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비대위 “2003년 당시 그 사건만 제대로 처리했더라면...” 하소연
  • 지난 11월 3일 대검 중수부는 9조 원대 금융비리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종결했다. 2만여 명의 피해자를 만든 이 사건은 2003년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지인(?)의 ‘부탁’을 거절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한다.

    문재인, 2003년 기로에 선 부산저축은행 살렸다

    2003년 2월 법무법인 부산의 문재인 대표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가 맡은 일은 민정수석 비서관. 공직기강과 사회질서 유지,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을 살피고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재인의 민정수석실은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2002년 9월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연임 청탁 대가로 3,000만 원을 받은 사건이 2004년 드러날 때까지 알지 못했고, 2003년 4월 盧대통령의 사돈인 배 모 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을 친 사건, 같은 달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이 청주의 한 나이트클럽 등에서 술접대를 받은 일 등에 제대로 대처를 못해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 ▲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이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을 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피해자가 사고를 설명하는 모습.[사진출처: 조선닷컴]
    ▲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이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을 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피해자가 사고를 설명하는 모습.[사진출처: 조선닷컴]

    한편 비슷한 시기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과 김 양 부회장 등은 2002년부터 임직원 이름으로 차명 대출을 받아 코스닥 업체 주식으로 주가 조작을 하다 2003년 6월 금감원에 적발됐다. 다급해진 박 회장은 부산저축은행 소유 차명주식 98만여 주를 해동건설 박형선 회장에게 133억 원 받고 팔았다.

    이후 금감원과 검찰의 조사가 시작됐다. 업계에서는 경영진은 퇴출되고 은행은 ‘경영 개선 권고’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박 회장 등은 집행유예, 김민영 부산2저축은행 대표는 직무정지 6개월 등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 알고보니 그 뒤에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의 ‘전화 한 통’이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움직인 부산저축은행의 전방위 로비

    2003년 7월 금감원이 특별조사를 실시하고,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부산저축은행 김 양 부회장은 로비를 위해 청와대 인사들과 절친하다는 모 건설회사 대표 A씨를 찾아가 구명로비를 부탁했다.

  • ▲ 2003년 8월 22일 청주 나이트클럽 몰카 사건으로 검찰 청주지청에 출두하는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사진출처: 연합뉴스]
    ▲ 2003년 8월 22일 청주 나이트클럽 몰카 사건으로 검찰 청주지청에 출두하는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사진출처: 연합뉴스]

    A씨는 같은 달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을 찾아갔다. 양 부속실장은 A씨와 함께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現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만나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를 했다고 한다. 이들은 "부산저축은행이 부산 최대의 서민금융기관인데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지면 큰일 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검찰의 최근 부산저축은행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말을 들은 문재인 수석은 그 자리에서 부산저축은행을 조사하던 유병태 금감원 비은행조사1국장(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현재 구속중)에게 전화해 "부산저축은행을 조사할 때 경영 개선 권고 조치 등으로 예금 대량 인출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히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문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놀란 유병태 국장은 민정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실을 이정재 당시 금감원장에게 보고했다고 검찰 수사에서 털어 놓았다.

    청와대 ‘왕수석’이 건 ‘전화 한 통’의 힘

    청와대 '왕수석'의 '전화 한 통 효과'는 엄청났다. 당초 금감원이 밝혀낸 비리로 보면, 부산저축은행은 ‘경영 개선 권고’를 받고 경영진은 퇴출돼야 했다. 하지만 ‘경영 개선 권고’는 없었고 경영진은 모두 무사했다.

    금감원은 2003년 6월에 부산저축은행의 시세조정 혐의를 포착했다. 이어 7월 2일에 증권선물위원회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을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검찰에 의뢰하고, 금감원에 경영진들의 비위사실을 통보했다. 대검은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이첩했다. 증권선물위 통보를 받은 금감원 비은행검사1국은 2003년 7월 7일부터 11일까지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에 대해 특별검사를 실시했다. 검사결과는 이번에 드러난 9조 원대 비리의 축소판이었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은 차명대출을 받아 만든 비자금으로 주가조작을 했다. 주식을 사놓고 취득신고도 하지 않았다. 경영진들에게는 부당하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차명대출을 할 때 동일인 대출한도는 무시했다. 자신들이 벌인 불법대출이다 보니 채권관리도 안 했고 대출한도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4.61%인 BIS 비율을 6.79%로 조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의 ‘전화 한 통’이 이 모든 문제를 무마한 것이다.

    '왕수석'의 '전화 한 통'에 영향을 받은 금감원은 결국 2003년 11월 17일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에 대한 제재심의에서 ‘경영 개선 권고’는 하지 않고 ‘경영진 문책’만 했다. 결국 박연호 회장이 일선에서 사임하고, 김민영 부산2저축은행장은 직무정지 6개월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박연호, 김후진, 강성우 등은 이어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부산지검의 수사도 비슷했다. 부산지검은 2004년 6월 11일 박연호 회장 등을 주가조작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회장은 오히려 10월에 법정 구속됐지만, 불과 2개월만인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렇게 구명로비에 성공한 김 양 부회장은 그 대가를 확실히 챙겨줬던 게 드러났다. 그 중 하나가 당시 특별조사를 했던 유병태 금감원 국장이다. 유 국장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2억1,000만 원을 받았다가 2011년 5월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 때 구속기소 됐다.

