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철(摺鐵)의 신기(神技)

다마스커스 검과 일본도

일본도 제작방법을 알아본다

접철(摺鐵)의 신기 - 다마스커스 검과 일본도 

종로 인사동골목길에 보면 이런 곳이 있다니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 하나 있다. 메니아들 사이에선 너무도 유명한 나이프갤러리이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칼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특한 곳이다. 그곳에선 일본도의 제작방법은 물론이고 서양의 칼까지 두루두루 볼 수 있다.

일본도(日本刀)는 우리에겐 역사적 배경때문에 거북한 존재이지만 ""이라는 부분에서 일본도는 거의 독보적 존재인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 일본도의 세계로 잠깐 들어가 보자. 바로 나이프 갤러리에 있는 일본도이다.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다마스커스 검 특유의 줄무늬이다. 쇠를 수십번 접어서 단조를 하게 되면 특유의 무뉘가 생긴다. 쇠를 10번 접어서 단조하면 210승에 해당하는 접층(摺層)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서 칼의 최고봉이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다마스커스 검의 원조는 10세기 경부터 17세기 경까지 중동 특히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만들어진 검을 말한다. 다마스커스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이슬람과의 십자군의 아랍침공을 통해 처음 알려졌기 때문에 생산지인 다마스커스의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이 검이 우수한 특성을 갖는 것은 원재료인 철괴의 특별한 조성(組成)과 제강법(製鋼法)과 검의 단조(鍛造) 방식에 기인한다. 강철은 일반적으로 탄소의 함량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데, 탄소 성분이 많을수록 강철의 강도(剛度)와 경도(硬度)는 높아지지만, 탄력성이 없어 충격에 쉽게 부러지게 된다. 탄소 함량이 낮으면 강도가 약해 쉽게 구부러지고, 예리한 날을 만들 수 없어 날이 쉽게 무뎌진다. 

다마스커스 강철은 탄소량이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이 시루떡이나 나무결 같은 같은 미세한 층상구조(層狀構造)를 이루고 있다. 또 매우 높은 경도의 철-탄소 카바이트(iron carbide: Fe3C) 입자가 철 결정 배열 사이에 차별적로 편재(偏在)한다. 따라서 높은 강도와 경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높은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어 현대적 금속학과 합금법(合金法)이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우수한 강철로 평가됐다. 

일본도의 특징중 하나는 바로 강도가 다른 탄소강을 접쇠하여 단조 제작하는 것으로유명하다.



일본도의 제작과정을 사진으로 보자(사진촬영 협조: 나이프갤러리)



쇠를 접고 늘리고를 반복하여 칼의 형태를 만들어 간다.  여기에 열처리는 일본도에 생명을 불어넣게 된다.







 

사진설명 : 탄소강을 칼날로 만드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

이런 과정을 거쳐서 최종 완성되는 것이 일본도이다. 특히 일본도 특유의 휘어짐은 칼등부분과 칼날부분의 차별적 열처리와 단조과정에서 생기는 것인데 그 휘어짐의 정도를 소리(鎬里)라 한다.



사진 : 일본도의 휘어짐을 볼수 있다.  일본도 특유의 휘어짐은 베기에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데 실전에선 일본도의 활용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록에 보면 왜병의 무기중 제일 무서웠던 것은 <나기나타>였다. 쉽게 말하면 창끝에 일본도를 꼽은 것이랄까. 일본 전국시대때는 주로 승려와 여자들이 사용하던 무기였다.   창과 검의 효용성을 모두 가진 무기로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무기이기도 하다

일본 카마쿠라막부를 연 쇼군 미나모토 요리토모에겐  동생이 있었다. 미나모토 쿠로 요시츠네이다. 일본에선 매우 인기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요시츠네에겐 심복부하 벤케이가 있었다.  벤케이는 승려로서 요시츠네를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마지막까지 목숨을 다 한 인물이다. 이 벤케이라는 인물이 잘 다루던 무기가 <나기나타>였다. 마치 삼국지 관우의 청룡언월도처럼  벤케이는 나기나타를 다루었다.


▲ 일본의 무기 나기나타.ⓒ

이 무기에 대해서 우리의 임진왜란 당시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다
<왜군이 휘두르는 긴칼에 우리의 군사(조선군)는 창 한 번 못 휘두르고 죽었다. 왜군이 긴칼(나기나타)을 휘두르면 심지어는 허리가 끊겨 두동강나서 죽기도 하고 대부분 창자를 쏟아내면서 죽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말단 병사인 이시가루의 주력병기는 긴창이었다.  일본전국시대 당시 창의 길이가 가장 길었던 진영은 오다노부나가 진영이었다.



그림으로 보면 그 길이가 어느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왜군을 상대로 한 조선군은  거의 무방비였다는 것이 임진왜란의 교훈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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