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⑧  

    완행열차가 밤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다. 27일 새벽 4시에 서울역을 출발할 때 나와 프란체스카, 그리고 황규면 비서에다 경무대 경찰서장 김장홍이 인솔한 경찰관 넷이 우리 일행의 전부였다.

    황규면이 경무대 금고를 열고 안에 있던 현금을 다 꺼내 가방에 넣어왔는데 5만 원 정도라고 옆에 앉은 프란체스카가 말해주었다. 5만원이면 그 당시에 쌀 다섯 가마니는 살 수 있는 돈이다.

    덜컹이며 기차가 한강다리를 건너갈 때 나는 또 조선조 임금 선조를 떠올렸다. 선조는 비오는 밤에 임진강을 넘어 북으로 도망쳤지만 나는 남으로 도망치는구나. 문무백관에다 후궁, 궁녀까지 거느린 행차여서 더디었겠지. 도중에 굶은 군사들이 왕께 드리려고 지은 밥을 빼앗아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죄를 물을까 두려워진 파주목사와 장단 부사까지 도망쳐 버렸다던가?

    깨진 유리창으로 바람이 휘몰려 들어왔고 의자의 스프링이 튀어나와서 엉덩이를 쑤시고 있다.
    「파파, 좀 주무세요.」
    하고 옆자리에 앉은 프란체스카가 말했으므로 나는 프란체스카의 손을 쥐었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어, 매미.」
    「조국을 지키려고 죽는 거예요. 파파.」

    내 손을 마주 쥔 프란체스카가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다.
    「파파, 우리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으려면 이겨야 돼요. 침략자를 물리쳐야 된다구요.」
    나와 프란체스카는 국군을 우리 아이들(Our Boys)이라고 불렀다. 프란체스카는 이런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황보고가 불분명했고 기습 공격을 받은 터라 내각이 혼란된 상태에서 내가 일부의 보고만 듣고 피신을 한다면 비겁한 도망자로 낙인찍힐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나는 만용으로 대세를 망치는 성품도 아니지만 비겁자는 더욱 아니다. 포성이 울린다고 일부의 보고만 듣고 도망치기가 싫었을 뿐이다. 내가 피난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프란체스카는 마음을 졸였으리라.

    「파파, 이번 전쟁에서 꼭 이기셔야 돼요. 그래야 파파 인생의 멋진 마무리가 되실 거예요.」
    「매미, 고마워.」

    목이 메인 내가 눈을 감았다. 매미는 나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안다. 독립투사는 다  품고 있었던 독립의 열망이겠지만 내가 곡절이 오죽 많았는가? 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운 나라인가?

    공산당 국가로 통일이 될 수는 없다. 소련과 중국의 조종을 받는 김일성은 공산당 독재로 한반도를 다시 일제 식민지 시절보다 더 암울한 땅으로 만들 것이다. 김일성은 준비된 지도자가 아니다. 따라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산당 독재, 일인독재 체제로 한반도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느덧 잠이 들었다. 그랬다가 주위의 수선스런 분위기에 눈을 떴다.
    창밖이 환했고 기차가 기적을 울린다.
    「이곳이 어딘가?」
    내가 물었더니 황규면이 대답했다.
    「각하, 곧 대구에 도착합니다.」
    「대구?」

    놀란 내가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가 넘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창밖을 내다보면서 황규면에게 물었다.
    「전황은?」
    「아직 모릅니다. 각하.」
    「안 돼, 돌아가자.」

    내가 불쑥 말했더니 황규면이 당황했다.
    「각하, 대구에 곧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상황을 보시고 결정을 하시지요.」
    황규면은 기관사에게 그냥 곧장 달리라고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