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재평가돼야 한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 경제학

    대한민국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그를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에 의해 건국됐다.
    그런 뜻에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없으면 아들이 없듯이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라시아대륙의 대부분이 공산혁명의 파도에 휩쓸릴 때 한반도의 남부를 자유민주주의로 지켜낸 것은 차라리 기적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승만이 그 일을 해낸 것이다.

    혹자는 미국이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2차 대전 후 이 땅에 들어온 미국은 준비되지 않은 지배자였다. 미국은 전쟁이 끝나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자는 소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이승만은 그 길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라며 저항했으며, 그 일로 미군정의 박해를 받았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세워지자 미국은 소임을 다했다며 홀가분하게 떠났다. 마침 냉전이 격화해 발칸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자 미국은 양쪽을 다 감당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을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했다. 그 경솔함은 김일성의 오판을 일으켜 6·25전쟁의 참화로 이어졌다.

    혹자는 김구가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할지 모르겠다.
    김구는 독립운동에 큰 공로를 남긴 분이다. 그렇지만 김구는 자유민주주의의 투철한 신봉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끝까지 반대했다. 보다못한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서울의 중국영사를 그에게 보내 권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로 한민족을 통일한 보루가 될 터이니 그 나라에 부통령으로 참여해 이승만을 도우라고. 하지만 김구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의 답변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는 차라리 공산주의를 하고 말지 민족분단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인 것은 나라를 세울 길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밖에 없음을 굳게 믿고 작으나마 지지세력을 결집해 끝내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먼저 세운 다음 국력을 키워 북한에서 공산주의세력을 몰아내면 된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단순명쾌하고 강력한 논리로 흩어진 민족을 모으고 허물어진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문명 국민을 만드는 역사적 과업에 착수했다.

    그의 시대가 지나고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하에서 정치적으로 성숙했고,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세습적 왕조체제로 타락했고 온 국민을 국제 거지의 신세로 만들었다.
    그렇게 이승만의 정당성은 세월과 함께 증명됐다. 그의 노선에 따라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로 민족통일을 이룰 만한 용기와 지략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승만의 건국과 통일 방안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렇지만 그 방향 밖에 없음은 누구의 눈에도 훤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우리 건국의 아버지다.

    이승만연구소가 최근 문을 열었다.
    개소 기념식에서 들은, 그가 남긴 수많은 통치사료가 아직 정리도 안된 채 묻혀 있다는 지적에 가슴이 아렸다. 어느 20대 젊은이의 연설은 더욱 큰 아림이었다. “우리에게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를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반도를 배웠지 대한민국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집안을 일으킴에 공이 큰 아버지를 다소간의 과(過)가 있다고 형제들이 불목하면서 제사하나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면 그 집안은 패가의 망신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의 독재는 비판돼야 하지만 온통 그의 책임만도 아니었다. 사회 자체가 너무 가난해 부패하고 분열해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공산주의라도 좋으니 민족통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지만 그때는 더욱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문화일보. 201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