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18)

    신병 훈련소에서 장병을 격려하고 차로 돌아왔을 때 영수, 민옥 두 남매는 경호차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동안 경호 경찰이 밥을 먹였고 대충 씻겼기 때문에 사람 모양새가 났다.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경호경찰 하나가 말했다.

    「배가 고팠는지 가게에서 가져온 국수 두 그릇을 둘이 국물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식곤증으로 잠이 든 것이다. 차에 태워 오면서 들었더니 아이들은 진주에서 부산을 가던 중에 어머니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짐을 싸들고 먼저 부산 삼촌한테 갔는데 이름이 박금봉이라고 했다.

    「애들을 이곳에다 놔둘 수는 없어.」
    결심한 내가 말하고는 마침 옆으로 다가온 이철상에 보았다.
    「부산으로 데려가서 아이들 아버지를 찾아주도록 하세. 제 어머니도 부산으로 올 테니까.」

    그래서 두 남매는 나와 함께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영수, 민옥이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겠다. 수만 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하여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전쟁은 군인들만 사상자를 내는 것이 아니다.

    수도를 점령당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단 한 시간도 정부 기능을 놓치지 않고 운용이 되었는데 수시로 전황 보고를 받는다. 그런데 군인보다 민간인 피해가 더 큰 것이다.

    8월초순의 어느 날 오후에 비서 황규면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이제 나는 황규면의 얼굴만 보아도 좋고 나쁜 보고를 구분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황규면의 얼굴은 병이 난 사람처럼 푸르다. 내 앞에 선 황규면이 시선도 들지 않고 손에 쥔 서류를 읽는다.

    「각하, 전국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살육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나는 시선만 주었고 황규면의 말이 이어졌다.
    「도망쳐 나온 주민의 보고에 의하면 빨치산과 인민군이 합동으로 국군가족, 유지, 성분 불량자를 색출하여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있습니다. 총알이 아깝다고 죽창, 곡괭이, 도끼로 죽인다고 합니다.」

    가슴이 메인 나는 마른 입안의 침을 모아 삼켰고 황규면이 다시 읽는다.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지역에서까지 접수된 학살이 50여건이 넘고 추정된 숫자지만 3천명이 넘는 주민이 살해당했습니다. 전라북도 옥구면에서는 수십 명을 때려죽이고 우물 속에 넣었다고 합니다.」

    「천인공노할 놈들.」
    마침내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눈에 경련이 일어났으므로 나는 두 손으로 눈을 눌렀다가 손이 시린 것처럼 훅훅 불었다. 그리고는 황규면을 노려보았다.

    「아군이 인민군을, 북한 주민을, 도끼로 쳐 죽이고 아이까지 죽인 후에 우물에 쳐 넣었다는 정보는 없는가?」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난데없는 말이어서 황규면이 눈만 꿈벅였고 내가 꾸짖듯이 다시 물었다.

    「아군이 부상당한 인민군이나 병원에 입원한 북한 주민을 학살하여 태워 죽이고 시체를 길가에 버렸다는 정보는 없는가?」
    그때서야 말뜻을 알아차린 황규면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대답했다.
    「없습니다. 각하.」

    당연한 일이다. 국군은 밀리고 있다. 남한 주민은 침략자의 발에 깔린 노예나 같다. 그 때 내가 잇사이로 말했다.
    「공산당 놈들은 또 뒤집어씌울 걸세. 만일 우리가 이겨서 그놈들을 잡는다면 우리가 학살을 시작했다고 할 거네.」
    이런 놈들이 민족 통일을 부르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