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26) 

    「온갖 소문이 다 들립니다.」

    박기현이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1949년 초, 저녁 무렵이다. 경무대 응접실에서 나는 농지개혁법 초안을 드려다 보는 중이었다.

    「미군이 철수하면 납북통일이 된다고 합니다. 남한 정권은 석달이 못가 붕괴되고 남북한 총선이 실시된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느냐?」

    했지만 내 가슴은 착잡했다. 1948년 10월 13일, 40여명의 소장파 의원들이 미군철수 긴급동의 안을 상정했다. 소장파의 배후에는 김구가 있는 것이다. 주권국가에서 외국군이 주둔할 이유는 없다. 당연히 나가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정 시대도 아니며 미군이 내정에 간섭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 철수를 서두는 것은 한반도에 미 ․ 소 양국군을 철수시키고 총선을 실시하자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이 현실적인가? 내 눈치를 살핀 박기현이 말을 이었다.

    「각하께서는 미군을 끼고 독재정치를 하시려고, 그리고 친일파 세력을 각하와 함께 기득권을 지키려고 미국 철수를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못된 놈들!」

    참지못한 내 입에서 호통이 터졌다.

    「내가 지금까지 온갖 모함을 참고 견뎠지만 미국을 끼고 독재를 한다는 말을 지어낸 놈들은 참으로 악한 무리다.」

    미국과 미군이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미군정 하에서 단독정부를 일으키니 미군과 결탁했다고 몰아붙이는 무리는 공산당 뿐이다.

    공산당의 적은 김구가 아니고 김규식도 물론 아니다. 나, 이승만 뿐이다. 나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공산당 국가가 되었다. 김구가 남북한 동시 총선으로 통일 대통령이 되었겠는가?

    역사가 판단하겠지만 현실을 무시한 이상만 가지고는 국가를, 민족을 파탄시킬 뿐이다. 그때 응접실로 이철상이 들어섰다. 이철상의 표정도 굳어져 있다.

    「각하, 조소앙 선생께서 오셨습니다.」

    「오시라고 해.」

    6시에 조소앙(趙素昻)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조소앙의 본명은 조용은, 1887년생이니 나보다 12년 연하인 63세 였는데 상해 임정 시절부터 균형잡힌 사고를 지닌 인재다.

    메이지대 법학박사 학위를 얻고 임정의 국무위원 괴교부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지난 4월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김구와 함께 평야에 다녀왔다.

    곧 조소앙이 들어섰으므로 나는 반겨 맞았다.

    내가 조소앙을 만나자고 한 것이다.

    인사를 마친 우리가 마주보고 앉았을 때 조소앙이 웃음띈 얼굴로 묻는다.

    「각하, 저한테 무슨 볼 일이 계십니까?」

    조소앙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터라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 웃은 내가 말했다.

    「소앙, 내가 듣기로 지난번 방북은 실패라고 하셨다던데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소앙같은 분이 보시고 느끼신 사실을 듣고 싶소.」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길게 숨을 뱉은 조소앙이 외면했으므로 나는 시선만 주었다.

    방북 후에 조소앙은 한민당과 결별했다. 이윽고 조소앙이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지난번 방북은 우리가 완전히 이용당했던 것입니다. 이북은 이미 김일성이 군대를 다 갖추고 병영화(兵營化)된 체제로 가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벌써 단독 정부를 세울 준비가 다 미치고 있는 상황에 남한 대표가 단독정부 수립을 않겠다는 결의문을 낸 것이니 기가 막힐 일이지요.」

    나는 이미 듣고 예상도 하고 있었지만 조소앙으로부터 직접 들으니 억장이 무너졌다.

    김구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