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후쿠오카공항까지 딱 1시간만에 날아갔다. 제주도 가는 시간밖에 안걸리는 거리다. 그만큼 후쿠오카는 규슈의 관문이자 고대로부터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터미널과 같은 곳이다. 

 

PART A . 일본역사의 태동지(胎動地) - 규슈지역 역사

 

 - 고대 한반도와 규슈의 관계

여행을 할땐 그 지역의 역사를 대충이나마 알고 가는 것이 여행을 제대로 하는 방법이다. 다른 곳도 아닌 일본은 우리나라와의 관계때문에서라도 더더욱 그러하다. 

규슈지역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다리역할을 한 곳임과 동시에 한반도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고대 유물도 보면 고대 가야 유물과  규슈지역 유물은 상당한 친연성을 갖고 있다. 지금의 전라도 지역인 고대 마한지역의 옹관묘 매장방식과 규슈의 옹관묘 매장방식은 똑같다. 그만큼 고대부터 교류가 활발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역사시대로 들어와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왜가 신라를 공격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면서  가야와 왜를 싹 쓸어버린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왜가 바로 규슈지역이다. 당시 가야와 왜는 고구려입장에선 거의 같은 존재라고 할만큼 친연성이 깊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패한 가야인들이 도망한 곳이 바로 규슈지역이다.  그것은 유물로도 증명된다.


▲ 그림 : 3~4세기의 동아시아 지도. 중국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열도도 여러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고대 동아시아를 지도로 표시해 보았다.  삼국시대의 고대(古代) 한일관계를 오늘날의 한일관계의 시각으로 보면 그건 잘못이다. 삼국시대에 우리가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있었던 것처럼  일본역시 수많은 많은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특히 5세기 야마토에 의해 통일하기 이전까지는 고대 일본은  규슈지역도 구마소(熊襲)지역과 야마토지역, 북규슈지역은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지금의 토오쿄 북쪽지역은 에미시지역으로 오랑캐지역으로 여겨졌다.  

그 가운데  한반도 남부 가야지역과 북규슈지역은 지금은 완전히 한국과 일본으로 정체성이 다르지만 고대엔 오히려 친연성이 강한 곳이었다. 한마디로 가야와 북규슈지역은 같은 문화권이었다. 그리고 당시 기준에서 보면 가야와 신라가 별개 나라이듯이 야마토와 북규슈지역도 완전히 별개 존재였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가야지역과 북규슈지역의 친연성이 단절된 계기가 생기게 되었다.  바로 광개토대왕의 등장이다. 

고대 한일관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가야와 규슈지역 왜의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했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패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한반도 남부의 가야는 신라에 흡수되었고  북규슈지역의 왜는 야마토에 흡수되었다. 그로 인해서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북규슈지역은 오늘날처럼 서로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다.  

-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과 왜구  

그후 일본은 야마토시대-헤이안시대를 거쳐서 일본 최초의 쇼군(將軍)인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가 집권하는 카마쿠라 막부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 카마쿠라막부 시절  대륙은 최대의 역사적 격랑을 겪고 있었다. 바로 몽골 징키스칸의 등장이었다. 

유라시아 지역을 석권한 몽골은 고려까지 복속시키고 일본 원정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몽골의 1,2차 원정이다.  고려-몽골 연합군이 최초로 일본에 상륙한 지역이 바로 규슈 후쿠오카 하카다(博多)항구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몽골의 일본 원정은 태풍으로 인해서 좌절되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서 카마쿠라 막부도 몰락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치적 구심점이 없어지자 일본 규슈지역은 왜구의 소굴로 변하게 되었다.  이들 왜구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심지어는 베트남 태국까지도 가서 노략질을 하엿다.


▲ 왜구의 노략질 지역. 당시 왜구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중국해안과 멀리 베트남해안까지 노략질을 하였다. ⓒ

 - 임진왜란과 메이지유신과  규슈지역

또한 임진왜란때는  왜군의 주력군이 모두 이곳 규슈지역의 군대였다. 임진왜란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 18만 병력중에 무려 13만명이 규슈지역 병력이었다.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시마즈, 구로다 모두 규슈지역의 병력이었다.   

또한 일본을 근대화로 이끈 메이지유신의 태동지도 바로 이곳 규슈지역이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츠마 번은 규슈 남부 가고시마 지역이고, 죠슈 번은 시모노세키이다. 이 두 곳 번의 사무라이들이 지금의 나가사끼에 모여서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트리는 모의를 하였다.  2차대전때는 그 유명한  카미카제 특공대의 발진기지가 바로 규슈지역이다. 결국 미국의 원자폭탄 2발에 일본은 무릅을 꿇게 되는데 두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 규슈의 나가사키이다. 

이렇듯 일본 역사 변동의 뇌관역할을 한 곳이 규슈지역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규슈지역을 이렇게 말한다. 규슈는 일본의 자궁(子宮)이다. 아이가 태어날때 어머니 뱃속의 자궁처럼  규슈는 일본이 있게 한 자궁이라는 말이다. 그런 규슈지역의 일본 항공자위대 기지를 가게 되었으니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PART B. 츠이키 기지로 가는 길. 

후쿠오카 하카다역에서  츠이키 기지까지는  부산에서 여수만큼 떨어져 있다. 일본의 항공제는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후쿠오카 호텔에서 새벽 5시 40분에 나와서 하카다 역 플랫폼에 도착하니 새벽 6시10분이었다. 



