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銀 피해자들 부럽다. 민주당 모른척한다” “타 저축은행 피해자와 연대 추진”
  • 지난 19일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보해저축은행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이하 보해 비대위) 서상훈 위원장은 “관심이라도 받는 부산저축은행 비대위가 부럽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보해저축은행이나 전일저축은행 사태에 관심이 없습니다. 보해양조 측은 말로는 ‘다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정작 행동은 안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해자들도 부산저축은행 비대위 회원들처럼 집단 행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원 의원을 만났는데 별 다른 반응도 없고….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상훈 위원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두툼한 관련 기사와 자료집, 등기부등본 등을 건넸다.

    보해저축은행이 영업 정지된 후 대주주인 (주)보해양조는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지고 초과예금분과 후순위채권을 구매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이때 목포 시장도 임건우 보행양조 회장을 거들어 피해자들은 믿었다고 한다.

    금융위, 민주당, 보해 측 "유상증자로 BIS 비율 높이면 된다더니…"

  • ▲ 서상훈 보해저축은행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서상훈 보해저축은행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올해 초 보해저축은행의 BIS 비율이 -1%로 나온 뒤 2월 8일 보해양조에서 300억 원을 증자하기로 했습니다. 2월 21일에는 김석동 금융위 위원장과 박지원 의원 등이 보해저축은행을 찾아 ‘보해양조에서 150억 원을 오는 2월 27일까지 증자하면 BIS 비율이 8%가 된다. 그러면 영업정지도 풀린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 말만 믿고 기다렸죠. 그래서 다른 저축은행과는 달리 뱅크런도, 시위도, 점거도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보해양조 측은 결국 추가 유상증자를 하지 못했다. 목포 시민들 사이에 ‘보해양조가 3개월째 직원들 월급도 못 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불안감은 커졌다. 몇 달 뒤 부산저축은행 그룹 사태가 터지자 ‘아차’ 싶었던 비대위가 확인해보니 임건우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이미 보해저축은행에서 슬슬 발을 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여기 한 번 보십시오. ‘대주주로서 책임을 지겠다’던 사람이 대표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임건우 보해양조 회장의 서울 압구정동 자택은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제공됐습니다. 그렇게 80억 원을 빌렸다고 합니다.”

    서 위원장은 임건우 보해양조 회장에게 돈을 빌려준 A업체의 실체도 확인했다고 한다. 자본금 1,000만 원 짜리 ‘페이퍼컴퍼니’였다.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임건우 회장이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날짜는 2월 23일이었다.

  • ▲ 전남 목포 소재 보해저축은행 본점. 목포 시내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 전남 목포 소재 보해저축은행 본점. 목포 시내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저희 비대위가 이상열 前의원께서 변호사니까 그 분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前의원께서 상황을 보시고는 ‘보해양조 정도면 본사 땅만 팔아도 피해자를 모두 구제할 수 있을 텐데’라고 하시더라구요. 보해양조 연 매출이 2,000억 원입니다. 최근에는 미국에 막걸리 수출이 성공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해저축은행, 해외도박자금 중계지였다는 소문도

    서 위원장의 지적처럼 (주)보해양조는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는 말만 한 뒤 별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구속된 오문철 前행장으로부터는 건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가 가진 부동산들은 대부분 지역 농협이 담보로 잡고 있었다.

    “저희들이 발로 뛰면서 확인해보니까 오문철 前행장은 자기 명의로 된 재산 중 돈이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뉴질랜드로 도망간 박종한 前행장도 엄청나게 ‘해먹었을 것’이라는 말이 파다해요.”

    박종한 前행장은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인을 통해 자수의사를 밝혔고, 결국 지난 22일 귀국해 검찰에 구속됐다.

    서 위원장은 지금까지 중앙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도 전했다. 임건우 보해양조 회장의 친척인 오문철 前행장은 ‘자칭 저축은행계 큰손’이라며 호언장담하고 다녔다고 한다. 지역의 한 신문에 따르면 보해저축은행은 2007년부터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 벤처기업가, 재벌 2-3세 등등의 해외원정도박에 뒷돈을 대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 중간에는 해외도박 전문 브로커 H씨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보해저축은행 사태 하면 씨모텍과 제이콤만 언급되었지만, 코스닥업체와 상장사 등 10여 개 회사를 뺏어 들어먹은 걸로 나옵니다.”

    서 위원장은 “보해저축은행을 갖고 놀던 ‘기업사냥꾼’들은 ‘에너지플래닛’ ‘BK디지웍’ ‘DK솔라파워’ ‘레이컬처컴퍼니’ 등의 페이퍼컴퍼니에 불법대출을 해준 뒤 이 돈으로 (주)오라바이오틱스, 로하스컨설톨로지(舊평택당진 항만개발), 네스테크, 한일양행, 흥국건설 등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주는 식으로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서 위원장은 “한 신문사에서 보해저축은행의 불법대출금 경로를 추적해 기사를 냈는데 지금은 상장 폐지된 (주)오라바이오틱스가 일종의 경유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7년 오문철 은행장과 이용호 씨가 대리인을 내세워 인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흘러든 불법대출금 중 일부는 인천시의 재개발 택지지구에도 100억 원 가량 흘러들었다고 한다.

