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⑨

    1945년 8월9일 소련군이 북한 땅에 진주한 후로 북한 정국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공산당 체제로 정비되었다.
    그리고는 이제 남한 땅을 넘보는 상황이다. 1947년 9월초가 바로 그렇다.
    북한은 순식간에 정돈되고 토지개혁까지 끝내 국가체계를 갖춘 반면에 미군이 주둔한 남한은 혼란이 계속되는 상태다.

    테러가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뜻이 맞지 않는다고 암살을 자행한다.
    나도 몇차례 암살 위기를 면했지만 암살로 정국을 장악하겠다는 발상을 한 자들을 경멸했다.

    신라나 고려시대라면 또 모르겠다. 민의가 표출되고 대세의 흐름을 따르는 민주주의 국가를 신봉한다면 권총을 쥐고 암살자를 보내는 노름은 산적 괴수에나 어울린다.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는 맞지 않다.

    정적(政敵)에게 암살자를 계속해서 보내면서 정치를 하겠다는 말인가?
    버릇이 되면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대한제국 시대에 개화운동을 하겠다면서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회원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내가 목소리는 떨지만 말에 호소력이 있어서 호응이 꽤 좋았지만 그것이 뭉쳐 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직 지도부의 능력도 부족했겠지만 대한인(大韓人), 아니 그 이전의 조선, 한민족의 속성이 그런 것 같다.
    민의(民意)가 뭉쳐서 세상을, 악한 정권을 바꾼 적이 없는 것이다.
    동학의 농민란도 일본과 청국군까지 끌어들여 가볍게 진압되었으며, 대한제국 말기의 개화운동은 왕과 수구세력의 방해로 운동이랄 것도 없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서 식민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꺼내는고 하니 당시의 북한을 보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면서 소련군과 함께 입성한 김일성은 완전히 정권을 장악했다. 북한은 이제 평정되었다.
    김일성을 배척하고 새 정권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소련이 배후에 있는 이상 북한 땅은 김일성 체제로 굳어지리라.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역사를 참조로 한 북한 땅의 운명이다.

    공산당 세상이 천국이라고 선전을 해대지만 하루에도 수천명의 피난민이 38선을 넘어오고 있다.
    이 순한 백성들은 그저 도망쳐 나오기만 한다.
    해방도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연합군에게 일본이 패망했기 때문에 얻은 해방이다.

    내가 남한만은 내 고집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야만 한다고 결심한 것이 이런 선례, 이런 경험, 이런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7년 9월17일 미국무부 장관 마샬이 정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이것이 남북한 총선의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 정부는 루즈벨트의 유령에서 벗어나 트루만 독트린을 정립하는 시대가 되었다.
    트루만 독트린이란 곧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외교의 원칙을 말한다.

    「그것 봐라. 이젠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준 박기현에게 내가 소리쳐 말했다.
    「어떻게든 북한을 총선에 끌어들여야 한다!」

    마샬이 상정한 제안 내용은 미-소의 점령지 내에서 조속히 총선을 실시하고 그것을 감시할 유엔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두 내가 제안하고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래서 내가 박기현에게 다시 말했다.
    「김일성이만 받아 들이면 총선이 된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지요.」
    대답을 한 사람은 박헌영의 비서였던 이철상이다.
    내 시선을 받을 이철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일성이 박사님처럼 반기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