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 말하는 네버엔딩스토리...참프로젝트-기(氣)흥(興)정(情) 五림
  • 2m에 육박하는 키에 100kg은 가볍게 넘을 거구. 동그란 뿔테 안경 뒤 독일 사람 특유의 깊은 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57)지만, 왠지 모를 장난기가 어려 있는 표정과 약간은 어눌한 말투까지...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처음 만난 지난 27일, 첫 인상에서 느꼈던 ‘역시 외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은 “어서 와요”라며 내미는 그의 손을 잡고서 단박에 지워야 했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기자에게 친절하게 자리를 내주더니 곧장 찡긋 눈웃음을 짓는다. “내가 여기에 앉아야 사진이 잘 나와”라는 말과 함께 한 표정이다. 익살맞은 한국 사람과 영락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은 정말 네버엔딩스토리(never ending story)라니까”라며 침을 튀기며 한국 문화를 자랑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본디 한국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다. 그런데 말본새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에 취한’ 그의 열정에 편하게 듣고 있던 기자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 27일 <뉴데일리>와 만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외국인 출신답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익살과 재치가 넘쳤다.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그의 코리안 네버엔딩스토리를 들어봤다. ⓒ 고경수 기자
    ▲ 27일 <뉴데일리>와 만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외국인 출신답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익살과 재치가 넘쳤다.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그의 코리안 네버엔딩스토리를 들어봤다. ⓒ 고경수 기자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

    이 사장이 관광공사로 부임한 이후 2년 반만에 눈앞에 성큼 다가온 성과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9월, 한국을 들썩이게 했던 중국 바오젠(寶健.일용품유한공사)사의 인센티브 관광객을 유치한 것도 그다.

    일본과의 치열한 관광 유치 경쟁에서 어떻게 승리했을까라는 의문은 이참 사장의 끝도 없는 ‘한국사랑’을 보면 저절로 풀린다.

    한국 사랑에 흠뻑 빠진 그의 코리안 네버엔딩스토리를 들어봤다.

    ◆ 미소 속에 감춰진 카리스마, 한국 공기업에 일침

    사람 좋은 웃음에 넘어갔다가는 큰코 다친다. 공과 사는 분명하다. “외국인 출신이니까 잘 모르겠지”라며 직원들이 어설프게 일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만큼 자기 관리도 충실하다. 한국 관광업계의 대목, 중국 국경절이 있는 10월부터는 그 좋아하는 술도 끊었단다. 평소에는 고춧가루를 듬뿍 탄 막걸리를 거침없이 마시는 그다.

    그가 처음 관광공사 사장으로 왔을 때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간부 회의에서 내가 뭘 하자고 하면 ‘검토하겠습니다’라고 해놓고 한참 답이 없었다. 그게 한국의 관료주의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소위 공무원 스타일 아니겠나?”

  • 27일 <뉴데일리>와 만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외국인 출신답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익살과 재치가 넘쳤다.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그의 코리안 네버엔딩스토리를 들어봤다. ⓒ 고경수 기자
    ▲ 27일 <뉴데일리>와 만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외국인 출신답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익살과 재치가 넘쳤다.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그의 코리안 네버엔딩스토리를 들어봤다. ⓒ 고경수 기자

    문제점을 찾으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다. 당장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고 자기 이름을 딴 ‘참(CHAR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실적 부진한 직원들을(이참 사장은 이들을 무임승차라 표현했다) 찾아내 재교육을 시켰다. 3번째 재교육 대상이 되면 삼진아웃이다.

    철밥통 공기업에서 대대적인 인사 개혁이 시작됐다. 첫 시험대에 9명이 재교육 대상자에 올랐고, 조직 내부에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사장실이 아닌 해당 부서에서 직접 결재하는 방식도 택했다.

    그가 내세운 조직관리 비법은 '삼관'이다. 관심을 주고 관찰을 하고 관계를 맺는(관심-관찰-관계) 방식이다. 이 법칙은 이미 관광공사 내부 제1규율이 됐다.

