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 ②  

     「무슨 일입니까?」
    내가 부드럽게 물었더니 안명희의 얼굴이 금방 빨개졌다.

    「아닙니다.」
    했다가 머리를 들고는 나를 보았다.
    「제가 4년쯤 전에 필라델피아에서 각하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약소민족대표회의에 참석했을 때쯤이군.」
    「그때 교회에서 미국인 신자들에게 연설을 하셨어요. 대한민국은 꼭 독립을 할 것이라고. 조선인은 한번도 제 말과 글, 문화를 빼앗겨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힐끗거렸지만 안명희의 말에 열기가 띄워졌다. 말수가 드문 것 같았는데 조리가 있는데다 발음도 분명해서 설득력이 드러났다.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는 것은 품 안에 뱀을 키우는 것이나 같다고 하셨습니다. 언젠가 독을 키운 뱀이 미국을 물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랬더니 미국인 청중들이 공감하던가?」

    그러자 안명희가 나를 보았다. 어느덧 둘러앉은 모두가 안명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안명희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길게 숨을 뱉은 안명희가 말을 잇는다.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모함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도 그렇다. 미일 관계는 동맹국 수준이다. 이제 혁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한반도는 일본인에게 던져준 미끼나 같다.

    그때 안명희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전 그때부터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각하께서 저 하나만은 공감시켜 주신 겁니다.」
    「허, 그렇군.」

    내가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돌려 민찬호를 보았다.
    「민단장, 들으셨소? 이제부터는 안명희씨가 내는 기부금은 모두 내 통장으로 입금시켜 주시오.」
    「예, 각하.」

    바로 대답한 민찬호가 따라 웃는다.
    「각하께선 곧 부자가 되실 것입니다.」

    방랑자 생활이 몸에 배었다지만 나는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교 교장일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교회 숙직실에서 또는 친지 집에서 신세를 지든지 그것도 안되면 호텔에서 묵었다. 독채를 사용할 때는 셋집이었지 내 소유로 한 적이 없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다시 안명희를 보았다. 사려가 깊고 과묵한 민찬호가 오늘따라 들떠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민찬호는 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한테 결혼 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본 적도 있었다.

    내가 안명희에게 물었다.
    「안여사, 자녀는 몇이나 두셨소?」
    「없습니다.」

    머리를 든 안명희가 똑바로 나를 보았다. 맑은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미국에서 한일합방을 맞았으니까요. 그래서 조선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민찬호가 말을 받는다.
    「그 동안에 혼례만 치룬 남편이 병사를 했지요. 안여사는 조선 최초의 여류사업가가 되겠습니다.」
    「그러신가?」

    다시 수저를 든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제 조선인 여류사업가가 나올 때도 되었다. 그 여류 사업가를 나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초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