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는 <정부와 개인> <대한민국 정당들의 무게> 재는 저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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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세훈 서울시장 ⓒ 자료사진
    ▲ 오세훈 서울시장 ⓒ 자료사진
    “저 오세훈은 2012년 대선 출마를 포기합니다.
    오는 24일 수요일, 세금급식 주민투표는 오롯이 시민의 선택, 시민의 행동, 시민의 정치입니다. 저의 대선 행보를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오늘 저는, 대선 출마 포기를 밝힙니다.
    24일에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정치가 무엇인지 시민 여러분의 발걸음으로 명명백백히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세훈!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라! 무엇을 망설이는가? 지금 정치 현실에서는 당신 자신이 주민투표 성공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24일 수요일) 주민투표는 오세훈을 위한 잔치”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눈에는 당신 자신이 최대의 걸림돌이라는 점이 보이지 않는가? 보이지 않으면 더듬어서라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실과 상관없이 이미 사람들의 인식(perception) 속에는 주민투표와 오세훈이 하나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 사퇴를 건다고? 애들 장난하나?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라!
     
    24일(수) 주민투표는 저울이다. 그것도 보통 저울이 아니라 두 가지 전혀 다른 사안을 동시에 올려 놓은 저울이다. 차분히 살펴 보자.
     
    24일(수) 주민투표는 첫째, 정부와 개인의 무게를 비교하는 저울질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 역할과 개인 책임 사이의 구분선을 만들려는 시민 행동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상위 50% 이내에 드는 소득층이 “자녀의 밥을 스스로 책임질 것인가 아닌가?”라는 문제이다. 소득이 상위 50% 이내에 들면 당연히 “내 아이 밥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을 집중해 달라”라고 말할 정도의 자존심이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소득이 그 이하인 사람은 당연히 “미안하다. 내가 사정이 어려우니까 세금으로 우리 아이 밥을 먹여달라”라고 생각할 정도의 염치가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 ▲ 세금급식 주민투표 거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 ⓒ 뉴데일리
    ▲ 세금급식 주민투표 거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 ⓒ 뉴데일리
    그런데 지금 거리마다 나붙은 ‘투표 거부 플래카드’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가르는 나쁜 급식”--- 이는 염치없는 인종이 되기를 강권하는 플래카드이다. 개인에 대한 모욕이다.
     
    왜냐? 내 아이의 점심을 내 돈으로 먹이는지, 정부 세금으로 먹이는지 아이들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의 편가르기란 존재하기 않는다. 이미 이에 대한 기술적 해결방안은 확보되어 있다. 세금급식을 먹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이들 세계가 아니라 주민센터 직원에게 알려질 뿐이다. 주민 투표를 거부하자는 플래카드의 주장은 결국 아이들 사이의 위화감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주민센터 직원에게 알리기 싫다. 세금을 더 걷어 더 써서 이 사실을 감추어야 한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가난은 죄도 아니며 불명예도 아니다. 가난을 은폐하려는 행위야말로 가난을 부끄럽고 불명예스런 것으로 만든다. 더욱이 세금(남의 돈)을 써서 나의 가난을 은폐한다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이다. 지금 시내 곳곳에 붙은 투표 거부 플래카드는 이런 모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파렴치해지자! 모두가 파렴치해지면 아무도 파렴치하지 않게 된닷!
     
  • ▲ 오는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여야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사거리에 한나라당(위)과 민주당의 주장을 담은 찬ㆍ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연합뉴스
    ▲ 오는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여야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사거리에 한나라당(위)과 민주당의 주장을 담은 찬ㆍ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연합뉴스

    24일(수) 주민투표는 둘째, 대한민국 정당들의 무게를 저울에 올렸다. 저울에 달아본 무게는 초라하다. 민주당은 투표 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역할과 개인의 책임]에 관한 기준을 묻는 투표에 대해 시민에게 “투표하지 마세욧!”이라고 권하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졌다. 이는 시민에 대한 모욕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시민은 더 이상 [정부의 역할과 개인의 책임에 관해 고민할 자격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나을까? 천만에! 한나라당은 마지못해 투표 참여 운동을 펼치는 척 시늉하고 있을 뿐이다. 24일(수) 주민투표가 한나라당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자.
     
    한나라 국회의원들 머리 속에는 오직 내년 총선과 대선에 대한 욕심 밖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된지 오래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분별한 세금 복지 프로그램을 남발해 왔다. 세금 복지가, 유력 대권후보인 박근혜의 의중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납작 엎드려 복종하기 위함이었든, 혹은 내년 총선에서 인기를 끌기 위해서였든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 주체로서의 책임을 뭉개버린 배임행위]를 저질러 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제 와서 [모든 학생에게 세금급식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고 떠들어 봐야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소리 밖에 안 된다.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웃기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네가 하면 로맨스냐?” 한나라당은 이미 무분별한 세금 복지에 반대할 수 있는 원칙, 가치, 기개를 스스로 내팽겨친지 오래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민투표에서 박살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나라당의 존립 근거 자체가 깨진다.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지지층의 환멸이 격화된다. 밸도 원칙도 기개도 없는 살찐 기득권 돼지들이라면 아예 새로운 정당이 생기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까짓 내년 총선에서 여의도에 입성하는 살찐 돼지 숫자가 몇 마리 줄어든다고 아쉬울 것 없지 않은가? 살찐 돼지 대신에 마른 돼지(야당)가 여의도에 많이 입성한들? 그까짓 내년 대선에서 살찐 돼지 두목이 당선되는 것이나 마른 돼지 두목이 당선되는 것이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른 돼지들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 지배계급에게 조공을 바치고 친북 세력이 날뛴다고? 5년 동안 날뛰라고 내버려두면 될 것 아닌가?—이런 환멸이 기존의 한나라 지지층 사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자, 이 사정은 무엇을 뜻하는가? 오세훈! 결과적으로 당신은 대한민국 정당정치 전체를 저울에 올리고, 한나라당의 운명 자체를 저울에 올린 8·24 주민투표의 상징 아이콘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나라당이 그 동안 남발해 왔던 무분별한 세금 복지 프로그램을 되물리고 스스로 몸을 추스릴 것인가, 혹은 신당이 창당되고 한나라당이 깨지는가—이 엄중한 저울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오세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뿔싸, 애초 이것은 당신의 저울이 아니었다.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저울이다. 이 저울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당신은 이 저울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상징은 상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몸을 버리고 이미지만 남아야 한다. 권력을 버리고 정신만 남아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대선 포기 선언을 해야 한다. 당신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8·24(수) 주민투표는 무서운 저울이다. 칼날이며 기요틴이다. 당신이 이 저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암시하는 순간, 당신이야말로 이 칼날 아래 목이 떨어지는 첫 제물이 될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열변을 토해야 한다.
     
    “이 저울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시민들이 만들었습니다. 저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분들의 것입니다. 이 저울은 정부의 역할과 시민의 책임을 재는 저울이며, 한나라당의 정당 가치를 재는 저울입니다. 제 것이 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엄혹한 저울입니다. 못 믿으시겠다고요? 저는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대선 불출마,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ngmo77

    <편집자 주>
    오세훈 시장은 오늘 10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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