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아문센보다 먼저 남극에 간 일본인이 있다?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0.12.31 16:14:05

2003년 12월, 멀리 남극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곳에서 탐사작업에 종사하던 한 한국인 연구원이 불의의 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슬픈 뉴스가 계기가 되어 우리는 빙하의 땅 남극에 세종대왕의 이름에서 딴 연구센터 ‘세종기지’가 있음을 알았다. 또 그 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남극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게도 되었다.
남극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원시 대륙이다. 넓이가 전체 지구 육지 표면적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그곳은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물창고이다. 그 바람에 세계 여러 나라가 눈독을 들이며 탐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잘 아는 것처럼 사상 첫 남극 탐험가는 노르웨이의 아문센이었다. 그때까지 인간의 발걸음이 미치지 못했던 남극점을 아문센이 1911년 12월14일 마침내 밟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후로 남극은 탐험가의 영역에서 과학자의 연구대상으로 서서히 그 지향점이 바뀌어 갔다.
현재 남극대륙에는 18개국의 과학 탐사기지 40여 개가 있다. 한국의 세종기지가 자리한 킹 조지 섬에는 아르헨티나를 선두로 러시아, 칠레, 폴란드, 브라질, 우루과이, 중국 등 8개국의 상설기지가 옹기종기 들어섰다. 
세계 열강 가운데 가장 먼저 남극에 주목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옛 소련(현재의 러시아)과의 영토 확장 경쟁까지 의식했던 미국은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이 남극에 진출했다. 그 결과 남극대륙에서 가장 큰 맥머도기지를 위시하여, 탐험가 아문센과 스콧(=영국인으로 아문센보다 한 달 늦게 남극점에 도달했으나 귀환 도중 사망했다)의 이름을 붙여 바로 남극점에다 세운 아문센 스콧기지 등 모두 7개 기지(3개는 여름용 비상설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이 남극에 쏟는 열정은 1986년부터 불과 1년 사이에 33명의 기상학자, 35명의 빙하학자, 53명의 지질학자 등 330명의 과학자가 포함된 총 1,500명의 인원을 남극 탐사에 투입했다는 기록만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게 남극대륙 탐사 및 연구현황을 살피다보면 놀랍게도 일본의 발 빠른 움직임이 느껴진다. 제국주의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직후인 1912년 1월말, 26명의 일본 탐험대(대장 육군 중위 시라세 노부 白瀨矗)가 남위 80.5도에까지 도달했다. 비록 남극점에는 닿지 못했으나 날짜로 헤아려보건대 까딱했으면 아문센보다 한 발 먼저 역사를 이룩할 뻔했다.
연구기지 건설도 아주 빨랐다. 1956년 11월, 해상보안청 소속 관측선박을 남극으로 파견한 일본은 이듬해 1월에 당시의 일본 연호를 갖다 붙인 ‘쇼와 기지’를 이스트옹글 섬에 건설했다. 그 후 해발 2천230미터의 빙원에 자리한 미즈호 기지(1970년), 아스카 기지(1984년), 도메후지 기지(1995년) 등 남극 탐사의 발판을 잇달아 세웠다. 베이스캠프 격인 쇼와 기지에는 50여 동의 건물이 있고, TV를 통한 화상(畵像) 회의 시스템까지 완비했다.
이 같은 일본의 남극 탐사에는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 적지 않다. 가령 2003년 연말의 세종기지 사고는 쇄빙선(碎氷船= 바다에 떠 있는 얼음을 헤치며 항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선박) 한 척 없는 우리의 초라한 장비 탓이었다.
일본은 달랐다. 남극 탐사를 위해 동원했던 해상보안청 선박이 제 구실을 못하자 군대를 동원하기로 했다. 그를 위해 1964년에 법률을 개정하여 이듬해 새롭게 해상자위대 쇄빙선 후지호를 건조했다(쇄빙선이란 말 대신 남극 관측선이라고도 부른다). 이 배의 이름은 남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느라 일반 공모하여 쏟아진 44만여 통의 아이디어에서 골랐다고 한다. 후지호는 1983년에 퇴역하여 시라세호로 교체되었고, 2009년 봄에 2세 격인 새로운 시라세호(기준 배수량 1만2,500톤)가 건조되어 활동에 나섰다. 이 시라세라는 이름 역시 일반 공모로 정해진 것인데, 사상 첫 일본 탐험대장이 시라세 중위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일본보다 한 발 늦은 중국도 우리보다는 실정이 낫다. 1985년에야 남극대륙에 상륙한 중국이지만 두 군데의 기지와 한 척의 쇄빙선을 투입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극과는 비교하기 어려우나 북극의 상황 역시 별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뒤늦게 조선시대의 대학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호에서 명명한 다산기지를 북극에 설립했다. 그러나 이 기지는 남의 건물에 세든 비(非) 상주기지여서 독자적인 기지를 갖춘 일본에 뒤지는 실정이다.
인류의 미래는 과학에 의해 좌우된다고들 한다. 국가의 흥망 또한 마찬가지다. 선진국들이 남극대륙에 군침을 흘리거나, 임자 없는 영토를 먼저 차지하고자 우주개발에 뛰어드는 키워드가 곧 과학에 다름 아니다. 앞서 가는 이웃나라에 속 앓이만 하던 우리도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 그마나 다행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우수한 청년 과학도의 양성, 그걸 알면서도 법대와 의대로만 입시생이 몰린다면 무슨 염치로 세종대왕을 자랑할 수 있으랴.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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