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 저 편? 살벌한 줄서기...개인의 존엄성-주체성 뭉개는 야만적 선택 강요
  • 정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차례로 살펴 보자.

    민주당은 시민통합당과 통합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엄청난 내홍을 겪고 있다. 190만명 당원, 12,000 명 대의원으로 구성된 거대 정통 야당이 자신의 10분의 1도 안되는 '시민단체 동아리 네트워크'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구당 위원장이나 간부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일이 전국에 걸쳐 벌어지고 있다. 수년 동안 돌보아 주었던 특보 혹은 보좌관 혹은 선거구 하급간부가 하루 아침에 '시민'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너, 물러나!"라고 삿대질을 하는 꼴을 당하면 머리꼭지가 돌 수 밖에 없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사이의 통합은 실은 깊은 분열이다. 통합에 성공하더라도 민주당은 분열하여 통합성공파와 사수실패(탈당)파로 나뉜다. 통합에 실패하면 탈당통합파와 사수성공파로 나뉜다. 어떻게 되든 민주당은 깊게 분열하게 되어 있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사이에 통합되든 되지 않든 야권은 시민통합당이 주축이 되어 끌어가게 되어 있다. 이미 노동당과 밀접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권 전체가 '사나운 군중의 에너지'를 떠받들어 급속히 좌클릭하고 있다. 아, 이 '사나운 군중의 에너지'는 바로 나꼼수에 의해 상징된다. 나꼼수가 외치고 있다. "노동당-시민통합당-촛불군중 연합체에 복종할래? 아니면 나가 죽을래?" 복종의 방법? 나꼼수에 줄 서는 것이다. 그래서 나꼼수 집회에 야권의 주요 정치인이 총출동한다. 나꼼수는 이제 줄서기의 상징이 되었다.

    한나라당은 급속하게 박근혜당으로 체질이 바뀌고 있다. 이번 쇄신파가 내놓은 쇄신안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당 체질을 박근혜당으로 변화시키는 것. 둘째, 무제한 퍼주기 복지를 실행하는 것. 박근혜에 줄서기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조만간에 자의반 타의반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우스갯소리로 박근혜에 줄 선 사람을 일렬로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한다고 한다. 줄서기 풍조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더 노골적으로 더욱 더 거칠게 변할 것이다. 박근혜에 줄서든가, 나가라---이것이 한나라당의 모토가 되어 가고 있다.

  • 그렇다. 지금 우리 정치는 살벌한 줄서기가 되어 가고 있다. 박근혜에 줄설래? 나꼼수에 줄설래?  이편인가, 저편인가? 선택하라! 나꼼수로 상징되는 반FTA 집회가 얼마나 사납게 위세를 떨치는지, 집회 참가자들이 다른 참가자를 폭행한 사건에서 보면 알 수 있다. "노무현스럽지 않다"라는 이유로 유명 종친초 인터넷신문의 기자가 두들겨 맞았다. 말을 비꼬기 위해 FTA와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척하던 발언자가,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두둘겨 맞고 짓밟혔다. 이때 폭도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 개xx! 너, 뉴라이트지?" 퍼버벅. "이 씨xx! 너, 뉴라이트지?" 퍼버벅.
     
    그 전에 이근안은 학생운동가들을 몇 명 고문한 탓에,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악명을 얻었다. 아, 이제 5천만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고문받는 세상이 되었다. 고문기술자의 이름은 바로' 정치'. 원래 '정'(政)은 '매로 때려서 바로 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정치는, '국민을 괴롭혀서 비트는 것'이 되고 말았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정 대선후보에 줄서기를 할 것인가, 혹은 '사나운 군중'에 줄서기 할 것인가를 택해야 한다는 사실은, 지독한 고문이다. 나의 존엄성과 기개와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특정 대선후보의 시녀 혹은 떼의 한 조가리로 타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없을까? 불행히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그는 정치인으로서 검증된 바 없다. 한번 FTA, 북한인권, 무상급식, 주민투표...이런 주요 이슈에 대해 안철수는 한 마디도 한 적 없다. 그는 아직 정치인이 아니다.

    안철수 신당? 아마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신당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과정은 수많은 적을 만들어 가는 고단한  과정이다. 안철수가 이런 고단하고 피비린내 나는 과정을 꾸역꾸역 밟아나갈 뜻이 있을까? 없다.

    안철수 없는 안철수 신당? 대리인을 내세운 신당? 정치에는 대리인이란 없다. 배우 원빈이 원빈의 대리인을 내세워서 연기시킨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스턴트 씬이 아닌다음에야..) 정치인은 국민을 통합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performer)이다. 대리인을 내세워서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마음을 써서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당을 만들고 적을 만들면, 그 대리인이 곧 진짜 주인공으로 바뀐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짓을 할 리 없다. 

    법륜 신당? 법륜 역시 신당을 만들려면 대리인을 세울 수 밖에 없다. 정치에서 대리인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법륜 역시 신당을 만들 수 없다.

    박세일 신당? 그의 정치적 시도가 성공할 지 실패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정치적 성공과 실패를 떠나 반드시 해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大중도통합'이라는 섹시한 키워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해서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 일만 제대로 하면, 신당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키워드는, 우리 사회에서 함부로 사용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법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가다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의해 고문받고 있는 5천만 한국인들.
    이 편에 줄 설것인가, 저 편에 줄 설 것인가--개인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뭉개는 야만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우리들.

    우리는 이 삭막한 지평을 벗어날 것을 꿈꾼다. 꿈은 아무 눈치 안 보고 '지르는 사람'의 것이다.

    이 칼럼에서 다룬 '한국 정치의 살벌한 줄서기'를 주제로 <명 푼수다> 팀이 정치토크쇼를 가졌다. 

    <명 푼수다> 듣기 ☞ ⑧ 박근혜에 줄설래? 나꼼수에 줄설래?


  •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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