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기관, 조폭-건달, 지역 검찰-변호사-판사-유지등이 뒤엉킨 토착비리의 종합판”
  • 지난 해 11월 22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한 사람은 백기덕 전일저축은행 前행장이었다. 백기덕 前행장은 ‘전일저축은행 사기사건 전모 요도’를 공개한 뒤 “전일저축은행 사건은 검찰과 언론, 저축은행 前임직원의 공모였다”고 주장했다.

    은인표 “요즘 젊은 놈 때문에 고생한다”

    백 前행장은 2000년 8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전일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다. 백 前행장은 “전일저축은행 파산사태의 단초는 前행장 김종문이 전북 정읍 출신 고향친구이자 익산 배차장파 출신인 은인표를 끌어 들이고 은인표가 희대의 금융사기꾼 박 모(광주일고출신으로 부산저축은행 비리에도 관련됨)과 심학섭 前행장,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이종덕이 합종연횡으로 공모하여 일으킨 사기행각으로 국민혈세 8,000억 원과 늙고 어려운 수천 명의 예금자를 울린 희대의 금융 사기극”이라고 지적했다.

    백 前행장은 “전일저축은행은 PF대출이라는 사기대출로 망한 것이다. 2002년 8월 김종문과 은인표를 53억 대출금 횡령과 전일저축은행 사기인수로 수사당국에 고발했을 때, 2003년 6월 굿모닝씨티(윤창렬)사건이 터져 전일저축은행이 200억 원을 불법대출한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2006년 9월 은인표, 박 씨가 건설업자 정 모 씨에 260여억 원을 사취하여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서울지검에 구속되었을 때 일망타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검찰 등은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백기덕 前전일저축은행장이 공개한 비리의 전모.
    ▲ 백기덕 前전일저축은행장이 공개한 비리의 전모.

    그는 “2006년 9월 사기꾼들의 자금흐름을 조사하던 서울지검 형사8부의 젊은 신참검사 아니었으면 전일저축은행 사기인수는 영구미제로 남을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은인표가 ‘요즘 젊은 놈 때문에 고생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은인표 입장에서는 고참 수사관들이 오히려 다루기 쉬웠다는 말”이라며 검찰 수사에 의혹을 제기했다.
     
    “전일저축은행, 前행장이 배차장파 출신 은인표 끌어들여”

    백 前행장에 따르면 전일저축은행은 대주주 이종덕 회장 집안의 무능함이 드러나면서 은인표 일당의 눈에 띠었다. 외환위기 이후 이종덕 회장의 아들은 회사 돈으로 주식투자 등을 하다 큰 손실을 입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전일저축은행 대표에 취임한 백 前행장은 자신의 인맥 등을 동원해 회사를 정상화시켰지만, 당시 관리부장이던 김종덕 前행장이 은인표 일당을 끌어들여 결국 회사가 통째로 넘어갔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전주 리베라호텔에서 월드컵파 두목급 조폭과 함께 지내던 은인표 일당은 2001년 12월 전일저축은행을 끼고 칼스자산관리(주)에 53억 원을 사기대출해준 뒤 그 돈을 횡령했고, 2002년에는 박 씨 등과 함께 신안그룹의 대리인을 사칭해 전일저축은행을 사기 인수했다고 한다.

    이때 전일저축은행 대주주인 이종덕 회장은 은인표 일당의 말을 믿고 은행을 매각하려다 ‘은행은 전북도민들의 것’이라는 백 前행장의 반대에 부딪히자 ‘내 은행 내가 파는 데 왜 당신은 반대만 하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백 前행장도 ‘신안그룹이 실질적인 인수자’라는 말을 믿고 강하게 반대하지 않다 나중에야 속은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은인표 일당은 또한 전주시내 요지 1,600평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고향 지인 박 모 씨에게 접근해 주상복합건물을 짓자고 부추겨 박 씨를 시행사 대표로 앉힌 뒤 분양사기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일로 박 씨는 100억 원 대의 피해를 입고, 피해자들에게 사기죄로 형사고발을 당했다고 한다.

    은인표 일당은 칼스자산관리(주) 사기대출로 빼돌린 돈 중 일부로 내장산 관광호텔을 경락 인수받기도 했다고 한다. 인수한 내장산 관광호텔은 다시 전일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대출을 받는 담보로 사용됐다.