    최초의 외국인 출신 공기업 사장이 한국 공무원 문화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쑥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조직을 정비했으면 실적으로 이어져야지…” 맞는 말이다. 이참 사장이 부임한 이후 관광공사 실적은 쭉쭉 올라갔다.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성과가 과거 한 자리 성장에서 지금은 두 자리로 껑충 뛰었다. 바야흐로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에 귀화 한국인 최초 관광공사 사장이 중심에 있다.

    ◆ 기(氣)흥(興)정(情) 알리고 오림으로 관광객 부른다

    이참 사장은 참 놀기 좋아한다. “내가 놀아보고 놀기 좋은 곳을 추천해야 관광객들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관광철학이다. 다행히 매일 놀러 다니는 게 그의 일이다. 차도 타고 기차도 탄다. 경치가 좋고 날씨가 맞으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관광공사 사장으로 있는 2년 반 동안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다.

    이참 사장은 한국 문화를 기(氣), 흥(興), 정(情) 세 가지로 나눴다. 놀러 다니면서 터득한 한국 문화의 진수다. 그는 이것을 “뼈에 새기고서야 한국 사람이 됐다”고 표현했다.

    불쑥 내년 달력을 꺼냈다. 곳곳에 숨겨진 한국의 풍경과 사람 사진이 눈길을 끈다. 사진마다 담긴 기-흥-정을 소개하며 또 신을 낸다.

    완만한 산 능선을 짚으며 한국 특유의 곡선의 기운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전통춤을 추는 무희의 표정에서 흥을 찾는다. 사람들이 함께 웃는 정이 가득한 사진을 보며 “아직 정은 어렵다”고 겸손을 빼는 그의 표정에서 사진 속 한국인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인터뷰 전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같다”는 직원들의 귀띔을 그제서야 공감했다.

    놀기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 사람 굉장한 마케터다. 여행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기자도 한참 듣다보니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중간중간 '허풍(?)'도 섞어가며 당장 사진 속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게끔 하는 영업 수완이 대단하다.

  • ‘말솜씨 참 좋다’는 생각을 연거푸 하는 찰나 재밌는 홍보 문구를 또 꺼냈다. 이번엔 '오림'이라고 한단다. 떨림, 끌림, 어울림, 울림, 몸부림이다.

    이참 사장은 이게 있어야 관광이 잘된다고 했다. 홍보를 할 때 적용했더니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처음 만나는 떨림, 뭔가 모를 끌림. 한국 문화는 이미 이 두 가지 ‘림’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이참 사장의 노하우가 가미된 마케팅이 시작된다. 한국의 매력에 끌려온 관광객들에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감동의 울림을 선사한다. 결국 관광객은 몸부림으로 여기에 화답한다.

    “저 멀리 제주 하르방부터, 남산 자물쇠까지 한국 곳곳에 묻어있는 스토리로 100가지 이야기를 만들었다. 오전에 경복궁, 오후에 명동시장과 남대문 시장을 보고는 ‘한국 다 봤다’라고 말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하는 이참 사장.

    오랜만에 한국사람 같은 한국인을 만난 자리였다.

     

    다음은 이참 사장과의 일문일답

    중국 바오젠사의 단체 관광에 이어 중국 국경절까지...9월과 10월은 유독 바쁘셨을 것 같다. 어떻게 지냈나?

    지난 추석연휴 마지막 날 바오젠사 포상관광단체가 인천공항에 입국해 현장으로 마중 나갔다. 오랫동안 노력해 유치한 대규모 단체관광객들이었기 때문에 한국방문을 진심으로 반기는 마음으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10월1일부터 일주일간의 중국 국경절 기간에는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직접 경복궁 일일가이드로 나섰다. 경복궁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듣고, 감탄하는 이들을 보면서 외래관광객 1천만명 시대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됐다.

