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10)

    내가 양영태에게 말했다.
    「네 동생은 국가보안법을 어겼다. 대통령이라도 어쩔수가 없구나.」
    「사람도 죽이지 않았고 주모자를 따라 다녔다고만 합니다. 첫째로 그놈은 소학교만 겨우 졸업해서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놈입니다. 각하.」
    양영태는 보성전문을 나온 지식인에 속했다. 33세에 처와 자식이 둘이다. 지금 용산 제 7사단의 군 형무소에 갇혀있는 동생 양영식은 서른살로 역시 처와 자식이 셋이다.

    양영식은 작년인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에 주둔했던 국방경비대 제 14연대 소속 중사로 반란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것이다.
    건국한지 두달밖에 안된 때여서 나는 그 반란 사건을 듣자 피가 마르는 심정이 되었었다. 제 14연대의 좌익계 일부 군인들은 그해 4월3일에 제주도에서 발생한 폭동의 진압군으로 파견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군인들을 선동,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이 1948년 12월 국가 보안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양영태가 이제는 절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각하, 제 조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각하께서 사형당한 독립군 가족을 은밀히 찾아가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거둬 주겼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반란군 가족이 었습니다만,」
    말을 그친 양영태가 손등을 눈물을 닦는다.
    「제가 책임지고 동생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저희 형제에게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아버지는 무얼 하시느냐?」
    불쑥 내가 물었더니 양영태가 헛기침을 했다.
    「해방되기 전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조부님과 달리 농사만 짓는 농삿꾼이셨지요.」
    「---」
    「그래서 조부께서는 저희 형제를 자주 불러 각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언젠가 각하께서 돌아오시면 꼭 저희 형제를 데리고 가서 뵙겠다고 하셨지요.」
    「---」
    「그런데 이렇게 되어서 돌아가신 조부께도 뵐 낯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문학가동맹에서 탈퇴했단 말이냐?」
    「예,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완전히 손을 떼었습니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사느냐?」
    「제가 좌익에 가담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인쇄소에서 교정일을 봅니다.」
    「그 전에는 뭘 했고?」
    「해방 전까지 5년 동안 성신여학교 영어교사로 근무면서 소설을 썼습니다.」
    점점 양영태의 눈에 생기가 더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식민지로 36년이 지나다보니 인간사(人間史)는 덧없기만 하다. 겨우 해방이 되었는데도 민족위 수난은 그치지가 않는다. 약소국의 업보라면서 견디기 에는 분하고 부끄럽다. 그 순간 내 가슴은 다시 맹렬하게 들끓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일어나고 있다. 머리를 든 내가 양영태 뒤쪽에 있는 비서 윤호기를 보았다.
    「윤비서, 방법이 있겠나?」
    내가 물었더니 눈치를 cos 윤호기가 금방 대답했다.
    「국방장관께 연락을 하겠습니다.」
    연락을 받은 신성모는 대번에 양영식을 빼낼 것이다. 아마 직접 제 차에 싣고 나오려고 들지도 모르겠다. 미국처럼 제도와 절차가 정비된 국가라면 힘들겠지만 아직 신생국이다. 모범이 되어야할 대통령이 또 이런 월권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