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 ⑦

    「아, 각하, 그동안 건강 하시지요?」
    맥아더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린 순간 내 가슴이 어린애처럼 뛰었다.
    내 나이 75세, 맥아더는 나보다 다섯살 연하인 70세가 된다. 심호흡을 한 내가 말했다.
    「장군, 국무장관 에치슨이 곧 발표할 미국의 극동방위선에 대해서 알고 계실 겁니다.」
    맥아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긍정일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것을 발표한다면 미국의 대한민국 방어 포기 성명서로 믿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장군도 아시지요?」
    「압니다, 각하.」
    짧게 대답했던 맥아더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잇는다.
    「그 라인은 정치적인 착상이오, 각하...하지만 나로써는 어쩔수 없습니다.」
    「장군,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면 안됩니다, 미국이 일본으로 물러나서 대륙에 마치막 남은 민주국가를 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더니 앞에 앉은 존이 외면했다. 내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웠던것 같다.
    내가 말을 이었다.

    「미국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수십만 미국인을 살상한 일본을 도와서 공산주의의 보루로 삼겠다는 그 반역자 같은 발상은 지금도 국무부에 남아있는 공산주의 분자들의 착상입니까?」
    내가 한마디씩 피를 뱉는 심정이 되어서 말했더니 맥아더가 수화구에 대고 긴 숨을 뱉는다.
    나는 한국어 연설은 말끝을 떨고 지난 말투를 쓰는데다 말이 길어서 마침표가 한참 만에 나온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 영어 연설은 한국어보다 능숙하고 내 귀에도 유창하게 들린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맥아더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렸다.

    「각하, 나는 각하를 존경합니다. 각하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그 불굴의 정신을 존경합니다.」
    나는 그저 잠자코 기다렸다. 맥아더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나를 대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우리 둘은 70객이다. 수전산전 다 겪었다. 눈빛만 봐도 심중을 읽는다. 다시 맥아더가 말했다.
    「각하, 내가 일본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시지요.」

    「장군, 한국인은 은인을 잊지 않습니다. 백년 전에 맺은 한미수호조약의 거중조정 항목 하나만 믿고 내가 조선 황제 특사로 루즈벨트를 만난 것이 40여년 전이었소. 그때도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비웃음만 받았지요. 암, 당연하지요.」
    노인은 말이 많다고 했던가? 감정이 북받친 내가 열에 뜬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조약상의 한줄 문구로 미-일간의 정책적 밀월 관계가 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때 미국은 일본과 필리핀과 조선을 서로 나눠 갖기로 합의를 하는 중이었거든요.」

    「각하」
    하고 맥아더가 말을 자르려고 했고 앞에 앉아있던 존이 한쪽 손을 들여 보였다.
    이제 그만 두시라는 시늉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말을 이었다.
    「두 번째 루즈벨트가 소련에게 참전 댓가로 한반도를 넘긴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니 이제야말로 한미 양국은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동맹이란 표현을 썼다.
    내가 말을 그쳤을 때 맥아더가 차분하고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각하, 나는 군인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각하 옆에 미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으로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UN의 일원이기도 하구요.」
    맥아더의 완곡한 표현이 나를 감동시켰다. 맥아더가 옆에 있다는 것이 위안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