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번째 Lucy 이야기 ③  

     오후 6시 반, 나는 고지훈을 호텔로 다시 불렀다.
    테드 김태수가 그러고 떠난 후에 소화가 덜 된 것처럼 위장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고지훈이 달려왔을 때 내가 물었다.
    「난 대한민국 역사공부를 단단히 하는 중이지만 1921년까지 끝났을 뿐이에요. 이승만이 독재자, 분단의 원흉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언제죠?」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만 3년간이 그 시기일 겁니다.」

    바로 대답한 고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누가 그럽니까?」
    「날 한국으로 끌어들인 사람.」
    했다가 나는 덧붙였다.
    「이승만의 한성감옥서에 갇히기 전까지의 경호원 김재석의 증손자.」
    고지훈도 자서전을 읽었기 때문에 김재석을 안다.

    그러자 고지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증조부가 이승만의 경호원이었다고 무조건 따를 수는 없겠죠.」
    「그런데 반응이 너무 강해요. 증오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니까요.」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정색한 고지훈이 말을 잇는다.
    「이승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3년간의 한국전쟁이 있었지요. 이승만은 1960년대의 4·19 의거로 대통령직을 스스로 하야하고 하와이로 건너갑니다.」

    나는 착실한 학생처럼 귀를 기울였고 고지훈은 성의 있게 가르친다.
    「그 후에 18년간의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 그리고 그 뒤를 두명의 군 출신 대통령이 10년간 통치를 하고 정권이 민간인에게 돌아왔지요.」
    「그럼 군인이 28년간 통치했나요?」
    「그렇습니다. 그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도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토양에서 군 출신 대통령 세명이 28년간 경제 부흥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저으며 눈까지 치켜떴다.
    「그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놈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군사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에 공산주의 세력이 개입되면서 아예 이승만이 주도해서 세운 대한민국의 건국까지 부정하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제가 사는 나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고 살면서 「태어나지 말아야했던 나라」라고 하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동상 하나 세워져 있지 않는 겁니다.」

    바로 김태수가 그 부류인 것 같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고 나서 묻는다.
    「그럼 그들은 북한 체제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요?」
    「바라고 있다구요?」

    고지훈이 눈을 껌벅이며 되묻더니 곧 머리를 저었다.
    「아마 그 곳에선 며칠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답답해진 내가 건성으로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제9장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이승만이 1945년까지 어떻게 지낼 것인가? 그러고 보면 이승만은 1875년생이니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는 벌써 70세가 된다. 그때까지 세상을 떠돌았구나. 30여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