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이승만 연구소가 발족하고 제1회 이승만 포럼이 시작되는 자리에 이처럼 많은 귀빈들께서 관심을 갖고 참석해 주셔서, 먼저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저는 평소 이승만은 산처럼 우뚝솟은 영웅으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생각했었읍니다. 그런 제가, 그 분의 함자가 들어간 연구소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어울리지 않고 넌센스라 생각하여 사양해 왔습니다.

      이번 이승만 연구소의 공동대표를 맡은 인보길 뉴 데일리 사장과 저는 1965년 조선일보에서 만난 이래 지난 50년동안 신문사에 있을 때엔 거의 매일 만났고, 그 뒤에도 매사 뜻을 같이 해온 막역지우입니다. 인사장은 조선일보에서 편집국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을 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인터넷신문인 <디지털 조선일보>를 창간하여 오랫동안 운영해왔고 2009년부터는 인터넷신문<뉴 데일리>를 발행하면서 이승만 바로 알리기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 그가 반년전에 “잊혀지고 지워지고 왜곡되어 있는 이승만을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자”며, 이승만 연구소 창립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을때 이를 마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승만 바로 보기><이승만 제대로 모시기>등 한국근현대사 바로 잡기는 제 평소의 소신이었고 미력하나마 지금도 이 사회 한 구석에서 일관되게 펼쳐오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선일보에 재직할 당시, 일제의 패망으로 우리가 해방을 맞은지 50주년이 되는 1995년에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라는 제목의 대형 전시회를 열었고, 이어 3년 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50주년이 되는 1998년엔 <대한민국과 우리들의 이야기>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2년뒤,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6.25남침전쟁 50주년인 2000년엔 <아! 6.25-->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세 전시회는 모두 그때 까지는 볼수 없었던 대형 전시회로, 8.15해방, 48년의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등 지난 60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역사적인 위기상황에서 이승만이 어떻게 난국을 헤치고 나라를 지켜 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승만이 신탁통치와 좌우합작 정부를 강요하는 미국과 소련등 강대국의 압력을 어떻게 뿌리치며 나라를 세웠고,  또 그 나라가 어떻게 5천년 구습을 뒤업고 일시에 남녀 상하의 차별이 없는 만민평등의 민주주의 나라가 되었으며, 이어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 합작한 6.25남침 전쟁에서 어떻게 땅 한평도 빼앗기지 않고 나라를 지켰는지, 그리고 미국이 원하지 않는 한미상호방위 조약을 어떻게 이끌어내,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가 전쟁없이 세계로 뻗어 갈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는지,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려는 전시회였습니다.

      저는 조선일보를 떠난뒤 2006년에 김대중-노무현 양 정권때 부터 전국 고교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좌편향 왜곡투성이인 금성출판사등 6개 출판사의 교과서를 바로 잡기 위해 교과서포럼 학자들이 벌인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 첫 작업으로 박효종 이영훈 차상철교수등 <교과서 포럼>학자들이 <왜곡교과서>의 진상을 해부 고발한 <빼앗긴 우리 역사 되찾기>란 제목의 책을 발간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엔 후속타로 좌편향된 교과서에 대항하기 위해 교과서포럼학자들이 만든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와 한국현대사를 발간한 것입니다.
      이때 큰 반향을 불러 모으긴 했으나 이명박정부에 들어 와서도 자구 몇 자 고치는 것으로 그쳐 <왜곡교과서>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주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한국현대사 비록><건국과 부국>등 관련 서적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한국사회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또 이승만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모시지 않는 한 좌파들에 의해 빼앗긴 우리 역사,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는 바로 잡을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이승만 연구소 창립에 힘을 보태기로 한 것입니다.
     
      이승만은 90평생을 한국의 독립운동에 진력했고, 대한민국의 건국에 절대적인 공로가 있으며, 6.25 남침전쟁에  나라를 지켜 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내는등 뛰어난 공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다른 공인들에 비해 더 많은 편견과 오해, 악의적 언론보도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이라는 큰 뜻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일생을 바쳐 왔는데,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일제하에서 한국 독립을 외쳤지만, 당시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맹방이었습니다.
    그는 또 공산주의를 비난하고 소련의 음모를 경고했지만, 당시 자유세계는 소련과 동맹관계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주장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곤 했습니다.
    그는 또 한국을 아시아 방어선에서 제외한다는 미국정책의 오류를 경고하고 재난을 예고했으나 묵살되었습니다. 결국 6.25 남침전쟁이 일어나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되자 미국과 유엔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장기화되자, 미국등 참전국들의 전쟁혐오증은 통일없는 휴전반대라는 강력하고 굳건한 결단을 외쳤던 이승만에게 모아졌습니다. 특히 기습적인 반공포로 석방으로 인해 세계주요 지도자들로부터 비난받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정책을 일관되게 지속한 것으로 인해 자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다고 그의 발자취를 지울수는 없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거듭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정책과 판단이 옳았음이 거듭 거듭 입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후일의 사가들도 그가 옳았음을 입증할 것입니다.

     이승만의 90년 생애는 20세기의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으며, 또 동서양의 관계를 뒤흔든 연속적인 위기를 헤쳐 나오면서, 우리 시대에서 가장 교훈적이고 시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때문에 이승만연구소가 앞으로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이승만은 당대 어떤 지도자들 보다 많은 사료와 기록등을 남긴 분입니다.
    현재 이승만에 관한 많은 연구서와 출판물이 나와 있으나 이승만이 남긴 발자취와 사료들과 비교할 때, 아직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인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1995년 <이승만과 나라세우기>란 이승만 전시회를 준비할 때 미국 뉴욕타임즈에 한국에 관한 기사가 몇 개나 게재 되어 있나, 검색해 보았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1871년 일어난 신미양요(辛未洋擾)사건을 처음으로 한국관계 기사를 기사화한 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는 날 까지 모두 2천 8백여건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그중 절반인 1천 4백여건이 이승만의 활동을 다룬 기사였습니다.

    이때 수집한 자료와 사진들을 일반을 위해 공개했는데 아직까지 이들 사료를 토대로 한 박사학위 논문이나 연구서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또 뉴욕뿐 아니라 이승만이 주로 활동했던 하와이 워싱턴 필라델피아의 미국신문에 게재된 이승만의 활동기사를 발굴했다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습적인 6.25남침으로 황급히 서울을 떠나게 돼 경무대에 남겨놓은 통치자료등이 지금 평양이나 모스크바에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를 되찾는 노력과 이승만이후의 역대 정권들이 무성의 하게 만든 통치사료나 오류투성이의 사료를 제대로 정리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발굴하지 못한 사료들을 새로 찾고 발굴된 자료라도 그냥 쌓여 있는 무수한 사료들을 정리하는 것도 연구소의 임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대한 정치가나 영웅들은 강대국에서만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약소민족 약소국가 중에서도 나올수가 있습니다. 이승만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조직력과 지도력, 예언자의 비전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우리 연구소가 이승만 제대로 알리기 사업에 성공할 때, 이승만의 이름은 오래도록 빛나게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방파제에 뚫린 구멍을 작은 주먹으로 맊는 동화속의 네델란드 소년의 심정으로 이승만 연구소를 시작하려 합니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구절은 이승만 연구소만의 희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꿈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방면에서 이승만 연구소를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3월 9일
                           이승만 연구소 회장 안 병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