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⑪ 

    내가 대전의 충남지사 관저에서 대국민방송을 결심한 것은 6월 27일 오후 7시경이었다.
    미국이 주도한 UN의 한국지원이 확실시된 직후여서 그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국민들께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서울은 함락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은 터라 나는 공보 처장 이철원에게 지시하여 서울중앙방송의 아나운서를 대기시킨 후에 전화로 구술, 녹음 방송토록 했다. 국민과 국군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조급했고, 분했으며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방송이 나간 지 네 시간 후에 인민군이 서울로 진입했고 네 시간 반 후에 한강철교가 폭파되었다.

    따라서 피난민은 물론이고 후퇴하는 국군 장병과 장비까지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한강철교를 너무 일찍 폭파시킨 것이다.

    「너무 서둘렀습니다!」
    내무장관 조병옥이 소리치듯 말했고 내 집무실이 된 충남지사실에 모인 각료들도 웅성대었다. 군 작전에 대해서 보고받지 못한 터라 나도 분하긴 했지만 같이 비난할 수는 없다. 군통수권자인 내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신성모 국방장관을 교체해야 됩니다.」
    그렇게 말한 각료는 전규홍 총무처장이다. 사무실 안이 조용해지면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철기 이범석을 다시 국방장관으로 기용해야 됩니다.」
    신성모는 전선에 가 있는 터라 이곳에는 없다. 내가 전규홍을, 그리고 각료들을 차례로 보았다.

    「지금 신 국방은 전선에 가 있네.」
    나는 내 말끝이 떨리는 것을 들었다.
    「채병덕 참모총장도 전선에 있고.」
    방안에는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명예롭게 전사할 기회를 주기로 하세.」
    지금 국방과 참모총장을 경질해서 전세가 역전 되겠는가? 내 머릿속에서 그 순간에 떠오른 생각은 임진왜란 때 피란을 가면 선조 주위에서도 끊이지 않던 당쟁이다.

    35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전철을 밟다니, 서애 유성룡도 위주로 피난 가던 선조로부터 영의정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직이 떨어졌다. 영웅 이순신을 질투하여 잡아들인 선조대왕 전철을 밟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UN군 참전 소식을 들은 각료, 대전 시민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돋아났다. 각료들이 나간 후에 황규면이 서둘러 들어섰다.
    「각하, 내일 맥아더 장군께서 수원으로 오신답니다.」
    「어, 그래? 그럼 내가 수원에 가야지.」

    얼굴을 편 내가 황규면을 보았다.
    「내가 마중을 나간다고 전하게.」
    「각하,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도 소련 야크기가 폭격을 하고 다니는 터라.」

    황규면의 얼굴에 그늘이 덮였다. 대전에도 여러 번 야크기가 날아와 기총소사를 하고 지나간다.
    「이 기회에 국군을 강군으로 육성해야겠어.」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황규면은 다 들었을 것이다. 두 주먹을 쥔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UN군과 함께 싸우면서 단련시켜서 정예군으로 양성시킬 거네.」

    나는 70여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역경에 빠졌을 때는 꼭 희망의 꼬투리를 잡아내어 버틴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보인다. 이번 남침으로 전화위복의 기회를 찾으리라. 그리고 놓치지 않으리라.

    머리를 든 내가 황규면을 보았다.
    「이보게, 이것이 통일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