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16)

     「도대체 당신이 지금까지 이룬 일이 뭡니까?」
    교민회 총무 하정섭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1939년 초, 나는 교민 장태연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마악 저녁을 마친 참이었다. 테이블에는 20여명의 남녀 교민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다행히 프란체스카는 몸이 아파 집에 남았다.
    갑작스런 일이어서 모두 숨을 죽였고 나도 긴장했다.

    하정섭은 좌파 계열로 중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건너온 무리중 하나다. 30대 중반으로 달변인데다 적극성이 뛰어나 하와이에서 금방 두각을 나타내었다.

    나는 자식 또래의 하정섭에게 선생한테서 꾸지람을 듣는 것처럼 질책을 받았지만 어쩐지 화가 나지가 않았다. 왠지 가려운 곳을 와락 긁어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만있었더니 그 순간 다시 하정섭이 소리쳤다.
    「미국을 등에 업고 대미외교위원부만 장악한지 몇십년입니까?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서 비판을 받아야 됩니다!」

    벼르고 있었던지 추궁이 신랄했고 정연했다.

    그때서야 한인회 간부 김덕수가 버럭 소리쳤다.
    「이 애비 없는 호로자식 같으니! 이놈아! 네놈이 태어나기도 전에 박사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셨다! 이 상놈아!」
    「나가!」
    하고 벌떡 일어선 주인 장태연이 삿대질을 했고 당장 테이블은 난장판이 되었다.

    손님 두엇이 하정섭에게 그릇을 던졌으며 여자 손님 하나는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정섭 일행은 둘이 더 있었다. 말린답시고 일어나 같이 소리 지르고 대든다.

    그때 내가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자, 모두 앉읍시다.」

    서너번 소리치고 나서야 하나씩 앉았고 내가 아직도 서있는 하정섭 일행에게도 말했다.
    「그대들도 앉게나. 내 이야기를 듣게.」

    1939년이니 내 나이가 65세다.

    셋이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도 애국 독립단체인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좌, 우를 가릴 때가 아니오.」

    하정섭은 조선민족전선연맹 예하의 조선의용대 소속이다. 김원봉이 중심이 된 조선혁명군 단체가 확대 개편된 조직으로 좌익의 강력한 항일투쟁 세력인 것이다.

    내가 하정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보게, 나는 지금보다 더 심한 수모를 당하고 지내왔다네. 항일 전선에서 총에 맞아 죽는 것과 이 일과 비교를 하면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모두 숨을 죽였고 내 말이 이어졌다.
    「24년 전인 1905년에 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탄원서를 주었네. 그것을 읽은 루즈벨트가 대한제국 대리공사 김윤정한테 줘서 국무부로 올리게 하라고 하더군. 나는 춤을 출 듯이 기뻐 밖으로 나왔다네. 그리고 화장실에 들렀더니 밖에서 루즈벨트 보좌관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더구만. 그 바보 같은 놈들은 우리가 필리핀하고 조선을 맞바꾼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이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므로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동포들은 가슴을 태우며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못하고 말았다네. 동포들을 실망시킬까봐서 말이네.」

    나는 번져나오는 눈물을 손 끝으로 닦고는 하정섭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우리 조선인이 잊혀지지 않도록 나는 문전축객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지내왔네. 나에게는 그 실패의 기록이 상처이며 성과일세.」

    이제 하정섭은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