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사랑

    열 살, 여덟 살 손자들이 야구게임 하는 것을 보기 위해 가끔 공원에 가곤합니다.
    미국에서 공원이라 하면 아이들 놀이터가 있는 곳도 있고 또 야구, 축구, 농구, 정구 등, 여러 운동 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공원도 있습니다.
    4살짜리 꼬마들이 하는 Tee Ball부터 나이별로 구성된 야구 경기는 주말마다 동네잔치가 벌어지는 듯 요란합니다.
    시합 전부터 부모들이 모여듭니다. 여기 저기 피크닉 테이블에 음식을 준비하기 바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게임이 시작된 곳에서는 응원소리가 떠들썩합니다.
    “굿 아이!”, “굿 아이!”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말.
    나는 “Good Eye”가 무슨 말인가 처음에는 참 의아했습니다.
    그 말은 스트라익처럼 들어오는 공이지만 실은 스트라익이 아닌 공, 타자가 그 공을 잘 골라 때리지 않은 게 참 잘했다는 칭찬의 말인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선구안(選球眼)이 좋다는 말이지요.
    안절부절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해가며 목청이 터져라 소리소리 질러대는 어른들을  보노라면 어쩜 사람들이 저렇게 어린애들 같을까,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미국 전역, 도시뿐 아니라 아주 작은 시골마을까지 포함해 Little League에 가입한 어린이만 3백만 명이 넘는다 합니다.

    그들 부모들 중에 자원봉사로 코치, 심판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 열성 또한 대단합니다.
    그들은 코치나 심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특별학교에 가서 필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울긋불긋 오색가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이들도 귀엽지만 똑같이 아이들 팀의 로고가 붙어 있는 티셔츠나 모자를 쓰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도 참 볼만합니다.
    어떤 아빠나 엄마는 병원 수술실에 막 달려 나온 듯, 병원 가운 차림인 사람도 있습니다.

    시합 장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거의 모든 부모들이 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일 텐데 마치 토요일에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듯, 아니 토요일에 가장 중요한 일이 아이들 운동경기 밖에 없는 듯, 그렇게 거기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어린이들 야구 게임은 9이닝이 아니고 6이닝까지인데 스트라익 아웃이 별로 없이 이어지니 시간이 많이 걸려 그야말로 야구에 별 흥미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시합을 시작하기 전, 행해지는 절차가 있습니다.
    모두 기립자세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지휘자의 목소리에 따라 엄숙하게 열창을 합니다.
    “나는 나의 국가를 사랑하고 내 국기를 존경합니다. 이 게임에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나는 나의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자세가 너무 진지하고 엄숙해 걸어가던 어른조차 멈추어 서서 가슴에 손을 얹을 정도입니다.  
    매주 경기장에서 계속 반복되는 이런 나라사랑과 국기에 대한 존경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나라사랑이 몸에 배어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달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때 일입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언덕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공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자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 아예 잔디에 담요를 깔고 누워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쾅쾅 소리를 내며 밤하늘에 번쩍 번쩍, 색색가지 무늬를 이루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내가 미국사람인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내가 미국사람이라는 데 대해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
    누군가 CD Player를 가지고 나와 트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유행하고 있는 노래도 아니고, 엘비스 프레슬리나 페리 코모 같은 흘러간 시대의 노래도 아니고 애국심을 북돋는 노래들이 불꽃놀이가 끝 날 때까지 계속해 나왔습니다.
    “하느님. 우리나라, 미국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노래가 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웅얼웅얼 그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이런 애국심.
    이게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순간 나는 어린아이들의 야구시합을 떠올렸습니다.
    Little League에서 보여준 그 나라사랑, 국기 존경에 대한 반복되는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 사랑은 어린 아기가 우유를 먹고 튼튼하게 자라나듯, 이렇게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몸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심어주는 나라 사랑. 이것이 자랑스러운 국가, 강한 국가의 힘입니다.
     
    김유미 재미작가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