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본 신문에 <춘향전>이 연재되었다?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1.01.22 18:31:26

여기 좀 걱정스러운 한일 역조 현상이 있다. 한류 붐으로 한국 드라마가 일본열도를 휩쓴 것은 참 다행인데, 문화의 꽃이라 할 ‘문학서 출판’에서의 역조는 여간 심각하지 않다. 하기야 어제오늘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통계를 손에 쥐고 보니 새삼 울화가 치민다.
‘372 대 19.’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소설작품이 372종이고,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작품이 19종이란 뜻이다. 물경 스무 배에 가까운 역조다. 다소 해묵은, 2003년의 출판 통계이어서 뭣하나, 지금이라고 해서 그리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왜 이럴까? 설마 작품의 질이 일본보다 떨어진다고 여기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출판도 장삿속이라는 점이다. 제아무리 우수한 작품이라도 일반 독자들에게 먹혀들 가능성이 적으면 돈 들여 번역할 까닭이 없다. 문득 옛날 옛적의 일이 떠오른다.
우리 고대 소설의 대표작인 <춘향전>은 일본에서도 꽤나 유명한 편이다. ‘아리랑’과 더불어 일본의 각종 사전에도 버젓이 올라 있다. 가령 백과사전을 겸한 대표적인 국어사전 <고지엥(廣辭苑)>은 '아리랑'을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의 민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등의 구절이 포함된 것으로 각 지방에 여러 종류가 있다. 아리랑은 일설에 의하면 전설상의 고개 이름이라고 한다. 쇼와(소화) 초년(=1920년대 후반)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다."

이에 비해 <춘향전>을 소개한 또 다른 국어사전 <다이지린(大辭林)>을 들추어보자.

"조선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 18세기 경(조선조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작자 미상. 창극(唱劇=歌劇의 일종)으로서도 유명하여 널리 애창된다."

여기서 <춘향전>을 일본인들이 사족을 가누지 못할 만큼 즐기는 고전극 <주신쿠라(忠臣藏)>와 비교해 보는 것도 심심파적은 된다.
우선 두 작품은 출생 시기가 비슷하다. 작자와 시대 미상인 <춘향전>이 18세기 초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해, 몇몇 작가의 합작인 <주신쿠라>는 1748년에 초연(初演)되었으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에 선을 보인 셈이다. 내용은 영 딴판이다. 한쪽은 해피엔딩의 러브스토리지만, 다른 한쪽은 살기등등한 복수극인 것이다.
억울하게 모함 당하여 죽은 주군(主君)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47명의 부하 사무라이들이 절치부심(切齒腐心), 끝내는 원수를 갚고 자결한다는 것이 <주신쿠라>의 줄거리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았다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유의 작품을 의사극(義士劇)이라 칭한다. 사시사철 일본 땅 어디에선가 공연이 이뤄진다는 소문과 더불어, 그들은 서슴없이 이 작품을 의사극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47명의 사무라이에게 살해당한 영주의 출신지에서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공연되지 않았다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놀랍게도 <춘향전>이 일본에 소개된 지 이미 100년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것은 순전히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라는 인물의 공이었다. 이 사람은 내력부터가 범상치 않다. 부산 먼 바다에 둥실 떠 있는 섬 쓰시마(對馬)에서 전의(典醫)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사춘기를 부산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3년 동안 부산 왜관(倭館)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아사히신문> 기자가 되었다. 그러더니 유년기의 인연 덕을 톡톡히 본 듯 이 신문의 부산 주재 기자로 발탁되었다. 애초에는 통신원 신분으로 파견되었다가 한 해 만에 <아사히신문> 역사상 최초의 해외 상주 특파원으로 승격되었으니 그 때가 1882년이었다. 일본의 연호로 메이지(明治) 15년이던 바로 이 해 6월, 이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사고(社告)가 실렸다.

“우리나라가 조선과 관계를 맺은 지 오래라고 하나, 아직 그 나라의 토풍인정(土風人情)을 상세히 묘사하여 세인(世人)이 관람토록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드물어 유감으로 여겼다. 그러던 중 근일(近日) 우연히 그 나라의 정화(情話)를 기록한 소책자 한 권을 얻어 이로써 그 토풍인정을 알기에 만족할 터이다. 오늘날 그 나라와 통상무역 쪽이 빈번하려는 때를 맞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 이를 번역, 다음 호부터 지상(紙上)에 게재하노라.”

다름 아닌 <춘향전>이었다. 알음알음으로 구해본 당시 신문에는 ‘계림정화(鷄林情話) 춘향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고, 번역자는 당연히 나카라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20회를 연재했는데, 그럴싸한 삽화도 곁들여져 있었다. 화가의 이름이 별도로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혹 한글판 소책자에 실린 그림을 그대로 옮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춘향전>의 번역이 실마리가 되었든지 나카라이는 나중에 자신이 몸담은 신문에 자작(自作)을 연재하는 등 본격적인 대중 소설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런 사실들로 추측컨대, 오늘날 그네들 사전에까지 이름이 오르도록 <춘향전>을 일본에 알린 장본인은 바로 그였음에 분명하다.
그렇게 1세기 전에 우리의 명작이 일본신문에 연재된 걸 돌이키자면 오늘날의 심각한 한일 문학 역조 현상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무슨 수가 없을까?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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