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 (17)

     히틀러는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더니 1939년에는 체코스로바키아까지 합병했다.

    유럽의 전운(戰雲)이 짙어지는 한편 중일(中日)전쟁은 장기전의 양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국공합작(國共合作)으로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항일(抗日) 통합전선을 구축함에 따라 일본군은 광범한 전선에서 점과 선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광주성에서 산서(山西)성까지 10개성에 중국 대부분의 도시를 점령했지만 오직 점과 선, 즉 도시와 도로만을 장악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 전황(戰況)이 되었을 때 나는 하와이를 떠나 워싱턴으로 옮겨왔다.

    1939년 4월이다. 허버트 스트리트의 저택에 입주한 나와 프란체스카는 다시 본격적인 대미 외교위원부 활동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폭주기관차가 곧 부딪쳐 올거야.」
    10월 초순, 밖에서 돌아온 내가 프란체스카에게 말했다.

    신문사에 낼 내 원고를 타자하고 있던 프란체스카가 얼굴을 펴고 웃는다.
    「리, 언젠가는 일본이 브레이크가 풀린 자동차라고 하셨어요.」
    「그런가?」

    국무부 관리를 만나 상해 임정의 승인 문제를 상의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항일(抗日) 전선의 중국군을 미군이 지원하고 있지만 그것도 비밀리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 기관차가 마지막으로 부딪칠 곳이 어디겠어? 프란체스카?」
    「멍청한 곰이겠군요.」
    나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멍청한 곰은 곧 미국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들은 이후로 나는 그렇게 부른다. 루즈벨트가 미국의 뛰어난 대통령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상처를 안겨준 곰이었다.

    「그래, 그 곰이 기관차에 상처를 입겠지만 가만두지는 않겠지.」
    「그럼 미일(美日)전쟁이 난다는 건가요?」

    타자 치던 손을 멈춘 프란체스카가 물었으므로 나는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을 멍청한 곰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방심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오만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미국의 국력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급격히 상승했고 경제공황을 극복한 후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때 중국 임정에서는 김구와 이동녕 등 임시정부 고수파가 설립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이 중일전쟁에 대비하여 좌익계인 조선민족전선연맹과 연합해서 전국연합진선협회를 조직했다. 7개 단체가 가입한 이 조직은 우익의 김구와 좌익의 김원봉이 이끌었다.

    「자, 보세요.」
    하고 프란체스카가 타이프 된 원고를 내밀었으므로 나는 받아들었다. 잘 정돈되었고 오자도 없다.

    「리, 한길수가 누구죠?」
    프란체스카가 낮게 물었으므로 나는 원고에서 시선을 떼었다.

    내 시선을 받은 프란체스카가 부드럽게 웃는다.
    「신문에서 읽었어요. 당신을 공격했더군요.」

    공격은 점잖은 표현이다. 내가 임정의 대표권이 없는 무허가 로비스트며 사기꾼이라고 했다. 분개한 교민들이 한길수를 찾아 간다는 것을 말렸는데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길수는 중경(重慶)의 좌익 계열로 미주지역에서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과격한 행동으로 일단 교민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했다.

    올해 초에 장태연의 생일 파티에서 만났던 하정섭은 그날 이후로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지만 한길수는 집요했다.

    나도 미국 땅에서 김구처럼 좌우 합작을 해야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