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26)

    독립군은 만주 땅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반년 전인 1920년 6월에 길림성 왕청현의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은 홍범도와 최진동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에게 패하여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이에 격분한 일본군은 10월 2일, 마적단을 시켜 훈춘성을 공격케 한 다음 일본 영사관을 불태우도록 지시했다. 그것을 조선독립군의 소행으로 만들려는 음모였다.

    그리고는 그 후부터 만주지방에 정착한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만주와 연해주 지방으로 정착한 조선인 50여만은 일본군의 무차별 살육으로 치를 떨었다.

    그러던 10월 21일. 김좌진, 이범석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만주 화룡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1,200여명을 사살하고 2천여명을 부상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유명한 청산리대첩이다.

    그러자 일본군은 조선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여 보복을 했다. 훈춘성 공격 이후로 3개월간 조선인은 3만명이 살해 되었으며 수천 채의 민가, 30여 채의 학교가 불에 타 소실되었다. 이것이 간도 학살사건이다.

    이런 뒤숭숭한 시기에 내가 부임해 온 것이다. 내가 업무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은 12월 하순 무렵이었다. 숙소로 삼고 있는 프랑스 조계안의 크로푸트 선교사 저택에 손님이 찾아왔다. 만주에서 온 박무익이다.

    안준영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박무익이 나를 보더니 먼저 머리부터 숙였다.
    「각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박무익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은 번들거렸다.

    내가 다가가 두 손으로 박무익의 손을 쥐었다.
    「박공, 청산리 대첩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소.」
    「김좌진 장군 휘하 지대장으로 명령에만 따랐을 뿐입니다.」

    박무익의 독립군 부대는 이번 전투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에 소속되었던 것이다.

    응접실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이곳까지 박무익을 안내해 온 안준영이 눈인사를 하고나서 돌아갔다.

    박무익과는 10여년 만이다. 그동안 박무익은 풍상을 겪은 고목처럼 더 듬직해졌고 전장의 장수에 어울리는 위엄까지 풍겨났다. 나보다 세 살 위인 박무익은 이제 49세가 되었다.

    내 시선을 받은 박무익이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준영을 보내, 오시지 말라고는 했지만 각하께서 오실 줄 예상 했습니다.」
    「대통령이 자리를 오래 비우면 되겠소?」

    그러자 박무익이 길게 숨을 뱉는다. 어느덧 얼굴도 굳어져 있다.
    「만주 땅 동포들이 짐승처럼 일본놈들한테 살육 당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일본군 한놈이 죽으면 동포 열을 죽여서 보복을 합니다.」
    「......」
    「그래서 저는 제 부대원 2백을 이끌고 당분간 러시아 땅으로 들어갈 작정입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일본군의 기세에 밀린 것이다. 놈들의 악랄함에 밀려났다는 표현이 맞다.

    이윽고 시선을 든 내가 박무익을 보았다.
    「임정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동포와 독립군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제가 그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정색한 박무익의 말이 이어졌다.
    「밖에서 보는 임정은 내분만 일삼았던 조선 말의 조정과 똑같습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것은 나에게 치명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얼마나 조선 말기 조정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권력욕과 파벌을 비난했던가?

    내 시선을 받은 박무익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우리는 믿고 의지할 지도자가 절실합니다. 각하께선 그것을 기억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