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 (16)

    1949년 한해에만 빨치산들은 남한에 3,000회 이상의 게릴라전을 감행했다.
    군 당국의 정보에 의하면 빨치산 병력수는 약 2,000명으로 모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지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1950년 1월초의 남한은 준(準) 내전 상태나 같다. 철통같은 공산 독재체제로 온 국가를 집단화, 병영화한 북한 체제에서 보면 남한은 불면 넘어갈 것 같은 국가, 아니, 국가도 아니게 보였으리라.

     공산당 무리, 특히 소련군 소령 출신의 사이비 공산주의 독재자 김일성이 민주주의의 다양성, 합리성, 그리고 경쟁에 의한 창조성과 독창성을 이해할 리가 없다. 민중을 짐승처럼 가두고, 먹이를 주면서 따르게 하는 것이 잘 되는 국가인줄 안다. 김일성의 관점에서 보면 남한은 금방 망할 것 같은 나라다.

    「이보게, 내가 시티코프의 보고서와 북한 동향에 대한 자료를 보냈으니 장대사하고 잘 상의해서 북한과 소련의 밀착을 언론이나 각국 대표에 알려주게.」
    하고 내가 뉴욕에 있는 유엔대사 조병옥에게 전화로 말했다.

    장대사란 미국 대사인 장면을 말한다. 해방 후에 민군정청 경무부장으로 국내 치안을 담당했던 조병옥은 유엔대사가 되어 미국에 가있는 것이다. 조병옥은 1894년 생이니 당시 56세로 컬러비아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조병옥의 굵은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알겠습니다. 각하, 하지만 소련의 팽창 정책이 한두군데가 아니어서 한반도는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알고있네.」
    「미국은 극동 방위선을 일본으로 정한 것 같습니다.」
    에치슨 라인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내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방위는 유엔의 역할이 커지네, 조대사.」
    「이곳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국내 치안불안부터 종식 시키라는 말 같아서 나는 입맛을 다셨다.

    통화를 끝냈을 때 집무실 안으로 이기붕이 들어섰다. 굳어진 표정이었으므로 내 가슴이 무거워졌다.
    「각하, 민국당에서 제출할 개헌안에 무소속 의원이 벌써 9명이나 동참했다고 합니다.」
    나는 시선만 주었다. 개헌안이란 내각제 개헌안을 말한다.
    내 독주를 막겠다는 주장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권욕이다.

    1949년 초에 한민당 주류와 대동청년당이 연합하여 민국당을 창당했는데 이제 원내 의원이 70석인 제1야당이 되었다. 나를 지지하는 대한민국당이 71석이니 차이는 1석 뿐이다. 거기에 무소속 의원을 합하면 과반수 확보가 가능하다.

    이기붕이 말을 이었다.
    「각하, 결단을 내리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도 모르게 풀석 웃었다.
    「무슨 결단? 내가 쿠데타라도 일으키란 말인가?」
    눈밑에 경련이 왔으므로 손끝으로 누른 내가 말을 이었다.
    「뜻이 맞지 않는다고 다 청산하고 몰아 낼 수는 없지. 그럼 내가 김일성이하고 똑같은 인간이 되네.」

    아마 공산당 프락치가 되어있던 소장파 의원들과 휩쓸려 친일파 소탕부터 했다면 공무원 태반이 잡혀 죽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 국회에서 나를 몰아내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한민당 출신 의원 대부분이 사라져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나는 김일성도 아니고 김구도 아니다. 이승만이다.

    이윽고 내가 입술만 달삭이고 말했다.
    「이북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도 믿지 않으려고 들겠지. 다 내가 대통령제를 밀어붙이기 위한 음모라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