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해안엔 4년 넘게 '결사반대' 깃발 펄럭여'절차적 정당성 훼손' vs '국가 안보에 지장'
  •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색 깃발들이 대나무에 높이 매달려 4년이 넘게 갯바람에 펄럭이는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일부 마을주민 외 국내외 시민운동가, 천주교 사제단, 야당 정치인 등 30∼40여명이 컨테이너와 천막,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마을의 중덕해안 일대는 며칠 전부터 무거운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해군이 강정마을회장 등을 상대로 법원에 낸 '공사방해금지 등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곧바로 경찰력 투입을 요청해 반대 측을 해산시킨 뒤 공사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해군은 2014년까지 이곳에 함정 20여척이 정박하는 군항 부두 1천950m, 크루즈 선박 2척이 계류하는 민간크루즈항 부두 1천110m 등으로 구성된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학계와 종교계, 정치권에서도 기지 공사 중단과 공권력 투입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끝없이 증폭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 여론조사로 수용 = 2007년 당시 김태환 제주지사는 오랜 논란을 부르던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 "'평화의 섬'과 양립 가능하고,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 발표했다.

    도민 1천500명에게 해군기지 유치 여부를 물은 여론조사결과 찬성이 54.3%로, 반대(38.2%)보다 많았고, 후보지로 거론된 대천동(강정마을 포함)과 안덕면ㆍ남원읍 등 3곳을 대상으로 한 주민여론 조사에서도 대천동 찬성률이 56%로 가장 앞섰다는 것이 정책결정의 근거였다.

    그러나 반대 측이 여론조사 표본의 주민대표성과 객관성 문제 등을 잇달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는 이듬해 9월 해군기지에 관광미항과 크루즈항 기능을 가미한 민군 복합항을 건설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해군은 총사업비의 14%인 1천405억원을 투입해 부지 수용과 방파제 구조물 제작장·현장사무소 설치를 완료했지만, 반대 집회 등으로 항만공사 공정률은 33%에 그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던 제주지사가 광역자치단체장 중 처음으로 주민소환투표에 부쳐지는가 하면, 주민들도 찬반으로 나뉘어 수년째 대립하는 등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제주도가 갈등과 반목의 섬이 돼버린 느낌이다.

    ◇반대여론 확산..정치권 가세 =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의회 등과 정책협의회를 열고 갈등해소추진단까지 구성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주민과 해군, 시공사는 각각 기지 공사 추진 혹은 저지를 둘러싼 법적 대응을 이어가 서로 상처만 깊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한 영화평론가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59일간 단식을 벌였고, 반대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등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날로 커졌다.

    또 미국의 노엄 촘스키 등 진보적 지식인이 기지 반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외신에 보도되는 등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5당 역시 반대편에 서 있다.

    야5당 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은 지난 4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해군기지라면 굳이 제주도가 선정돼야 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사업을 일시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점 재검토' VS '중단없는 추진' = 반대 측은 해군기지 입지 선정은 물론 이후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방부가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방ㆍ군사시설 실시계획을 승인했고, 도 당국의 자의적 변경동의안 상정과 주민의견 수렴 배제, 회의절차를 무시한 도의회의 날치기 통과 등으로 얼룩진 절대보전지역 해제 역시 원천무효라는 것이다.

    반대 측은 또한 "해군기지가 들어설 곳이 환경적 가치가 큰 곳인데다 인근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해양보호구역도 훼손될 수 있다"고 밝히고 "대양해군 논리가 사실상 폐기된 시점에서의 해군기지 건설은 제주를 국제 분쟁의 중심지로 전락하게 할 뿐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국책사업이 지연된다면 경제 손실은 물론 국가안보에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며 기지 건설 사업이 중단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전력정책관인 이용대 소장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총 10개월여 공사가 지연됐으며, 월평균 59억8천만원의 예산이 손실됐다"며 "주민보다 외부단체에 의한 반대활동이 주도적으로 이뤄져 이념화, 정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작전의 신속성과 지속성이 보장되고 남방해역 방어가 가능해지려면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돼야 하며, 2007년과 2008년 4계절 환경영향평가 등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