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 ⑫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가 끝난 후에 나는 러시아행을 추진했다. 한, 중, 러, 3국의 연합으로 일본을 견제하자는 구상을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조선독립군을 지원한 전력이 있는데다 조선 국내에서는 김재봉,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사청년회까지 조직 되었었다. 그러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1928년 이후에는 해체된 상황이다.

    나는 비엔나의 중국대사관에서 러시아 입국 비자를 받았다.

    「정 그렇다면 외무성의 빅토르 국장을 만나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비엔나 주재 중국 대리공사 동덕건(童德乾)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동덕건과 나는 미국에서부터 친교가 있던 사이였다. 우리 둘은 대리공사의 집무실에 마주앉아 있다.

    동덕건이 긴 숨을 뱉고 나서 영어로 묻는다.
    「이박사, 모스크바에 있는 조선인 인사하고 연락이 되었습니까?」
    「모스크바역으로 마중을 나온다고 했습니다.」
    「누굽니까?」
    「허덕수라고 조선 의열단의 간부급이 되는 사람이오.」
    「조심하시오.」

    조선 내부 뿐만 아니라 임정 사정까지 정통한 동덕건이 쓴웃음을 짓고 말한다.
    「모스크바에는 조선 독립군을 가장한 강도단이 횡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덕수는 조선의열단의 대표 김원봉의 수하로 내가 아는 사람이다.

    비엔나를 출발한 내가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1933년 7월 9일이다. 역에는 약속한대로 허덕수가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나를 반갑게 맞는다.

    「잘 오셨습니다. 임정에서 뵙고 12년만이군요.」

    당시에 허덕수는 이동휘의 수하로 몇 번 얼굴을 보이더니 사라졌다. 시베리아로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제 다시 만난 것이다.

    허덕수가 안내한 곳은 역 근처의 허름한 호텔이다.

    「이곳에도 일본 밀정들이 버글거리고 있습니다.」
    방으로 들어선 허덕수가 커튼을 들추고 창밖을 살피며 말했다.
    「요즘은 조선인 피살 사건이 늘어나고 있지요. 물론 우리도 일본놈들을 놔두지 않지만 말입니다.」

    작년인 1932년 1월 8일, 김구의 지시를 받은 애국단원 이봉창(李奉昌)이 도쿄에서 히로히토 천황에게 수류탄을 투척했고 4월에는 윤봉길(尹奉吉)이 상해 홍구(虹口)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白川)대장 등을 폭사시켰다.

    국내의 반일 활동이 일본군의 가혹한 탄압으로 억눌려있는 반면에 국외에서는 저항이 강해졌다.

    창에서 몸을 뗀 허덕수가 나를 보았다.
    「그럼 내일 빅토르 국장과의 면담을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동안은 밖에 나가시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시지요.」
    「부탁하오.」

    나로써는 지리도 모르는 터라 따르는 수밖에 없다.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은 좌파계열로 김원봉이 대표인데 작년인 1932년 11월 상해에서 조직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단체 중 하나인 것이다. 일본군의 만주침략으로 우파와 좌파 등 거의 모든 단체가 모인 셈이었다.

    나는 호텔 방에 박힌 채 모스크바의 첫날밤을 맞는다. 가방 속에는 국제연맹에 제출하려고 준비했던 독립청원서와 내가 특별히 작성한 러시아 정부에 보내는 청원서까지 서류가 두통 준비되어 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샌 내가 다음날 아침에 호텔의 작은 식당에 앉아있을 때 허덕수가 서둘러 들어섰다. 허덕수의 안색이 좋지 않았으므로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 앞으로 다가선 허덕수가 말했다.
    「돌아가라고 하는군요. 오늘 즉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