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학교에는 복도에서 또는 강단 한 구석 여기저기에서 학생 한 명을 데리고 열심히 개인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이런 장면을 목격했을 때, 왜 수업 시간에 학생이 교실 밖에 나와 있는지, 도대체 어떤 선생님이 딱 한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정년퇴직을 한 선생님들이 무보수로 봉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퇴는 하였지만 아직은 가르칠 기운도 있고, 무엇보다 가르치고 싶은 열정이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일반 교실에서 수업에 뒤쳐지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선생님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루 또는 일주일, 길게는 한두 달 자진해 학교에 나와 지도를 할 수는 있겠지만 한 학기 내내 이렇게 자신의 시간과 정열을 쏟아부어가면서 꾸준하게 계속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봐라. 네가 스스로 이 문제를 풀었잖아? 너는 네가 하겠다고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단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오늘부터 열 번씩 이 말을 노트에 쓰기로 하자.”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다가 할머니 선생님이 학생의 등을 도닥거리며 이렇게 말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 없는 학생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선생님. 참 선생님의 모습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선생인 내 직업이 싫다.” 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선생 직업이 싫지만 달리 뾰족한 길이 없어 선생님을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자신을 위해서도, 학생들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입니다.
    선생노릇을 하기 싫은 사람이 선생을 한다면 기계적으로 그저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을 가르칠 뿐, 어떤 학생이 뒤쳐지는지, 왜 뒤쳐지는지, 혹시 자신의 지도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또는 학생에게 말 못할 무슨 사정이 있는지 등등,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쓸 리가 없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생님이란 직업은 부자가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님이란 직업만큼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선생님이란 부모가 다 할 수 없는 인성교육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자라나는 청소년들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나는 각 학급 선생님들이 다 중요하지만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때, 선생님을 좋아해야 학교가 좋고, 선생님을 좋아해야 공부도 재밌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무섭고 싫으면 학교를 싫어하게 되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사랑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은 느낌입니다.
    느낌으로 선생님의 사랑을 감지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칭찬 듣고 싶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 편찮으실 때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몰려가 밥을 짓는다, 반찬을 만든다 해가며 부엌에서 법석 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이고, 지겹지도 않은가? 나는 은퇴하면 학교 근처에 얼씬도 안하겠다.”
    추운 겨울, 코트를 입은 채 복도에서 개인지도를 하고 있는 선생님을 보면서 이렇게 수군거리는 선생님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옛말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스승의 참모습을 느낀다면 선생님이 아무리 심하게 꾸중을 한다 하여도 그 어떤 학생도 감히 선생님에게 천륜(天倫)에 어긋나는 망동(妄動)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유미 재미작가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