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 (23)

     1945년 2월 초, 독일의 패망이 가까워지면서 얄타에서 루즈벨트와 처칠, 스탈린이 모여 회담을 연다. 이른바 「얄타회담」이다.

    주로 동유럽의 전후(前後)처리문제에 대해서 토의했지만 나는 2월 8일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양자 회동에 대해서 의심을 품었다. 한반도 문제가 거론되었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달여가 지난 4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이 유엔창립총회를 개최한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달려가 유엔창립총회 사무총장이 되어있는 알저 히스에게 한국 대표단의 옵서버로서의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누가 진정한 한국 측 대표단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거부 이유 중 하나였다.

    대표단은 임정을 대표한 구미위원부의 나와 김원용의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그리고 한길수의 중한민중동맹단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원용과 한길수는 연립정부를 찬성했는데 나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내가 임정의 대표자가 아니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5월 중순, 유엔창립총회가 열렸을 때 내가 묵고 있던 호텔로 송자문이 찾아왔다. 송자문과는 몇 번 만나 인사를 나눴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만난 것은 처음이다.

    호텔 특실을 빌려 수행원 하나씩을 대동하고 넷이 마주앉았는데 내 옆에는 임병직이 앉았다.

    송자문이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난번 중경에서 김주석을 만났습니다. 이대표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송자문은 하버드와 컬럼비아에서 학위를 받은 터라 영어가 유창하다.

    나는 이 대국(大國)의 귀공자(貴公子)를 물끄러미 보았다.

    송자문이 2년 전 루즈벨트에게 한 말을 나는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놀랍지도 않았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부패했고 무능했다. 미국이 지원해준 엄청난 자금과 무기가 그대로 공산당 진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8할이 새나간다고까지 했다.

    그 정부의 제 2인자가 바로 이 인간이다. 공산당 동조자. 나는 송자문을 바라보면서 문득 위안을 얻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이런 인간이 있는 중국 국민당 정부보다 비록 좌우로 갈려 싸우지만 한국에 더 희망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다시 송자문이 입을 열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도 국공합작을 시행하고 있느니만치 한국도 좌우합작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년 우방인 중국과 한국이 같은 방향으로 나가시지요.」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말했더니 옆에 앉은 임병직이 놀라 시선을 주었다.

    내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임정 김구 주석과 상의를 한 끝에 내일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켜봐 주시지요.」
    「아, 그렇습니까?」
    송자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나는 나보다 19살이나 연하인 송자문을 향해 머리를 숙여 예를 차렸다. 송자문은 그때 52세요, 나는 71세가 되었다.

    「그럼 내일을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귀공자가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안는다.
    「제가 만찬에 초대하겠습니다. 꼭 와 주시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꼭 가지요.」

    그리고 다음날 오전 나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번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와 스탈린 둘이 회동한 것은 한반도를 소련에게 양도한다는 비밀 협약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한반도는 소련 참전 댓가로 넘겨졌습니다.」

    내가 거침없이 말하자 놀란 기자들은 특종을 얻고 뛰어 나갔다.

    다음날 신문에는 그 기사가 대서특필이 되었는데 유엔 총회장은 난리가 났다. 물론 그 후에 송자문의 만찬 초대는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