    '씨모텍 김 대표, 타살이다' 소문도 나와

    서 위원장은 보해저축은행과 삼화저축은행과 함께 망가진 코스닥 기업 씨모텍에 대해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를 했다.

  • ▲ 보해저축은행 정문에 붙은 비대위 구성 안내문. 보해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정부기관과 야당 의원 말만 믿다 당했다고 본다.
    ▲ 보해저축은행 정문에 붙은 비대위 구성 안내문. 보해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정부기관과 야당 의원 말만 믿다 당했다고 본다.

    “저희가 씨모텍과 관련해 사실을 파악해보니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자살했다는 전날까지만 해도 직원들 앞에서 ‘꼭 회사를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경로로 빠져나간 보해저축은행의 불법대출액은 모두 6,000억 원. 서 위원장은 “확인해보니 그 중 4,000억 원 가량이 무담보이거나 가치가 없는 담보물을 잡고선 대출해준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들이 확인해보니 불법대출해준 돈들은 자회사 형태의 SPC를 통해 모두 대손상각 처리해버려 찾을 길이 없었다고 했다.

    “정말 귀신같이 법망을 피해 다녔던 거 같아요. 법을 너무 잘 압니다. 그 똑똑한 머리로 서민들한테 사기를 치고 다녔습니다.”

    서 위원장도 “보해저축은행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나무이쿼티의 ‘몸통’인 이철수 씨나 김창민 씨,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의 경우 ‘라인’이 워낙 광범위해 광주지검이 제대로 수사를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1차 공판 때 가봤더니 검은 양복 입은 사내 수십 명이 몰려와서는 오문철 씨에게 90도로 인사를 합디다. 들리는 소문에는 보해저축은행이 조폭과 연예계, 해외도박자금까지 연관돼 있다고 하더라구요.”

    서 위원장은 “하지만 지금 피해자들은 믿을 수 있는 게 검찰밖에 없다”며 광주지검 특수부가 반드시 보해저축은행 경영진을 처벌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박지원 의원에 대해서도 실망입니다. 예전에 광주 서구 갑 의원인 김영진 의원이 주선해 박지원 의원이 왔었는데 시간 없다며 1시간만 면담하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정도였어요. 게다가 ‘보해양조가 살아야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을 게 아니냐’는 식으로 말해요. 그게 말이 됩니까.”

    "관심 밖인 보해저축은행, 피해 큰 부산저축은행이 부러울 때도"

  • ▲ 보해저축은행 영업정지 후 예금보험공사가 붙인 공지사항.
    ▲ 보해저축은행 영업정지 후 예금보험공사가 붙인 공지사항.

    서 위원장에 따르면 보해저축은행 피해자는 모두 4,157명, 피해규모는 316억 원이었다. 후순위 채권 피해액은 100억 원 가량으로 부산저축은행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었다. 비대위 회원 또한 온라인에서는 70여 명, 오프라인에서는 40여 명이 모인다고.

    “피해규모나 피해자 수는 적지만, 대부분이 70~80대 노인네들입니다. 금융이 뭔지도 모르고 그깟 이자 0.3% 더 받겠다고, 고향 기업이라고 믿고 맡겼다가, 재산 다 날린 분들입니다. 남편 몰래 예금 들었다가 들켜 이혼당하고 정신과 치료 받는 아주머니도 계십니다.”

    서 위원장은 곧 비대위 회원들의 위임을 받아 소송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희는 부산저축은행 비대위보다 인원도 적고 행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부산저축은행 비대위, 다른 저축은행 피해자 대책위 등과 연대해서 이 문제를 꼭 풀어나갈 겁니다. 도와주십시오.”

    서 위원장은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런데 왜 서울 언론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보해저축은행 사태로 동생 결혼자금을 날렸다는 서 위원장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의 속은 타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지금도 보해저축은행과 삼화저축은행, 씨모텍, 제이콤 등 망가진 코스닥 업체들에 대한 제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제보에 따르면 두 저축은행을 '말아먹은' 관계자들의 행각은 '악(惡)' 그 자체로 보인다. 저축은행 피해자들과 제보자들은 "이들이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데 검찰이나 경찰이 체포했다는 말을 못 들었다. 못잡는게 아니라 안 잡는 거 같다"고 주장했다.

    한 제보자가 전한 이야기는 저축은행 비리가 단순한 불법대출 사건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과 잘 아는 사람들은 지금 이런 기사를 보면서 '야, 걔네들 잡혀도 3~4년 살다 나오면 돼. 그래도 벌써 숨겨놓은 돈이 많으니까 걱정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런 법을 누가 믿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