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함박눈이 내리듯 한꺼번에 질 무렵이면 일본에서는 또 하나의 장관이 펼쳐진다.

    종이나 헝겊에다 잉어 그림을 그려 장대에 매달아 거는 깃발, 이름하여 고이노보리(鯉幟)다. 특히 아들을 둔 가정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내다 거는데, 각양각색의 고이노보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광경은 가히 일품이다.
    단오를 맞아 어린이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이 풍습의 유래는 중국이다. 하필 잉어를 소재로 삼은 까닭은 황하를 거슬러 올라간 잉어가 상류의 용문(龍門)을 통과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여기에 초나라 시인이자 비운의 정치가였던 굴원(屈原)의 고사가 보태진다. 정적의 모함으로 삭탈관직(削奪官職)된 굴원이 방랑 끝에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자 초나라 백성들이 종이 잉어를 만들어 추모했다는 것이다. 또 이날 팥소를 넣은 찰떡을 떡갈나무 잎사귀에 싸서 먹는 풍습도 굴원의 누이가 해마다 단오날이면 멱라로 와 떡을 던져 넣으며 이무기를 달랬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유래로 일본에서는 본시 5월5일이 남자 어린이의 날이었다. 여자 어린이들은 ‘히나마쓰리(雛祭り)’라는 이름으로 3월3일에 따로 잔치를 벌였다. 이날이 오면 사무라이 인형을 장식하고 떡갈나무 잎사귀에 찰떡을 싸먹는 단오와는 달리, 옛 궁중여인의 화사한 옷차림을 한 인형인 ‘히나닝교(雛人形)’에다 복숭아꽃을 곁들이고, 단술인 ‘시로자케(白酒)’를 마신다. 이밖에도 ‘시치고산(七五三)’이라 불리는 어린이날은 11월 15일이다. 이날은 먼 옛날부터 상류사회에서 행해지다가 19세기 이래 일반 민중들에게까지 널리 퍼진 어린이날인데, 긴 세월 탓인지 문헌에 따라 약간씩 정의(定義)가 어긋난다.  
    대표적인 사전 <고지엥(廣辭苑)>의 풀이로는 이날이 되면 세 살과 다섯 살 먹은 사내아이와, 세 살과 일곱 살짜리 계집아이에게 예쁜 옷을 차려 입혀 씨신(氏神)에게 참배를 드리러 간다고 했다. 그에 비해 민속 관련 자료에는 남자는 5세, 여자는 3세와 7세로 나뉘어 있다. 하기야 요즈음에 와서는 아예 남녀의 나이 구분이 따로 없다니 그리 큰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세 살과 일곱 살이라는 나이가 던지는 의미이다. 우리 속담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와 시치고산의 세 살이 어딘가 통하는 점이 있는 것이다. 또 일곱 살은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예기(禮記)> ‘내칙(內則)’ 편에 나오는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다시 말해 세 살이면 인간교육이 행해져야 하고, 일곱 살에는 성교육을 시작해야 마땅하다는 이치가 담겨 있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시치고산과 관련된 옛날 의식(儀式)이다. 세 살짜리 아이는 바둑판 위에 앉히고, 머리에다 명주실과 솜으로 만든 가발을 씌워 머리카락이 잘 자라도록 기원했다고 한다. 또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에게는 역시 바둑판 위에서 난생 처음 전통바지인 ‘하카마’를 입혔고, 일곱 살이 된 계집아이에게는 ‘기모노’의 옷고름이라 할 ‘오비(帶)’를 매게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축일(祝日)이나 나이가 양쪽 다 짝수가 아닌 홀수로 정해져 있는 것도 중국에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홀수를 양(陽)의 수, 짝수를 음(陰)의 수로 믿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민간의 세시 풍속에 따라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삼은 것은 1948년이었다. 한국에서는 일제 치하 방정환을 비롯한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몇 해 뒤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꿨고, 광복 후인 1946년부터 5월5일로 못 박았다. 그것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75년부터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일 년 열두 달, 365일이 몽땅 어린이날이라는 푸념이 들리기도 한다. 집집마다 자녀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바람에 ‘아이고, 내 새끼!’하면서 내남없이 과보호하는 탓이리라.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차라리 어린이날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떨까?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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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