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⑪

    그, 장덕수가 죽었다. 암살을 당한 것이다.

    나를 만나고 돌아간 지 며칠도 안되었다. 1947년 12월2일, 설산(雪山) 장덕수는 종로경찰서 경사 박광옥과 배희범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1945년 12월30일 고하(古下) 송진우가 암살당한지 2년후였다. 동아일보 사장, 부사장을 지낸 두 거목(巨木)은 반탁과 민주정권 수립에 심혈을 바친 애국자들이다.

    나는 한성감옥에서 5년 7개월간 갇쳐 있으면서 친일 역적들의 폐해를 내몸으로 겪고 들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갈 독립사들로부터 듣고 깨우친 바가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게 부탁했다.
    목표를 위해서는 감싸안고 나아가자. 그리고 나서 목표를 이룬 후에 가려라.
    내가 해방후 한국 땅에 첫 발을 딛고나서 ‘덮여놓고 뭉치자’고 한 말이 그런 맥락이 되겠다.

    누가, 어떤 잣대로 누구를 평가하고 처단한단 말이냐?
    나는 그토록 증오했던 공산당 핵심들에게도 그런 짓은 안한다.
    내가 고집 세고 오만하다는 평을 듣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이해하여 내 분수는 안다.

    나는 장덕수를 암살한 두 암살자보다 그 배후를 혐오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곧 유엔 주재하에 남북한 총선이 실시될것이라고 기뻐하던 장덕수의 얼굴이 떠올랐고, 자네는 나보다 20년 젊으니 20년 더 살 것이 부럽다고 했던 내 말도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이렇게 거인(巨人)들이 쓰러져 간다.
    그리고 1948년 1월 8일이 되자 장덕수가 그렇게 고대했던 유엔 선거관리 위원단이 한국에 도착했다.
    9개국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단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 환영 열기에 놀란 것 같았다.
    한민당의 김성수는 물론이고 김구까지 환영 성명을 발표했고 전국은 축제분위기로 휩싸여서 공산당의 테러도 주춤해졌다.

    장택상이 나를 찾아 왔을 때는 그 무렵이다.
    돈암장에 손님이 많았지만 곧장 응접실로 들어선 장택상이 나하고 만나던 손님이 문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말했다.
    「김 주석께서 남한만의 선거는 절대로 안된다고 환영 성명에서 발표하셨는데 북한이 거부하면 선거는 못하게 될까요?」

    「나도 남북한 동시 선거를 바라고 있네. 그리고 남한 백성 모두가.」
    내가 말하자 장택상이 입맛을 다셨다.
    「북한이 아직 유엔 선거관리위원단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김일성의 반응을 말하는가?」
    그렇게 물은 내가 곧 내말에 대답했다.
    「소련이 곧 반응하겠지.」

    남한 국민 모두는 김일성의 공산당도 함께 유엔선거감시단을 반기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남북한 통일국가 수립의 마지막 기회다.
    문을 열고 총선을 하자. 그래서 공산당수 김일성이 당선 된다면 김일성은 남북한 통일 대통령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남북한 총선을 하면 공산당은 필패합니다. 하루에도 수천명씩 피난민이 월남하는 상황인데 총선을 하면 북한 주민들의 원성이 한꺼번에 표출될 테니까요.」
    장택상이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리 남한만의 선거는 안된다고 강조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나는 잠마코 시선만 주었다. 맞는 말이다.

    지금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내가 남한만의 선거를 한다면 100% 당선이 될 것이다. 공산당만 빼놓고 대부분의 우파 정당, 우익인사들은 모두 나를 지지한다.

    김구는 나한테 말한 것이다.

    이윽고 내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백범은 위대한 독립투사야. 임정을 끝까지 지켜 독립운동의 핵심을 잡아 주었어. 그래,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겠지.」
    머리를 든 내가 똑바로 장택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