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여전히 ‘부적응 중’ 곽노현·김상곤 “과도기일뿐…”
  • 11일 오후 9시께 경기도 수원시 A학원. 한 교실에 모인 10여명의 학생들이 수학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막 시작된 수업이지만, 딴 짓을 하거나 잡담을 하는 학생은 없었다.

    5분쯤 지나자 한 학생이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왔다. 지각생이다. 학원 규칙대로 손바닥 10대를 맞았다. 체벌을 받은 학생은 물론 교실 안에 있는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교권 추락의 현장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시 한 번 교실 속 풍경을 살펴보니 특이한 점이 보였다. 학생 모두 교복을 입고 있다. 방학이라 보충수업도 일찍 끝날 텐데 다들 집에도 다녀오지 않은 모양이다. 알고 보니 교복 착용도 규칙이라고 한다. 입학을 위해서는 시험까지 치러야 하는 곳이다 보니 이런 유난스러워 보이는 규율에도 군말은 없다.

  • ▲ 여전히 엄한 교육 방식을 고수 중인 수원시 A학원장. 그는 아직도 체벌은 최소한의 필요악이며 학부모 학생들도 이를 원한다고 말했다ⓒ뉴데일리
    ▲ 여전히 엄한 교육 방식을 고수 중인 수원시 A학원장. 그는 아직도 체벌은 최소한의 필요악이며 학부모 학생들도 이를 원한다고 말했다ⓒ뉴데일리

    학원장(54·사진)은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조성했나'는 기자의 물음에 손사례를 쳤다. 억지로 만든 분위기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조성된 규칙이라고 했다.

    그는 “학원 입학 상담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강제 퇴학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학생 인권’을 따지는 학부모나 학생은 없다”면서 “학생도 학부모도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교육청에서 시행된 지 100일 지났다. 이후 서울시교육청도 즉시 체벌을 전면 금지했고 인권조례 제정에도 착수했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12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하며 체벌금지는 당연하다”면서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곽노현 서울교육감도 체벌금지에서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노동인권’ 수업까지 가르치겠다고 공언했다.

    바야흐로 학교 현장의 혁명기라 할만하다. 숱한 논란과 파장을 일으킨 학생인권조례가 우리 아이들의 교육 현장을 얼마나 바꿨는지 살펴봤다.

     

    ◇ 조례 공포했지만… 현실은 따로따로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전체 초중고(2131개교)의 96.3% 2053개교가 학생인권조례를 반영하고 인권규정을 변경했다. 나머지 학교도 심의절차만 남겨 놓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모든 학교를 인권조례의 영향력 안에 뒀다고 할 수 있다.

  • ▲ 지난해 경기도 수원 S고에서 문제가 된 체벌 피해 학생 모습. 이후 대부분 학교가 다소 체벌의 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학생인권조례가 100%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연합뉴스
    ▲ 지난해 경기도 수원 S고에서 문제가 된 체벌 피해 학생 모습. 이후 대부분 학교가 다소 체벌의 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학생인권조례가 100%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연합뉴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심각한 체벌로 논란이 됐던 안산 A고등학교는 여전히 체벌 허용과 여학생 스타킹 규제, 두발 규제 등을 두고 있다.

    수원 B여고도 생활규정에 있는 두발 규제, 가방 규제, 복장 규제 등을 여전히 남겨뒀다. 다만 여고인 것을 감안 인사 태도가 불손한 경우에도 벌점을 부여하고 총 벌점 16~50점은 교내봉사, 51~70점은 사회봉사, 70점 이상은 특별교육이나 퇴학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했다.

    서울시 종로구 C고등학교도 여전히 체벌은 존재했으며 남학생의 경우 앞머리 1cm 미만의 속칭 ‘반삭’머리를 강요하고 있다.

    C 고등학교 학생 박민욱(2학년) 군은 “근방에서도 유명한 우리학교 체벌과 반삭 머리가 곧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여전히 학교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이 외에도 상당수 학교가 남학생은 '교복과 어울리는 단정한 머리', 여학생은 '겨드랑이선을 넘을 경우 묶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아직은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는 정착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 교원단체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 교육청 “과도기일 뿐…”

  • ▲ 12일 오전 경기도교육청에서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학생인권조례 이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 12일 오전 경기도교육청에서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학생인권조례 이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교육청과 교원단체 간의 시각차는 여전하다.

    교총은 "학교현실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시행 등 도교육청의 선심성 교육정책들로 인해 일선학교는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차원에서 법령에 의거해 학생생활지도 관련 규정이 통일적으로 마련될 때까지 조례 시행을 보류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총 관계자는 “체벌이나 인권에 대해 교과부 차원에서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혼란이 없도록 통일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도교육청이 교권 보호 차원에서 효과적인 대체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하니 일단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체벌을 대체할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문제 학생을 체벌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이어 이를 법원으로 넘겨 재판을 받도록 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

    학교장 통고제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검증되지 않은 체벌대체 및 교권보호 방안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교장이 비행 학생을 곧바로 법원에 소년보호재판을 청구함으로써 법원의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수단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학생·교사 폭행’, ‘절도’ 등 형사적 책임이 동반된 사안이 아닐 경우 이 방안은 실효성이 부족해 쉽게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일선 학교는 판단하고 있다.

    김상곤 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학교장 통고제는 처벌이 아니라 재발 방지와 환경 조성을 위한 마지막 방안”이라며 “이 외에 필요한 부분은 교권보호지원단 등을 통해 교권보호 장치를 따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