일본은 열차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잘 갖추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규슈지역은 일본내에서도 최고다. 열차 종류도 많고 정확성과 안락함도 나무랄 데가 없다.  사실 일본 규슈지역은 기차여행만 해도 본전을 뽑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래서 일종의 설레임속에 새벽시간 하카다역 플랫폼에 섰다. 이른 시간인데도 배낭을 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느낌상으로는 모두 츠이키 기지 에어쇼에 가는 것 같았다. 이런 예상은 기차를 타고서 바로 확인이 되었다.


▲ 츠이키 기지 위치. 후쿠오카 하카다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약 1시간 10분이 걸린다.ⓒ

하카다역에서 타고갈 기차는 그 이름이 <카모메>라는 열차이다.  속도는 약 150~160키로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 열차의 가장 큰 특징은  곡선로에서 옆으로 기울어지는 Tilting열차이다. 타보니 상당히 많이 기울어졌다. 덕분에 원심력이 상쇄되어서 승차감은 이를데 없이 좋다. 우리나라 KTX보다 더 좋은 것 같다. 


▲ 일본 규슈지역에서 운행하고 있는 특급열차 <카모메>ⓒ

열차에 자리 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모든 승객들이 츠이키 기지로 가는 모습이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들이 친구들끼리 모여서 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쉽게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들이 갖고 온 장비들이 대단하다. 흔히 부르는 '대포렌즈'가 기본이다. 그 일본의 할아버지 매니아(?)들을 보면서 20여년후 내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피식하는 웃음이 나왔다.

하카다역을 6시 25분에 출발한 기차는 고쿠라역을 거쳐서 츠이키역에 7시 35분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거친 고쿠라는 일본 철강공업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2차대전때는 히로시마와 더불어서 원자폭탄 목표도시였다. 기상때문에 고쿠라대신 나가사키에 떨어졌으니 행운의 도시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츠이키기지가 있는 츠이키역은 원래는 특급열차가 서지 않는 역이다. 그런데 항공제 에어쇼를 할때는 특별편성을 해서 정차한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츠이키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 츠이키 역에 내린 승객들. 실로 어머어마한 인파다. ⓒ

아침 7시40분에 기지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활주로 바로 앞 펜스에는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족 단위, 친구 단위, 동호회 단위 등등 모두가 항공제를 즐기려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열리는 오산에어파워데이 때 오는 사람보다 약 3배는 더 많은 것 같다.



 

* 일본 항공자위대 츠이키(築城)기지에 대하여 *



항공자위대. 츠이키 기지(築城基地. ついききち. JASDF Tsuiki Airbase)

 

 후쿠오카현(福岡) 치쿠죠군(築上郡) 치쿠죠쵸(築上町) 대자 니시핫타(大字西八田)에 소재하는 항공자위대 기지이다. 제8항공단(第8航空團)등이 배치되어 있다.

 
기지연혁(沿革)

   1942년 구 일본해군이 후지타조(藤田組)의 도움을 받아 즈이키 비행장(築城飛行場)을 건설한다 .

   1955년 임시 즈이키파견대(築城派遣隊) 창설. T-33 훈련기 5대로 조종훈련 시작.

              이해 F-86전투기 7대가 배치됨.

   1956년 전투기 고등교육(戰鬪機 高等敎育) 시작.

   1957년 미군철수. 즈이키기지(築城基地)창설. 임시 파견대를 제3조종학교(第3操縱學校)로 개편.

   1959년 제3조종학교(第3操縱學校)를 제16비행교육단(第16飛行敎育團)으로 개편.

   1964년 제10비행대(第10飛行隊). 제6비행대(第6飛行隊) 뉴타바루기지(新田原基地)에서 전입 이동.

             제8항공단(第8航空團. F-86F) 창설.

   1977년 제10비행대(第10飛行隊) 해체 후 제304비행대(第304飛行隊. F-4EJ) 창설.

   1981년 제6비행대(第6飛行隊) 기종을 F-1으로 교체

             항공총사령부(航空總隊) 직할의 비행교도대(飛行敎導隊. T-2)창설

    1983년 비행교도대(飛行敎導隊)가 뉴타바루기지(新田原基地)로 전출.

    1990년 제304비행대(第304飛行隊) 기종을 F-15J/DJ로 교체.

    2004년 제6비행대(第6飛行隊) 기종을 F-2로 교체시작

    2006년 제6비행대(第6飛行隊) 전 기종을 F-2A/B로 교체완료

    2008년 키타큐슈 공항(北九州空港) 및 야마구치 우베 공항(山口宇部空港)의 민간 이착륙 관제업무를

              수탁 및 관제 담당 에리어 확대 .

 

  서부항공방면대(西部航空方面隊) 예하

제8항공단 사령부(第8航空團 司令部. だいはちこうくうだん. JASDF 8th Air Wing) 비행군(飛行群)

    

▲ 제304비행대(第304飛行隊):F-15J/DJ.ⓒ



▲ 일본항공자위대의 훈련기 T-4ⓒ



▲ 제6비행대(第6飛行隊):F-2. T-4 ⓒ


F-15J/DJ 전투기와 F-2A/B 전투기의 모두를 운용하는 제8항공단은 일본 항공자위대의 주력부대중에 하나이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의 군사활동 강하로 일본의 서부항공방면단의 전력이 계속  중강되고 있다. F-15와 F-2를 모두 운용하는 부대는 제8항공단이 유일하다.  방공부대와 시설대는 미야꼬쵸(みやこ町. 옛날의 토요츠마치(豊津町)에 있는 토요츠 지구(豊津地區)에 주둔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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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일본의 에어쇼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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