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27)
          
     백범(白凡) 김구는 나보다 한 살 연하였는데 상해 임정 요원 중 내가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김구의 성품이 직선적이나 정직했기 때문이다. 매사에 정도를 걷고 공평한데다 경무국장으로써의 업무를 빈틈없이 수행함으로써 임정 요원들의 존경을 받았다.

    상해 임정의 세 실력자는 바로 이동휘, 안창호, 김구였다.

    1921년 1월 하순, 이동휘는 나에게 임정을 해산하고 상해를 연락사무소로 운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와이에는 내가, 연해주에는 이동휘, 미주에는 안창호 등으로 흩어져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자는 취지였지만 안창호는 물론이고 이동영, 이시영 등 거의 모든 간부들이 반대를 했다.

    「이총리가 임정을 떠날 명분을 쌓는 것입니다.」
    임정 공관의 내 방으로 들어 온 안창호가 말했다.

    쓴웃음을 지은 안창호가 말을 이었다.
    「임정에서 파견 형식이라면 모르되 임정을 해체하고 연락사무소로 운용하자는 것은 임정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임정 활동이 유명무실한 상태니 그럴 법도 하지요.」
    자조하듯 말한 내가 안창호를 보았다.
    「박용만한테서 연락 받으시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통.」
    말꼬리를 흐린 안창호가 길게 숨을 뱉는다.

    무장 이동휘의 반발이 클수록 모두가 박용만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안창호가 방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경무국장 김구가 들어섰다. 김구의 굳어진 표정을 본 내가 긴장했다.
    「백범, 무슨 일이오?」
    「성재(誠齋)가 공산당원들을 데리고 임정을 떠난다고 합니다.」

    숨을 멈춘 나에게 김구가 말을 잇는다. 성재는 이동휘의 호다.
    「비서장 김립(金立)을 비롯하여 차장급 간부 서너명 그리고 10여명의 부서원이 떠날테니 임정 한쪽이 비겠습니다.」
    「......」
    「성재가 나한테도 공산당에 가입하라고 했지만 거절했더니 불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쓴웃음을 지은 김구가 나를 보았다.
    「제가 만류를 했지만 듣지를 않는군요. 각하께서 잡아 보시지요.」
    「내가 떠나면 되지 않겠소?」
    불쑥 내가 말했더니 김구가 똑바로 나를 보았다.
    「각하, 도산 또한 저한테 흥사단에 가입하라고 권유합니다. 작년부터 임정 요인들 중 흥사단에 가입한 사람이 50명이 넘습니다. 각하께서 중심을 잡아 주셔야 합니다.」

    정색한 김구가 말을 잇는다.
    「도산은 미국 국민회에서 보내준 자금이 많아서 조직 관리에 유용한 것 같습니다.」

    마침내 나는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아직 국가도 구성하지 못한 터에 이게 무슨 분파란 말인가?」

    임정 실세 중 사조직을 결성하지 않은 인사는 나와 김구가 되겠다.
    이동휘의 공산당 또한 러시아 코민테른의 직접 지시를 받지 않는 터라 사조직이나 같다.

    길게 숨을 뱉은 내가 말을 이었다.
    「내가 희생해서 임정이 잘 된다면 당장이라도 떠나겠소.」

    안영준을 통한 박무익의 전갈이 떠올랐다. 꼬투리를 잡아 사퇴를 시키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이 맞았지만 나는 내 부덕(不德)의 소치이며 능력의 부족을 절감해야만 했다.

    어깨를 늘어뜨린 김구가 나갔을 때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임병직이 들어섰다. 임병직도 눈을 치켜뜨고 있다.

    「각하, 박대장이 왔습니다. 박용만 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