    은인표는 브로커 박 씨(현재 구속) 등과 함께 정 모 씨에게 100억 원, 전주 출신 박 모 씨에게 60억 원을 사기 쳐 마련한 돈으로 전일저축은행을 인수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은인표 일당은 전일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실제로는 통용할 수 없는 ‘쓰레기 어음’을 할인해주거나 신용문제로 대출이 불가능한 에이 일렉숀, 세아, 등업건업 등 부실기업 30여 곳에 1,000억 원에 가까운 대출을 해주는 식으로 은행 돈을 빼돌렸다고 한다. 은인표 일당은 부실 대출을 한 다음 대출자 명의를 변경하고선 금감원에는 모두 상환했다고 허위보고를 했던 것도 드러났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는 정책적 과오 때문”

    백 前행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 등에 배포한 자료는 그 분량만 A4용지 30여 장에 달한다. 여기에 드러난 전일저축은행 사태의 실체는 깡패 출신 사기꾼이 다른 사기꾼들과 함께 허술한 법, 금융 당국의 관리망을 이용해 서민들의 돈을 모두 빼먹은 것이었다.

    백 前행장도 이 같은 부분을 지적하며 “최근 저축은행 사태의 시작은 2001년 3월 28일 금고를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꿔주고, 여수신 취급지역을 광역화해주고, BIS비율 8% 이상의 저축은행에게는 대출한도를 폐지하는 등 각종 규제철폐를 통해 저축은행 임직원들의 도덕심과 자질 향상 없이 마음대로 영업을 할 수 있게 해 마치 초등학생에게 대학 사각모를 씌워준 꼴이 되면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 前행장은 또한 “전일저축은행 사태는 그 중에서도 무능하고 소명의식도 책임감도 없는 얼빠진 금융감독기관과 조폭, 건달들에게 휘둘리는 검찰, 토착 변호사와 향판의 협잡질, 소명의식도 영혼도 없는 일부 지방언론, 불법과 비리에 눈감은 지방유지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토착비리의 종합 결정판’격”이라고 주장했다.
     
    백 前행장은 “70을 넘은 나이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인간이 얼마나 더 패덕의 길을 갈수 있는 지를 배운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며 “피눈물 흘리는 예금자들을 보며 ‘지연(遲延)된 정의는 불의(不義)보다 못하다’는 법언(法諺)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며 회견을 마쳤다.

    전일저축은행 수사, 정동영 의원은 왜 무관심할까

    백 前행장 등이 전일저축은행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한 김종문 前행장은 중국에서 압송돼 현재 전주지검에서 수사를 받았다. 은인표 또한 만기출소 전날인 지난 해 11월 7일 추가 혐의로 기소돼 다시 구속됐다. 검찰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도 전일저축은행 비리 수사는 철저히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전일저축은행 피해자들이나 은인표 씨에게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 백 前행장 등의 마음은 불안하다. 지금은 은인표 씨와 김종문 씨가 서울과 전주에서 따로 기소된 탓에 양쪽을 오가며 조사를 받고 있는데 사건이 합쳐져 전주지검으로 넘어가게 되면 은 씨와 김 씨 모두 병보석 등으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고, 이들은 풀려나는 즉시 해외로 밀항할 것이라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 한미FTA 강행처리에 반대하는 정동영 민주당 의원. 정 의원은 최근 각종 시위의 선봉에 서고 있다. 하지만 전일저축은행 관련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 한미FTA 강행처리에 반대하는 정동영 민주당 의원. 정 의원은 최근 각종 시위의 선봉에 서고 있다. 하지만 전일저축은행 관련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한편 지난 9월 검찰과 예금보험공사, 금감원 인력 80여 명으로 출범한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도 부산저축은행이나 에이스저축은행 등 '정치권'이 관심을 갖는 사건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전일저축은행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소식도 나온다.

    백 前행장이 은인표 씨와 김종문 씨 등에 대한 면밀한 수사를 요청했지만 ‘이미 서울지검과 전주지검에서 수사 중’이라며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전일저축은행은 3명의 유명 MC와 인기 연예인 전 모 씨 등이 연루된, 대형 연예기획사 주가조작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피해자들의 또 다른 걱정은 전주 지역 국회의원 문제다.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3년 넘도록 직접 조사한 결과 저축은행 비리는 토착비리와 부실 금융감독제도가 더해져 만들어진 문제였다. 우리 사회에서 이를 제대로 파헤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리'는 국회의원 정도다. 전주 지역 의원 2명 중 신 건 의원만이 전일저축은행 피해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1명은 정동영 의원이다.

    정동영 의원은 2011년 한 해 동안 전주의 문제는 내팽개친 채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선봉, 제주해군기지 반대 선봉에 서서 국책사업을 망치고 한진중공업을 위기로 몰아 넣었다. 심지어 '전일저축은행' 관련 피해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한미FTA 반대'나 주장하다 지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 의원은 전주 민심이 나빠지자 '대의' 운운하며 다른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동영 의원은 당초 '전주 지역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부산 영도구 출마를 선언했다. 부산 영도구민들이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여론'을 전해 들었는지 마음을 바꿔 오는 4월 총선 때 서울 강남에서 출마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일저축은행 피해자들은 필요할 때만 '지역'과 '고향'을 내세우던 정동영 의원을 보며 가슴을 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연로한 피해자들은 죽을 날만을 기다릴 정도로 고통 속에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