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⑫

     하지는 소련과의 협력 관계를 아직도 중시하는 미 국무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도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남한 땅에서 미국무부의 지시에 어긋나는 일을 할 이유도 없었고 할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의 경직된 자세를 볼 때마다 나는 송진우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송진우는 공명정대(公明正大) 한 사람이다.

    일제가 항복했을 때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인의 무사 귀국과 국내 치안을 맡길 적임자로 송진우를 고른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일제하에서 갖은 핍박을 받았지만 공평하게 처리해 줄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군이 진주하자 하지는 송진우를 의지했다. 패전국과 승전국 최고지휘관으로부터 존중을 받은 인물인 것이다.

    하지가 나를 부른 것은 2월 10일쯤 되었다. 군정청의 하지 사령관실에는 나와 하지, 그리고 군정장관 아놀드(A·V Anold) 소장까지 셋이 둘러앉았다. 미국에서 귀국한 윤병구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전 11시쯤 되었을 것이다.
    딱딱한 인사가 끝났을 때 먼저 하지가 말했다.
    「박사, 남한에도 정식 정당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는 잠자코 하지를 보았다. 하지는 일리노이주의 골콘다라고 불리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다. 고등사관양성소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었지만 야전 군인으로 명성을 쌓았다. 전쟁은 다른 세상의 젊은이에게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의 시선을 받은 내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요. 장군. 북한은 소련군이 진주하기도 전에 공산당이 조직되었고 일사분란하게 국가의 체계가 세워지는 중이오. 남한은 너무 늦었습니다.」

    그것은 당신들 때문이다. 미국무부의 근시안적 사고, 루즈벨트의 소련 의존, 진주군 사령부의 책임 회피와 오만, 무식 그리고 선입견.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고 나서 말을 이었다.
    「허나 지금이라도 당장 될 수가 있지요. 그것은 중경 임시정부와 한민당을 통합한 민주 정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임정은 인정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말을 자른 하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군정청에서 곧 남한민주의원 기구를 발족하겠습니다. 그 민주의원 의장을 박사께서 맡아 주시지요.」
    군정청이 당을 만든다는 것이니 이것은 소련의 방식이나 같다.

    긴장한 나에게 하지의 말이 먼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부의장에 김규식, 총리에 김구 선생이 어떻습니까?」
    나는 심호흡을 했다.

    김규식이 어떤 인물인가? 한때 내 후임으로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지냈으며 1940년에는 임정 부주석을 역임했고 1904년에는 프린스턴 석사, 1923년에 로노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김규식은 좌익 지도자들과도 연계가 있는 중도 좌익에 속한다. 소련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무부, 군정당국 입장으로는 남한의 지도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합시다.」

    칼자루를 쥔 쪽은 미군정당국이다. 뒤늦게나마 남한에 정당을 구성하여 북한과 균형을 맞출 생각을 했으니 일단은 받아들이자.

    좌건 우건 우선 뭉쳐놓고 볼 일이다. 아직도 소련과의 협력에 매달리는 미국 안의 공산당세력에 저절로 이가 물려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받아들였고 곧 김구도 군정청 제의를 수락했다.
    그때가 1946년 2월 2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