    이번 중국 국경절은 외국관광객 1천만명 돌파의 분수령이라 들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어떤가?
      
    8월까지 전년대비 14% 성장한 140만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9월에는 사상 최초로 1만명이 넘는 바오젠사 포상관광단체가 입국했다. 여기에 더해 이번 국경절 기간에는 전년 동기대비 약 20% 이상 증가한 7만여명이 한국을 찾아 올해에는 중국관광객이 2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 '최초'의 기록들이다. 

    이런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우리 관광공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힘을 발휘한다면 외국관광객 1천만명 달성 목표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광공사의 노력뿐 아니라 관광업계간 협력, 정부의 지원,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국 국경절 기간 동안 관광공사의 마케팅 전략, 한 마디로 줄이기 어렵겠지만, 어떤 것을 가장 중요시했나?

    한국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공항 입국 환영 이벤트를 마련하고 환대분위기를 조성해 좋은 첫인상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BC카드사, 중국 은련카드사와 공동으로 중국관광객에게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주요 공항 및 명동 등지에서 홍보 이벤트를 진행, 친절하고 관광하기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는데 중점을 뒀다.

    마땅치 않은 숙박시설, 비싼 물가 등 중국 방문객들의 불만도 많이 전해진 것 같다. 현장도 많이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 현장의 목소리는 어떠했나?

    이번 바오젠사 포상그룹의 관광 프로그램은 미리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기 때문에 저가상품 구매자에게 의례 있어왔던 불만족의 요소는 없었다. 여행 참가자의 13%인 1,400여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4.59(5점 만점)로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바오젠사 관광유치 애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참 사장의 혁혁한 공으로 알려져 있는데, 숨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11,000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단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관광공사, 제주도 등 많은 정부 기관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오젠 총재와 개인적 친분을 쌓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됐다. 함께 삼청동 수제비집, 찜질방을 방문하면서 한국적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보냈다.
      
    리 다오 총재가 만찬 때 직원들에게 “우리도 한국을 배워서 한국처럼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포부를 심어주었고, 앞으로 더 많은 포상관광단체를 한국에 보내겠다고 하였다. 양국 관광교류가 더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하는, 보람된 순간이었다.

    처음 파란 눈의 한국인이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많은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참 사장의 취임 전후, 관광공사가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대중적 인지도 때문에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관광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저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한국관광공사가 하는 일이 더 알려지고, 사업도 다양해졌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사장과 직원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일이 잦아졌다. 직원들의 어려움과 아이디어를 늘 경청하면서 즐겁고 욕심있게 일하려는 조직문화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그리고 최근에는 유럽과 북미까지 어느 곳 하나 중요하지 않은 마케팅 지역이 없지만,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나라가 있다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시장이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나 이웃 국가에서 유입되는 인바운드 관광객 수가 다수를 차지하므로 가까운 일본, 중국, 동남아시장으로부터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공사는 외래관광객 1천만명 시대를 열어 세계 20위권의 관광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연말까지 일본, 중국,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한류 주간(Korea Week) 개최, 쇼핑캠페인 실시, 스키 관광객 유치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문화외교’의 창구를 외교부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관광공사의 입장과 이참 사장 개인적 입장은?

    ‘문화외교특별법’은 문화외교의 컨트롤 타워를 외교부로 일원화하여 체계적으로 문화외교를 추진하자는 취지라고 알고 있다.

    문화의 범위가 관광, 콘텐츠, 문화재, 스포츠, 출판, 영화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미 정부에서는 이런 복잡한 문화정책을 전담하도록,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중앙행정기관을 두고 있다.

    현 단계에서 문화관련 사업에 관해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문화체육관광부로 일원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겠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누가 전담하느냐의 문제보다 해외에 소재한 각 공관과 문화원, 한국관광공사 해외지사, 콘텐츠 진흥원 해외사무소간의 유기적인 협조 체계 구축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