    직접 전달한 대가는 없었지만…. 법무법인 부산에 쏠리는 눈길

    김 양 부회장이 로비를 벌일 때 김민영 부산2저축은행 대표도 광주일고 고교 후배인 정찬용 인사수석에게 2차례 전화해 ‘SOS’를 보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김민영 대표는 부산저축은행을 조사하던 유병태 금감원 국장으로부터 "문재인 민정수석이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신중한 처리를 금감원에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로비가 성공했음을 알았다는 것이 이번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났다.

  • ▲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같은 로비를 받았지만 다르게 행동했다.
    ▲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같은 로비를 받았지만 다르게 행동했다.

    이같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의 로비는 2011년 대검 중수부의 수사에서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양길승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에게 금품이 건네진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 등 경영진이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에게 차명주식을 팔면서 맺은 이면계약을 통해 2004년 4월부터 9월 사이 44억5,000만 원을 다시 박형선 회장에게 돌려줬던 돈이 실제로는 로비 자금이고, 그 돈이 ‘실세’들에게 건네졌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실제 검찰은 이 돈 중 일부가 차명계좌에 입금된 사실까지는 확인했다고 한다.

    부산저축은행, 법무법인 부산에 59억원어치 일거리를 쏟아 부었다

    다른 의혹 제기도 있다. 故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이사장이 함께 속해서 일했던 ‘법무법인 부산’과 부산저축은행의 연관성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문재인 이사장의 행보는 부산저축은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故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3년 2월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변호사를 사임하고 민정수석으로 일하다 2004년 2월 12일 건강상의 이유로 청와대를 잠시 떠났다. 이후 세 번째 민정수석, 대통령 실장 등으로 일하며 盧대통령 옆을 지켰다. 문재인 이사장은 2008년 8월 14일에야 법무법인 부산으로 돌아가 대표 변호사를 맡는다.

    하지만 '왕수석의 전화 한 통'이 있은 후, 법무법인 부산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59억여 원의 사건 수임료를 받았다. 법무법인 부산이 원래 故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직접 운영하다시피 한 곳이라는 점, 당시 대표를 맡았던 정재승 변호사(사시 26기)가 故노 대통령의 조카사위(큰 누나의 둘째 사위)라는 점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묘한 의심의 눈총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 ▲ 지난 6월 20일 부산저축은행 피해비대위 회원들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위임을 받은 J법무법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J법무법인은 결국 사건수임을 포기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부산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4년 동안 60억 원에 가까운 사건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6월 20일 부산저축은행 피해비대위 회원들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위임을 받은 J법무법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J법무법인은 결국 사건수임을 포기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부산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4년 동안 60억 원에 가까운 사건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지난 5월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한창일 때 문재인 이사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명박 정권의 책임론 전가다. 부산 민심이 흉흉해지자 前정권 책임론을 제기해 현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부산저축은행의 '성공한 로비', 해명 못하면 문재인 이사장 타격 입을 듯

    지난 11월 3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비리는 불법대출 6조315억 원, 분식회계 3조353 원, 위법배당 112억 원 등 9조780억 원에 달한다.

    대검 중수부는 “박연호 회장 등 대주주와 경영진의 은닉재산 1조395억 원을 확보해 예금보험공사에 보전조치했다”고 밝혔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전 조치한 재산은 박연호 회장과 부산저축은행이 세운 SPC(특수목적회사) 보유자산 9,741억 원과 차명으로 숨겨놓은 654억 원이다. 하지만 이는 당초 부산저축은행 비리를 샅샅이 수사하면 찾으리라 예상한 1조3,500억 원보다 3,000억 원이나 적다.

    게다가 금융계에서는 ‘검찰이 발표한 환수 재산 규모는 내용을 따져보면 많이 부풀려져 있다. 통상 저축은행이 파산한 뒤 빚잔치를 하면 예보와 피해자가 9:1로 배당금을 나눈다. 환수 자산에서 체납세금을 떼고 남은 돈에서 10분의 1이 피해자 몫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부산저축은행의 5,000만 원 이상 예금자들과 후순위채권 피해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 ▲ 지난 6월 16일 김해 봉하마을 故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찾은 문재인 이사장.
    ▲ 지난 6월 16일 김해 봉하마을 故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찾은 문재인 이사장.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태로 돌려받지 못하게 된 5,000만 원 초과 예금액은 1,750억 원, 후순위채 구입액은 1,132억 원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수는 최대 2만여 명. 지난 6월 부산저축은행 비대위 회원들은 기자에게 “2003년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대출․주가조작 사건만 제대로 수사 하고 금감원이 조치를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검찰과 금감원을 원망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盧정부 실세들에 대해서도 현 정부에 대해서만큼 의심하고 분노하고 있다. 2003년 7월 당시 일에 대한 문재인 이사장의 적극적인 해명이 없다면 그의 '청렴한 이미지'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