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속, 또 무소속, 정당정치가 무너진다
     
    상생적 정당정치를 위해 선거제도를 바꿔보자
      
    변희재, pyein2@hanmail.net   
     
    안철수 열풍에 이어, 박원순, 그리고 이석연까지, 무소속 후보들의 부각으로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정당 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기존 정당에는 입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존 정당의 틀에 갇히는 것이, 득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들이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추미애 의원,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 의원이 정당정치의 원칙을 강조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자당의 후보를 선출한다 해도, 외부의 무소속 후보와 다시 한번 통합경선을 해야할 상황이다. 한국의 정당 정치가 매우 기형적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기성 정당의 무능에 식상한 국민들이 때 묻지 않은 시민사회 인사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기성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다. 각 정당은 선거 때마다 외부수혈을 통해 절반 가까이 국회의원을 교체해왔다. 오히려 더 이상 수혈할 외부인사가 있기나 하는가라는 반문을 던지게 된다.

    노무현 정권 때만 두 번의 신당 창당, 수혈할 외부세력이 남아있기나 하나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 등 두 번의 신당을 창당하며, 미래세력, 시민사회세력이란 명분으로 늘 외부수혈을 강조해왔다. 그렇게 해서 인적청산을 반복해온 한국의 정당정치가 여전히 제 자리에 있다면, 무언가 근본적인 대안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사회적 흐름, 또는 제도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의 무소속 후보들은 모두 다 자신의 진영에서 후보단일화를 언급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1995년의 박찬종 서울시장 후보처럼, 혈혈단신으로 출마하여 양당의 지지층을 끌어모아 제 3지대를 창출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성정당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기성정당과의 협조를 통해 당선되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방식은 반드시 타도해야할 적을 상정하게 된다.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은, 결국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집권을 저지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인정하는 셈이다. 이는 이석연 후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도해야할 적을 상정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그토록 정치권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이전투구 정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이라면 설사 무소속 후보가 집권을 하더라도, 기존의 정치틀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박원순 후보는 지난 지자체 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태백시장 후보를 지원하는 등, 진영과 관계없이 정책 콘텐츠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박원순 후보는 이러한 태도 덕에 폭넓은 지지자를 확보해왔다. 그러나 서울시장의 야권단일후보를 꿈꾸는 순간, 이러한 평소의 지론은 무너지게 된다. 한나라당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구도라면 박원순이 하나, 박영선이 하나, 이정희가 하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것이다.

    뜻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좌우소통을 강조한다. 좌우 양 진영에서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여 상생과 통합의 길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은 아직까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언론들 스스로 양 진영의 기관지 역할을 자처하면서, 학자와 논객들도 갈라져있기 때문이다.

    현재 좌파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정도로 갈라져있고, 우파 역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에 이어,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보수시민단체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특히 좌파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민주당과는 한참 떨어져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참여당 대표가 늘 강조했듯이 민주당의 노선은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훨씬 가까웠다. 이런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 들어 갑자기 좌클릭을 하며 민주노동당화가 된 것부터 한국 정치 비극의 시작이다.

    정치 컨설턴트인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이 문제를 두 가지로 진단한다. 첫째는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입증했듯이, 현재 대한민국 정치세력 중에서 외부와의 연대없이 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국민의 신뢰를 잃으며 열린우리당은 지자체와 각종 재보선에서 전패를 당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현재 여당이지만, 아무리 민심을 잃는다 해도, 완전 참패를 당하지는 않고 있다. 의외로 지지기반이 두텁다는 것이다.

    억지춘향식으로 민노당에 끌려가는 민주당, 한국 정치의 비극

    이 때문에 이명박 정권 들어 세가 약화된 민주당은 전례없이 민주노동당과 좌파시민사회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들과의 협조 없이는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단독세력과의 승부에서도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기존의 정책노선을 포기하고 좌경화의 길을 걷게 된다.

    민주당 내에서도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준비했고, 노무현 정권 때 결실을 맺은 한미FTA 같은 정책은 과거 집권세력으로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손학규 현 민주당 대표는 한나라당 시절부터 해외투자 유치와 FTA 전도사를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민주당이 한미FTA에 찬성표를 던지는 순간, 야권연대는 그대로 파기된다. 단지 선거승리만을 위해 어떻게 국가의 주요정책을 내던지냐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야권이 똘똘 뭉쳐, 여당의 재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라는 좌파시민사회와 언론들의 요구사항을 저버리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느 진영이 이기느냐에 주로 관심들을 많이 갖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기느냐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권세력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정권을 내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단지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한줌도 안 되는 민주노동당의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내세워 집권하게 되면, 국가 전체를 위기로 빠뜨릴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민주당의 과오로 다시 한나라당이 재집권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권은 더 똘돌 뭉쳐,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해야할 당연한 정책마저 번번히 뒷다리를 잡고, 포털과 언론 등이 선동하기 시작하면, 이명박 정권 때와 똑같이 국력을 소진키는 일만 반복된다.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승자독식구조의 선거제도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대선의 경우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제 정치세력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국민의 선택을 받은 뒤, 상위 1, 2위 후보 간에 다시 한번 선거를 하는 것이다. 박성민 대표는 이 제도의 장점을 “현재의 단일화는 결과 이전에 단일화는 하는 것이고, 결선투표제는 결과를 보고 단일화를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선호투표제 도입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상생의 길 열릴 것

    총선의 경우는 선호투표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순서를 매겨 투표하고, 1순위 투표자가 과반을 넘지 못하면, 맨 하순위 득표자의 2순위표를 더해가는 방식이다. 이는 호주에서 시행중이고 2002년도 새천년민주당의 당대표 경선에서 적용해본 적이 있다. 원칙적인 보수신당을 지지하지만, 표가 분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권자들은 1순위표를 보수정당에, 2순위표를 한나라당에 주면 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사표를 완전히 방지할 수 있어, 민의를 수렴하는데 효율적일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이 적을 타도하기 위해 정책을 포기하는 단일화의 폐단도 막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최소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의 후보들은 군소정당보다 상대 정당 지지자들의 2순위를 받기 위해,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상대당을 매도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민주당 후보가 1순위 표로 30% 정도 득표했다 치자. 과반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2순위표를 더해야하는데, 기껏해야 5%도 나오지 않는 민노당 지지층보다는 30%대 이상을 넘어설 한나라당 지지층의 2순위를 공략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양당 간에 상생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노선보다 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현재의 승자독식구조의 선거방식으로는 아무리 양당 간의 상생을 추구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다. 민주당의 경우 마음에도 없는 민노당 앞에 굴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는 결과에 관계없이 과정만 보더라도, 파행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점점 더 존재감을 상실하며 위축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당리당략은 잠시 내려놓고, 국익을 위해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논의해볼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