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스러운 한국인'

    지난 주말에 샌 디아고 컨벤션 센터의 대형 홀에서 남가주지역 태권도 시합이 있었습니다.
    서너 살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Tiny Tiger Competition'부터 시작해 초, 중, 고등학생들, 그리고 나중에는 장년들 Black Belts 시합까지 참으로 어마어마한 대회였습니다.
    경기를 시작하면서 3천여 명이 모두 기립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데 미국기와 태극기가 동시에 펄럭이며 미국 국가가 나오고 이어서 우리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모인 그곳에 스피커를 통해 우렁찬 목소리로 애국가가 나오는 것이 감격스러웠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애국가를 한국에서 들을 때와 외국에서 들을 때, 그것도 대부분이 외국인들인 대행사장에서 들을 때 그 느낌은 굉장히 달랐습니다. 
    많은 경우, 태권도 시합장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건 보았지만 이렇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행사를 주최한 'Pride Martial Arts'의 원장은 한국인 2세입니다.
    그의 개인 도장 벽에는 존경, 명예, 존중, 배려, 자긍심, 자제심 같은 단어들이 영어만 아니라 한글로도 큼직하게 쓰여 있습니다.
    미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조국인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한국인 2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부모세대, 선배 세대들이 쌓아 온 대단한 공적이라 하겠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가난해서 남의 나라 원조를 받아야 살 수 있는 후진국이라면, 자동차는 고사하고 TV나 전화기, 일반 전자제품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리 2세들이 한국 사람임을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2세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30여 년 전, 뉴욕에서 한국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을 때 일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늘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요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학생이 질문이 있다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이건 비단 선생님 한 분께 묻는 게 아니라 부모님, 선배님, 모든 어른들께 묻고 싶은 것입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한국인의 긍지, 긍지 하는데 도대체 긍지를 느낄 게 무엇이 있습니까? 한국의 역사만 해도 뭐 자랑할게 있습니까?
    그저 중국 아니면 일본에 아부한 역사에, 오랜 세월 당파싸움에, 동족을 야만스럽게 살해한 비극에, 온통 부끄러운 역사 투성이 인데 도대체 어떻게 긍지를 느끼란 말입니까?
    어른들은 그러더군요. 한국인은 두뇌가 명석한 백성이라고요. 그리고 교육수준도 높다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째지게 가난해서 여기까지 이민을 와야 합니까?
    한국 뉴스를 보면 서울에서는 데모가 그칠 날이 없고 누구든 어떻게 해서든 권력을 잡으면 온갖 부정을 저질러가며 자기 뱃속 챙기기에 정신없다 하더군요. 어디 그뿐입니까? 미국에 사시는 어른들을 보십시오. 하다못해 교회에서도 싸움이 잦아 걸핏하면 분열되고, 한인회니 무슨 회니 말로는 하나같이 한인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면서 그 잘난 감투 때문에 주먹질을 하는 추태를 보이고, 이러면서 어떻게 우리들에게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끼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건 한마디로 위선입니다. 저는 이런 한국 어른들의 위선에 구토를 느낍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라는 게 싫고 부끄럽습니다.” 
    아마도 그는 기회가 생기면 한바탕 퍼부어대려고 별렀던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싫고 부끄럽다는 한국 학생.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뭐라 변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후진국,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TV, 자동차, 전자제품들을 비롯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간 한국 기술은 말 할 것도 없고, 학계, 의학계, 예술계, 특히 최근에는 K-Pop에 한국 드라마까지, 나날이 한국인의 우수성이 전 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Proud to be an American."
    산책을 할 때면 꼭 지나가게 되는 집 앞에 이런 푯말이 꽂혀 있습니다.  성조기도 달려있습니다.
    “Proud to be a Korean."
    한국에서 살든 외국에서 살든 한국인의 이 자부심은 우리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국가가 없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사람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일제 암흑기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 뉴욕의 그 학생이 조목조목 지적한 사항들은 좀 달라졌는가?
    한국은 지금 소모적인 정치공방, 연일 벌어지는 고위층의 부패 등, 이런 정치판에 실망한 대다수 국민들이 신선한 지도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그 지리한 이념 논쟁 따위에도 신물 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보수와 진보는 다 필요합니다.  좌파도 우파도 다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하며, 대한민국의 영구한 발전을 기원하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건전한 국민이라면, 그가 진정한 보수라면, 진정한 진보라면 목적은 오직 하나 “대한민국 잘 되기”일 것입니다.
     
    “나는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어른 세대가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갈 유산이 바로 이것입니다.

     김유미 재미 작가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